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매사추세츠  공과대 인지 심리학 박사, ‘최선의 고통’ 저자 사진 폴 블룸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매사추세츠 공과대 인지 심리학 박사, ‘최선의 고통’ 저자 사진 폴 블룸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재난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여러분처럼 나도 따끈한 목욕물, 여름날의 수영장 같은 안락한 일상에 머물길 원했지만, 삶은 늘 그렇듯 굽이치는 파도와 비바람 앞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폴 블룸이 쓴 ‘최선의 고통’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바로 그 최전선의 고난에 몸을 던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가르치는 책이다. 그가 집중한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인간은 왜 자발적으로 고난에 뛰어드는가’ ‘우리는 정녕 고난을 겪어도 파괴되지 않는가’. 

고난과 인간의 애착 관계를 치열하게 통찰한 블룸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전작 ‘공감의 배신’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블룸 교수는 언어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생은 가치 있는 만큼 고통스럽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사진 폴 블룸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사진 폴 블룸

왜 고난에 흥미를 느꼈나.
“쾌락의 욕구는 뻔하다. 음식과 섹스를 즐기고 안전하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분을 누리고 싶은 상태다. 반면 고난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매운 음식을 먹거나 가학·피학적 성적 취향에 빠지거나, 끔찍한 공포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발적으로 추구하는 이런 불편한 감각을 나는 ‘고난의 쾌락(The Pleasures of Suffering)’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동료 심리학자나 철학자들과 대화하면서 인간은 쾌락을 목표로 하지 않는 고생도 기꺼이 선택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창업, 등산, 전쟁 참전, 육아 등등. 이 경험이 즐거움보다 위험과 모험, 고생을 더 요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런 과정을 충실한 인생을 보내는 귀한 재료로 선택한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고난을 수집한다는 건가.
“그렇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은 착각했다. 인간이 본래 안락만 좇는 타고난 쾌락주의자라고. 아니다. 의외로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다. 마음을 흔드는 더 깊은 목표지에 기울면, 자발적으로 크고 작은 고통에 뛰어들고 감내한다. 우리 뇌는 고통과 쾌락의 최적점인 ‘스위트 스폿’을 찾으려 한다.”

고난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사실 고난의 쾌락은 곳곳에 있다. 인간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모험을 시도한다. 결정적으로 인생이 잘 흘러갈 때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취약한지 잊고 산다. 그러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나면 깨지고 재조립되면서 세계가 확장된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특정 유형의 선택적 고난은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둘째, 잘 살아낸 삶은 쾌락적 삶보다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고난은 고귀한 목적을 이루는 한편 충만한 삶을 사는 데 중요하다.”

한국의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긴 세월을 살아보니 사랑이 있는 고생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
“너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말이다!”

책에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중요하게 등장하더라. 빅터 프랭클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빅터 프랭클은 193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신과 의사로 우울증과 자살을 연구하던 중 수용소로 끌려간다. 동료 수감자를 관찰하던 중 살아남은 사람은 더 넓은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랭클 자신도 부모와 아내를 수용소에서 다 잃고도, 나와서 삶을 재건했고 재혼해서 손주까지 봤다. 나중에 프랭클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의역해서 적었다. 이 말이 내 연구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불운을 감지해서 잘 피해온 사람과 고난을 의연하게 헤쳐 온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많이 배울 수 있나.
“내 관심사는 우리가 자처한 고난이다. 덧붙이자면, 고난을 겪은 후 이렇다 할 전리품이 없더라도 그 과정을 지나온 인내 그 자체는 명예가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신은 고난과 관련해서 어떤 기질인가.
“지적인 면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색다른 문제를 찾아보기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으면 조급해진다. 하지만 사생활에서는 아주 안정적인 편이다.”

영화 ‘빅쇼트’에서 주인공을 표현하는 대사처럼 ‘불행할 때 행복한 사람’이 있다. 이런 부류를 종종 만나나.
“심리학자로서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렵고 도전적인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적절한 도전이 쾌와 불쾌의 균형을 맞추기 때문인가.
“그렇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정한 만족은 쾌락과 역경 사이에 있는 적절한 균형점에서 온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이 더없이 맛있고, 고생한 후에 담그는 목욕물에서 삶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던가.”

인간은 고난을 감수해서 미래에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여행 선택지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은 환승 공항에서 기다리며 쇼핑하는 것보다 추운 날씨에 시내 구경하는 것을 더 많이 선택한다. 플로리다에 있는 체인 호텔보다 퀘벡에 있는 아이스 호텔을 더 많이 원한다.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보다 ‘힘들지만 추억에 남는 경험’이 더 우세하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뇌가 쾌락만큼이나 의미를 추구한다는 증거다.”

분쟁과 가난이 있는 아프리카 등 극빈국 국민이 행복 지수는 낮지만,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 지수는 높다는 데이터가 흥미롭더라. 여기서 통찰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고통과 의미 사이의 관계가 강력하다는 점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자기 삶에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말할 가능성이 컸다. 빈곤은 단기적 행복을 앗아가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반면 안락한 환경의 사람들은 ‘목적의식 결여’라는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미국에서 부흥한 긍정심리학의 부작용은 뭐라고 생각하나.
“인간의 욕구를 쾌락으로 한정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쾌락을 원한다. 나중에 먹을 두 개의 마시멜로보다 지금 먹을 수 있는 한 개의 마시멜로를 원한다. 그러나 다양한 선택지를 준다면 인간은 지금 당장이나 먼 훗날이 아닌, 약간 미룬 후를 택한다. 지연 후 맛보는 보상의 쾌감이 더 극적이니까. 요점은 인간은 더 다양한 동기로 움직인다는 거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때도, 종종 끔찍한 세상을 찾아 나선다. 타인이 겪는 고통에서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는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 인간은 매우 복합적인 존재다. 쾌락만을 추구했다면 ‘매트릭스’에서 살았겠지.”

직접 연구해 보니, 사람은 왜 굳이 힘들게 산을 오르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가.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갖는 애착은 삶의 질이 하락하는 상황을 압도한다. 조사 결과 자녀를 돌보는 데 더 오랜 시간을 들이는 사람일수록, 자기 삶이 더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더 의미 있다고 답했다. 

작가인 제이다 스미스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공포와 고통 그리고 기쁨의 기묘한 혼합’이라고 묘사했다. 
등반에서도 감각적 쾌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산악 등반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고통의 연속이다. 가혹한 추위, 탈진, 고통, 배고픔⋯.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다른 요소는 자기 능력에 대한 호기심이다. 정상이 가까워지면 욕구가 압도적으로 커져서 귀환을 거부해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인간은 끝내 어떤 산이든 오르려는 욕구가 있는 존재다.”

하지만 노력은 역시나 고통스럽다. 우리의 에너지가 한정됐기 때문인가.
“힘들다는 느낌은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더 나은 일이 있다는 신호다. 똑똑한 진화가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다.”

노력을 비교적 오래 쉽게 유지할 방법이 있을까.
“노력 자체가 쾌락의 원천이 되는 절정은 일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것이라고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몰입’ 개념이 나온다. 힘든 데도 힘든 줄 모르고 집중하는 ‘몰입’이야말로 쾌락과 노력의 합일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삶의질연구소 소장인 칙센트 미하이는 자신이 쓴 ‘몰입’이라는 책에서 ‘자기 목적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그 자체로 즐기며 외적 목표를 좇지 않는다. 호기심, 끈기 등 ‘낮은 자기중심성’이 특징이다.

일반인에게 몰입 경험은 대개 즉각적인 피드백과 명확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나온다. 너무 쉬운 것(지루함)과 너무 어려운 것(스트레스와 불안감) 사이에 딱 적절한 정도의 도전이 몰입을 일으킬 수 있다.”

행복만 좇는 것은 문제가 되나.
“역설적이지만, 행복해지려고 너무 노력하면 행복을 망칠 수 있다. 키스를 얼마나 잘하는지를 생각하느라 키스를 잘하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일례로 행복 추구 경향 조사에서 ‘행복감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항목에 체크한 사람들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감과 외로움을 더 많이 느꼈다. 무엇보다 행복만 추구하면 지루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인공적으로 쾌락을 극대화하려는 체제 수호자에게 저항자가 하는 말은 인간 본성을 함축하고 있다. ‘저는 안락함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시를, 진정한 위험을, 자유를, 선을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죄악을 원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고난을 찾아 나서야 하나.
“아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충분한 고난이 당신과 사랑하는 이를 덮칠 것이다. 그러니 굳이 더 많은 고난을 찾아 나설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고난과 사이좋게 잘 지내기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행복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팩트는 우리가 환희와 쾌락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통해 더 개선되게 하는 것이 진화의 본질이라는 거다. 다소 암울한 이 진실을 받아들이면, 담담한 희망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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