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오델 스탠퍼드대 미술사학과 교수 UC 버클리 영문학 학사,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학 석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저자 / 사진 사진 작가 Ryan Meyer
제니 오델 스탠퍼드대 미술사학과 교수
UC 버클리 영문학 학사,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학 석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저자 / 사진 사진 작가 Ryan Meyer

요즘 우리는 ‘눈 뜨고 코 베인 듯’ 대놓고 정신을 판다. 구매자는 소셜미디어(SNS) 기업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소셜 플랫폼은 사용자의 주의와 집중을 빼앗아 순환시키는 ‘관심 경제’로 돌아간다. 제정신을 못 차리도록 디자인된 교묘한 알고리즘은 ‘관심 지옥’과 광고판 속으로 당신의 시선을 착취하고, 시간을 훔친다.

소셜미디어와 자본주의 생산성 트랙에 반기를 든 실리콘밸리의 혁명가 제니 오델 교수를 소개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제목의 책을 낸 그녀는 설치 예술가이고 작가이며 스탠퍼드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지적인 선동가로서 그는 수시로 밖으로 나가 새를 관찰하고 장미 정원을 산책하며,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적정 영역 안에서 신세진 이웃을 돕는다.

엄청난 가속도로 돌아가는 관심 경제의 쳇바퀴를 멈추려면 느린 ‘관찰’과 ‘감각’ 세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이 다정한 미학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2019년 미국 출간 당시 버락 오바마가 트위터에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뒀다.


제니 오델 스탠퍼드대 미술사학과 교수. 사진 사진작가 Ryan Tuttle
제니 오델 스탠퍼드대 미술사학과 교수. 사진 사진작가 Ryan Tuttle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란 책을 썼지만, 실제로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슬로건의 선동가로서, 이 행위는 ‘도피, 게으름, 뜬구름 잡기’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자주 산책하는 ‘장미 정원’의 유지 보수를 예로 들어보자. 장미를 자라게 하려면 일 년 내내 많은 돌봄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성의 표준 관점에서 정원의 유지 보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다. 겉으로 보기에 공공 정원은 늘 똑같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행위가 생산성의 틀 안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다. 사실상 적극적인 행동 계획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역할은 생산성 관점에서 무시됐던 ‘무관심 영역’을 발굴하는 것인가.
“그렇다. 인간에게는 ‘계량화할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 많다.”

최전선의 디지털 생태 지역인 실리콘밸리에선 최근 알고리즘의 내부 고발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관심을 화폐로 환전시키는 이 디지털 메가시티를 당신은 어떻게 보나.
“실리콘밸리에서 자라면서 나는 그곳이 산타크루즈산과 샌프란시스코만 사이에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실리콘밸리의 이미지는 너무 추상적이고 과장돼 있으니까.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보는 실리콘밸리는 ‘널리 퍼진 상식적인 유행을 선별해서 해시태그와 브랜딩 그리고 등급이 있는 값비싼 서비스로 만드는 곳’에 불과하다. 기술 내부 고발자들은 실리콘밸리 기업이 테크노-유토피아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저 수익 주도적인 기업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디지털 디톡스 또한 어떤 생각도 상품이 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뿐.”

당신 주변에는 순환과 재생을 가치 있게 경험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내 아버지는 2년 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퇴거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책을 읽고 낚시를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플루트를 익혔다. 초라한 나와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을 견뎌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시기에 그는 창조성과 열린 상태, 그것에 필요한 지루함을 배웠다. 일터와 산을 주기적으로 오가는 아버지에게 어느날 내가 증강현실(AR)에 관해 물었더니 자신이 지금 증강현실 안에 살고 있다고 답하시더라. 이런 식의 유쾌함과 휴식, 보살핌은 그 자체의 가치로 존중받아야 한다. 현재 새 직장을 구하고 있는 내 친구도 (실제로는) 백수지만 스스로를 (반농담으로) ‘전업 친구’라고 부른다.”

그 ‘전업 친구’와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내 전업 친구가 최근 최고의 선물을 해줬다. 보석 세공인이 쓰는 루페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10배 확대경이다. 친구와 나는 루페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곤 한다. 가령 식물원에서 식물을 클로즈업해 보고 털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돼 깜짝 놀랐다. 이른 아침엔 신비로운 이슬방울도 관찰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새를 보기 위해 나는 쌍안경을 가지고 다닌다. 아버지가 이 동네의 표준 조류 안내서와 함께 10년 전에 주신 거다. 쌍안경과 루페는 내게 두 개의 다른 시력을 선사한다. 하나는 더 깊게 보도록, 다른 하나는 더 당겨 보도록 해준다.”

관찰은 과학과 예술의 기본 토대인데 그것이 우정과 일상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신기하다.
“두 개의 눈은 항상 놀라운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나는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 쌍안경이나 루페가 없다면 ‘iNaturalist’라는 앱을 사용해 보라. 식물과 동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바로 정보를 알려준다.”

관찰하려면 신체적 탐문 능력과 적정 영역이라는 ‘동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역시 ‘장소성’인가.
“장소와 관찰은 일종의 선순환 구조로서 중요하다. 소셜미디어의 불안한 관심 순환 구조와는 반대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 세베네 셀라시는 최근에 ‘당신은 과대 자극되었지만, 과소감정화되었다’라는 글을 썼다. 그녀의 지적처럼 우리는 온종일 언어적이고 시각적인 데이터에 시달린다. 그 해독제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다른 감각을 사용해서 상호작용하는 거다. 냄새 맡고, 음악 듣고, 춤추고, 집에 있는 식물을 만지면서. 현실에서 아바타가 되지 않으려면, 감각을 사용해야 한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상호작용을 기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

전원에서 멍 때리기, 수도원 피정, 오두막에서 휴대전화 없이 지내기 등 낯선 장소로 떠나는 정기적인 디지털 디톡스 휴가가 감각을 깨우는 데 도움 되나? 문득 트럭을 타고 떠도는 영화 ‘노마드랜드’도 겹쳐서 떠올랐다.
“초기에 디지털 디톡스 캠프를 만들고 활동했던 레비 펠릭스는 도시를 떠난 독립성을 중시했다. 특정한 버전의 자유와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노마드랜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맞다. 내 경험으로는 디지털 디톡스 휴가는 꽤 유익하다. 짧은 패닉이 있지만, 어쨌든 휴대전화가 무력해진다는 건 매력적인 체험이니까. 그 여행에서 나는 흐르는 강과 시에라네바다산맥과 깊이 교감했다. 휴대전화에서 관심을 끄니 사방이 관심거리더라. 새와 나무와 별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차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중요한 건 그 휴가가 무기한도 아니고,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디어의 사이클과 서사를 벗어난 휴식을 경험하면, 돌아가서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세상에 참여하면서도 사색할 수 있다. 외부자의 관점을 유지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전 세계 사회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디지털 거리 두기 캠페인을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정말 재미있겠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분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기를 바란다.”

얼마 전 ‘고립의 시대’를 쓴 노리나 허츠 박사와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쓴 네트워크 과학자 데이먼 센톨라를 인터뷰했다.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더 나은 사회 변화를 위해, 그들은 공통으로 로컬 단위의 깊은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얘기했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연결’의 허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맞다. 하지만 사람의 직접 연결만이 해답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비인간 생명체와도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다른 종과 단절된 고립감을 로빈 월키머러는 ‘종의 외로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연 속에 홀로’라는 말이 정말 이상하다. 어떻게 혼자일 수 있나? 자연에는 수많은 종이 함께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분이 새를 관찰하러 갈 때, 새들은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에 반응하는 존재들이다. ‘자연 속에서 혼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서구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그런 생각은 마치 플라스틱 입자처럼 우리가 지구에서 사는 구분된 개인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정체성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을 사람, 식물, 동물, 날씨 등 많은 것이 만나고 변화하는 교차지점으로 사고하라. 물론 용기와 인내와 겸손이 필요한 일이다.”

세상을 주도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더 다정해졌나.
“물론! ‘보는 것은 신세를 지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결과는 대상에 대한 책임이니까. 새를 관찰하는 사람 중에서 기후 변화가 조류 개체 수에 미치는 영향에 무관심한 사람은 없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책임지게 된다. 더불어 집중하고 변화를 관찰하고 관계를 파악하는 행위는 그것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평평하게 사물화하는 소셜미디어와는 정반대다. 엽서 사진과 실제 풍경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마지막으로 소셜미디어에 관심을 착취당하지 않고 관심의 통제권을 회수하기 위한 행동 가이드를 부탁한다.
“일단 질문과 관찰에 습관을 들이려면 일기를 쓰는 게 가장 좋다. 짧게 명상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명상은 공허가 아니라 관찰을 키우는 행위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가장 드라마틱한 행동이다. 새, 나무, 바위, 건축을 선택해서 집중하면 다른 세계, 다른 풍경이 열릴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건 전날과 다른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거다. 단번에 찾을 순 없지만, 결국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고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때는, 한 번씩 심호흡하라. 그 순간에 어떻게 느끼는지 돌아보라. 생각과 감정뿐 아니라 자세와 표정을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일어나라. 이 동작만으로도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효과가 가장 확실한 행동은 당신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동네 음식점 직원이나 경비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이다. 관심을 표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여러분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동시에 돕게 된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