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에서 경기하는 중국의 에이스 마롱. 독일을 꺾고 4연패를 달성한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시작된 단체전에서 남녀 모두 다른 나라에 금메달을 내준 적이 없다. 국제탁구연맹(ITTF)
2020 도쿄 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에서 경기하는 중국의 에이스 마롱. 독일을 꺾고 4연패를 달성한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시작된 단체전에서 남녀 모두 다른 나라에 금메달을 내준 적이 없다. 사진 국제탁구연맹(ITTF)

한국 여자 골프는 기로 위에 서 있다. 박세리(45)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컵을 거머 쥔 이후 20여 년간 승승장구하던 기세가 2021년 멈췄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선수들의 해외 무대 진출과 해외 대회 진출이 급격히 줄어든 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자 골프 선수들을 기르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실력 있는 외국 선수들이 늘어난 게 근본 원인이다.

장타 능력을 비롯해 고른 기량으로 지난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넬리 코르다(미국)와 유카 사소(필리핀), 패티 타와타나낏(태국) 등은 앞으로도 한국 선수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이번 기획을 함께한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엘리트 선수만 3000만 명이 넘는 중국 탁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만리장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스웨덴에 일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실력을 기르는 근본 처방으로 더 높은 철벽을 구축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탁구는 중국을 위한 스포츠 종목이다. 올림픽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 선수를 제압하면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지난 2004년 한국의 유승민(현 IOC 위원)이 중국의 왕하오를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결승에서 제압했던 것도 기적이었다.

중국이 탁구 종목을 오랜 기간 지배하는 이유는 엘리트 선수만 3000만 명에 이르는 두꺼운 저변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등을 서술한 ‘중국의 붉은 별(1937년 출간)’을 펴낸 에드거 스노가 이미 중국에서 탁구는 신기할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탁구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인식이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59년이었다. 탁구는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중국이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자를 배출했던 종목이다. 이 기념비적인 위업의 주인공은 1959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우승자 롱궈탄이었다. 롱궈탄의 우승은 중국인에게 중국 건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로 받아들여졌고 탁구가 중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종목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탁구는 미국과의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 계기도 마련 해 줬다. 1971년 ‘핑퐁외교’ 이후 중국은 유엔(UN)에 가입하게 됐고 이때부터 중국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영향력이 커졌다.

사회적 의미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이 탁구 왕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 무대에서 중국 탁구가 정상을 지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첫 번째 기술은 ‘스카이 서브’였다. 1960년대 중국에서 개발된 스카이 서브는 탁구 서브 기술의 신기원이었다. 스카이 서브는 상대 선수의 타이밍을 손쉽게 뺏을 수 있다. 탁구공을 공중으로 던진 뒤 내려올 때 순간적인 임팩트를 가해 구사하는 스카이 서브는 그런 점에서 중국 탁구의 필살기 역할을 했다.

스카이 서브뿐 아니라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던 중국 탁구는 무적의 팀이었다. 하지만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중국 여자 탁구의 아성은 한국에 의해 무너졌다. 이에리사와 정현숙이 이끌었던 한국 여자 탁구 대표팀이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제압했다. 한국은 강한 루프 드라이브를 앞세운 선제공격으로 중국을 무력화시켰다. 이는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세계 제패였지만 중국 탁구로서는 일종의 참사였다.

중국 탁구는 2년 뒤 펼쳐질 세계대회를 앞두고 혁신 모델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물이 ‘이질(異質)러버’였다. 중국 탁구는 라켓 표면에 붙이는 고무판에 돌기(핌플)를 장착했다. 이질러버는 공의 회전과 스피드에 있어 일반 러버와 다르게 반응해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상대 선수 입장에서는 비밀병기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1975년 인도 콜카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질러버의 중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중국 탁구 왕조의 1차 위기는 이렇게 극복됐다.

하지만 중국 탁구 왕조의 2차 위기는 1980년대 다시 찾아왔다. 2차 위기의 진원지는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한국이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탁구가 주요 클럽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자리잡았던 스웨덴은 1980년대 중반부터 탁구 강국으로 부상했다. 급기야 스웨덴은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 남자 탁구를 침몰시켰다. 스웨덴은 남자 단식과 남자 단체에서 모두 중국을 넘어섰고 그 중심에는 얀 오베 발드네르가 있었다.

발드네르는 탁구 라켓 양쪽 면을 사용할 수 있는 ‘셰이크핸드(shakehand)의 모차르트’로 불릴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다. 중국 선수들이 집중적으로 상대 몸을 향해 공략하는 방식의 공격을 가공할 만한 반사 신경으로 이겨낼 수 있는 선수였다. 그는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에서도 스웨덴이 중국을 제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중국 선수가 구사했던 드라이브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방향만 바꿔 놓는 절묘한 수비로 포인트를 올리는 발드네르는 난공불락이었다.

셰이크핸드로 무장한 유럽 탁구 장인들의 거센 도전을 받기 시작한 중국 탁구는 설상가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중국이 금메달 2개를 따내긴 했지만 여자 복식과 남자 단식 금메달은 한국의 차지였다. 양영자와 현정화 한국 여자 복식조는 빠른 공격 타이밍으로 중국 탁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전진 속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체력과 순발력이었다.

중국은 백핸드 공격이 강하고 수비 범위도 넓은 유럽 셰이크핸드 선수들과 체력과 민첩성이 결합한 ‘발탁구’를 구사하는 한국 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변모해야 했다. 그 핵심 키워드는 힘이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의 회전수가 많은 파워 드라이브와 강력한 서브를 중국 탁구의 미래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중국 선수들이 선호하는 펜홀더 그립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셰이크핸드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중국식 펜홀더 라켓’을 고안했다. ‘중국식 펜홀더 라켓’은 펜홀더의 장점인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펼칠 수 있으면서도 라켓 뒷면으로 수비까지 할 수 있게 해줬다.

중국 선수들이 이런 ‘이면타법(裏面打法)’을 완벽하게 구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 탁구는 1990년대 초반 최고 유망주 쿵링후이를 유럽 탁구 중심지 스웨덴에 보내 셰이크핸드 선수들의 장점을 습득하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쿵링후이는 세계를 대표하는 셰이크핸드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중국식 펜홀더를 통한 이면타법은 그의 뒤를 잇는 스타 류궈량에 의해 시작됐다.

류궈량은 ‘힘이 곧 기술이며 수비도 때로는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중국 탁구의 새로운 지향점을 완성해준 선수였다. 그는 중국 탁구의 전매특허인 파워 드라이브를 근간으로 유럽 셰이크핸드 선수들의 수비 능력까지 갖춘 만능선수로 평가받았다. 중국 탁구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스타 선수들 은퇴 후에도 롤 모델

탁구 선수들은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롤 모델인 경우가 많다. ‘탁구 여제’ 덩야핑은 은퇴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토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수와 감독으로 중국 남자 탁구계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살아있는 전설’ 류궈량은 현재 중국탁구협회 회장이다. 1980년대 세계적 스타였던 차이전화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탁구 종목에서의 성공 신화를 축구로 전파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중국의 자랑거리인 탁구 스타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중국 스포츠 유망주들이 탁구에 뛰어들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탄탄한 저변과 과감한 혁신은 다른 국가가 넘보기 힘든 거대한 중국 탁구의 장벽을 구축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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