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서울대 국어국문학 학사 및 석사, 단국대 국어국문학 박사,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및 고문, 전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 사진 김용호 사진작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서울대 국어국문학 학사 및 석사, 단국대 국어국문학 박사,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및 고문, 전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 사진 김용호 사진작가

2021년 10월, ‘삶과 죽음에 대한 빛나는 대화’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진행한 이어령 선생의 특별한 죽음 수업이었다. 나는 1년여의 시간 동안 평창동을 방문하며 그의 지적 여정을 인터뷰로 기록했다. 그는 책에서 죽음이란 어떤 상태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관찰하고 온몸으로 감각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일상에서 느끼는 죽음의 불안, 그것은 “주머니에 깨진 유리 조각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다”거나, 있던 곳으로의 귀가라는 점에서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소리와 같다”고도 했다. 이어령은 22세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에 비수를 꽂는 선전포고문 ‘우상의 파괴’로 유명 인사가 된 이후, 67년간 때로는 천둥 같은 인식의 스파크로 시야의 조망을 터주었던 한국 지성의 큰 산맥이다. 십수 년 전 이미 ‘디지로그(Digilog⋅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라는 아름다운 미래 문명을 선창한 분임에도, 당신이 제일 잘한 일은 문화부 장관 시절 ‘노견(路肩)’을 ‘갓길’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그림자 모양이 바뀌듯,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세상을 내다보는 그의 식견은 더욱 밝고 깊어졌다. 어느 해보다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2022년 새해를 맞은 독자들에게, 이어령의 지혜가 한 번 더 전달된다면 세뱃돈 받은 것처럼 한 해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만남을 청했다.


서가에 책이 정말 많다. 경이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거의 없다. 다 중간을 본다. 의무적으로 연애해서 잘되는 거 봤나? 책도 그렇다. 만남이고 기회고 우연이다. 밤에 깨서 서가를 걸어 다니면, 애들이 요염한 자세로 나를 부른다. 우연히 시선이 꽂힌 제목을 뽑아 훌훌 책장을 넘기다 기막힌 문장을 만나면, 딱 덮는다.”

왜?
“‘악’ 소리가 나거든. 감전된 것 같다. 내가 오늘 밤 깨어 이걸 펼치지 않았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문장을 봤을 때 말이다. 그게 환희다. 그게 독서지.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보면 설렌다. 저 속에 뭐가 있을까, 언젠가 만나면 운명적인 글을 쓰게 되겠지. 그래서 소가 풀을 뜯듯 자유롭게 책을 읽으라는 거다. 책 쓰는 사람은 씨 뿌리듯 시스템을 쓰지만, 읽는 사람은 자유롭게 읽는다.”

그가 한밤에 깨어 홀로 서가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에게 밤은 얼마나 짧은가. 그가 아흔아홉 마리 양으로 떼 지어 살지 말고 한 마리 양으로 생을 어슬렁거리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흔아홉 마리 양은 목자 엉덩이만 쫓아 눈앞의 풀만 뜯어 먹지만, 한 마리 양은 구름을 보고 꽃향기를 맡다 홀로 낯선 세계로 나아간다.

혼자를 감각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게 생명이거든. 거대한 이념, 거대한 숫자로 환원하면 끝난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4000명을 죽이면 그런 생각이 안 든다. 히틀러는 마음이 여려서 자기 앵무새 한 마리 못 죽였지만,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대학살했다. 인간이 집단이 되면 추상이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느꼈지 않나. 생명을 집단화하면, 개인의 얼굴과 숨결은 다 묻혀버린다.”

한국 사회는 요즘 더 주체적으로 각성한 ‘슈퍼 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 유니크(unique)해지는 거다. 그래서 37억 인구 중 그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오징어 게임’을 본 거다. 나는 ‘오징어 게임’이 정말 흥미로웠다. 서양 사람은 바닷속 스퀴드만 먹어서 마른오징어의 납작한 형태를 모른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글 자음에 들어있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신비를 모른다. 그런데 실제 우주의 모든 디자인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다. 한국인은 어릴 때 이미 바닥에 그걸 그리고 놀았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가.”

그 자신, 유년의 놀이에서 힌트를 얻어 성년의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어린 날 굴렁쇠를 굴리며 놀던 기억을 살려 88 서울 올림픽 무대에서 재현했고, 정오의 정적에서 느낀 죽음의 환청으로, 평생 서늘한 감각으로 ‘메멘토 모리’를 환기해 왔다. 상징계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놀았던 이어령.

‘오징어 게임’의 진짜 재미는 성기훈(이정재 분)의 성이 세인트(Saint⋅성인군자)로 해석되는 언어 게임이라고 했다.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보다 실수하고 못났지만 그래도 인간을 믿고 희생애를 간직한 성기훈이 가장 예수와 닮은 사람이라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김용호 사진작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사진 김용호 사진작가

‘오징어 게임’이 돈과 빚에 찌든 한국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했다는 비판도 있다.
“밑바닥이 다 드러났지. 탈북자들, 이주 노동자들, 해고당한 사람들….  소외되고 짓밟힌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물어뜯잖나. 우리 속담에 ‘거지끼리 자루 찢는다’고 불행한 사람끼리 모여, 뺏고 뺏는 게임…, 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한국에 노동하러 오겠나. 악당들은 거기 다 있더구먼. 창피해서 살겠나, 싶겠지. 허허. (정색하며) 그런데 ‘나는 바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한국이 이런 나쁜 짓을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서 이미 벗어난 거다. 진짜 무서운 건 그걸 감추는 나라다. 우리는 모순을 드러냈기에 자유롭다. 고해성사 같은 거지. 자신을 고발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희망이 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인간은 믿을 만하다는 것, 세계인은 그걸 보고 안도한 거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에겐 더 구체적인 희망이 필요하다.
“나는 1934년생, 태어나는 순간 식민지 아이였다. 눈 떠보니 전쟁이었지. 최악의 환경이기에 나아질 희망도 구체적이었다. 전쟁 때는 살려고 발버둥 쳤지,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26세에 논설위원이 돼서 머리 허연 주요한 선생과 같이 논설을 썼다. 다들 어려웠고 더 패기가 있었다. 지금은 국내총생산(GDP) 10위권의 거대 도시에 살아도, 더 막막하고 불행하다. 그러나 세계가 이미 다 세팅된 것 같아도, 반드시 더 나은 길과 몫이 있다. 단적으로 코로나19 백신 누가 만들었나? 터키 이민자다. 남들이 다 포기한 ‘메신저 리보핵산(messenger RNA)’ 방식으로 다르게 가서 결과를 냈다. 비주류가 진짜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왔다. 그러니 앞으로 한국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세계로 나가라.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출구가 여러 개면 살 수 있다.”

상징계와 자연계가 고장 나면 끝이지만, 법과 제도계가 고장 나면 고쳐 쓰고 바꿔 쓸 수 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병든 정부, 감옥 같은 국가를 인간은 다 바꿔서 썼다. 선거를 통해서도, 바깥으로 나가는 걸 통해서도, 우리는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희망의 존재인지 보라.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탈출하려고 비행기 타다 떨어져 죽잖나. 눈물 나는 얘기다.”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서 나아가야 하나.
“마지막에 믿을 건 성기훈처럼 자기 안에 있는 휴머니티다. 자기 안의 세계성, 자기 안의 영성…, 그것이 치킨게임 같은, 오징어 게임 같은 세상에서 여러분을 아름다운 승자로 만든다. 믿어도 된다. 착한 자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는 악한 현실과는 다른 원리가 역사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지금 그것을 한국인이 만들어서 퍼뜨리고 있잖나. 영화 ‘미나리’를 보라. 힘 없는 할머니가 아칸소 초원의 바퀴 달린 집에서 가족을 구원하잖나. 아무리 망가지고 변두리로, 가장자리로 밀려나도, 한국인은 점점 더 최고의 인간이 돼 간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인간이 되는 그 바탕에는 휴머니티가 있다. 그게 456억원을 가져가는 승자의 DNA다.”

그는 휴머니티가 결국은 생명 자본이라고 했다.

선생은 십수 년 전 이미 ‘디지로그’와 ‘생명 자본’이라는 아름다운 미래 문명을 선창하셨는데, 지금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안에서 인간과 아바타는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까.
“제일 중요한 게 인터페이스다. 아날로그의 입자와 디지털의 파동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그 ‘사이’를 고민하는 자다. 머리(디지털)와 가슴(아날로그)을 연결하는 목. 우리는 생명을 목숨이라고 한다. 서양은 목(neck)에 걸리면 나쁜 거잖나. 우리는 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길목, 손목, 나들목…. 어른들이 ‘사이 좋게 놀아라’ 하듯이 현실과 가상, 로봇과 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사이좋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그는 생명 자본, 디지로그 모두 이 ‘사이’를 부드럽게 풀어서 이어준 명명이라고 했다.

언어의 신비가 그러하듯, 사랑과 권위로 명명하면 생명이 생기는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발견해야 한다. 사이의 언어를! 인터페이스의 생명을! 우리는 자장면과 스파게티를 섞어 짜파게티를 만드는 민족이다.”

그는 디지로그는 더 이상 과학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고 태도의 문제라고 했다.

다가올 인공지능(AI) 세상은 뭐라고 호명해야 할까.
“이젠 AI가 아니라 인공지혜(AW) 세상이다. Artificial intelligence가 아니라 Artifi-cial wisdom이다. AI로 전쟁 무기를 만들었다면 AW로는 행복의 무기를 만들어라.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잠들어도 한 몸처럼 느끼는 AW 베개를 만들어라. 서양 사람은 기껏해야 깃털 베개 만들었지만, 우리는 조 넣고 콩 넣어서 바이오 베개를 만든 민족이다.”

언제 신의 은총을 느끼시나.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프다.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낀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한다.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진다.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는다.”

마지막으로 여쭙겠다.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고,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라는 말씀에는 변함이 없으신가.
“변함없다. 생은 선물이고 나는 컵의 빈 곳과 맞닿은 태초의 은하수로 돌아간다. 그러나 또 한 번 겸허히 고백하자면, 나는 살아있는 의식으로 죽음을 말했다. 진짜 죽음은…, 슬픔조차 인식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참 슬픈 거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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