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집권 세력은 과거 두 차례에 걸친 좌파 집권 기간에 벌인 언론사 세무조사와 ‘대못박기’에 이어 ‘언론재갈법’으로 또다시 언론탄압에 집착하고 있다. 사진은 이 법에 반대하는 시위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지금의 집권 세력은 과거 두 차례에 걸친 좌파 집권 기간에 벌인 언론사 세무조사와 ‘대못박기’에 이어 ‘언론재갈법’으로 또다시 언론탄압에 집착하고 있다. 사진은 이 법에 반대하는 시위 모습. 사진 연합뉴스

흔히 쓰이는 일본어 중에 ‘오고레루 모노와 히사시카라즈(驕れる者は久しからず)’라는 숙어가 있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헤이시 집안 이야기)’라는 고대 역사 이야기의 서두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원문은 “오고레루 모노 히사시카라즈, 타다 하루노 요노 유메노 고토시(驕れる者久しからず, ただ春の夜の夢の如し)”이다. 즉 “교만한 자 오래가지 못하니, 그저 봄밤의 꿈과 같도다”라는 말이다.

일본의 ‘삼국지’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12세기 후반 일본을 주름잡던 헤이시(平氏) 집안의 영화와 몰락을 대하드라마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가 중심인물인 헤이시 집안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권력에 취한 나머지 그들은 “헤이케니 아라즌바 히토니 아라즈(平家に非ずんば人に非ず)”, 즉 “헤이시 집안 사람이 아니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까지 거리낌 없이 내뱉을 정도로 그 교만함이 극에 달했다. 이는 과거 S대학 출신의 어느 우파진영 대선후보가 “S대학 안 나오고도 기자 될 수 있나?”는 식의 막말을 한 것과 유사한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던 이 가문의 권세와 영화도 결국은 적대 세력인 겐지(源氏) 집안에 의해 일문멸족(一門滅族)을 당하는 처절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 기간이 20년도 채 되지 못했다.

최근 국내외의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은 말할 것도 없이 아프간 정부 패망과 ‘언론재갈법’의 일방적 강행 통과다. 이 두 사태를 보면서 필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바로 ‘교만’이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20년간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방의 지원을 믿고 교만해진 나머지 나태와 부패로 하루아침에 나라를 무너뜨렸다. 국내의 좌파 집권 세력은 압도적 다수당이라는 교만으로 다중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는 폭거를 일으켰다. 과거 두 차례의 집권 시절 각각 세무조사와 ‘대못박기’로 언론탄압에 집착한 바 있는 좌파 세력은 이번에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인류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만한 자는 반드시 멸망하였다.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 이치를 역사적 사실이나 자신의 경험 또는 타인의 사례를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한때의 성공으로 자신을 얻게 되면 그 교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바로 교만해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관을 보지 않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不見棺材不掉淚)’는 중국 속담처럼 호된 꼴을 당하기 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우매함 때문이다.

지금의 집권 세력은 과거에 바로 그 교만함으로 인해 대중의 신망과 지지를 잃고 스스로 ‘폐족’이라고 한탄하면서 한동안 뼈저리게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이 바뀌어 다시 권력을 잡았다고 교만한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우매한 짓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선인들의 가르침에는 교만을 경계하는 말이 특별히 많다. ‘구약성경’의 ‘잠언’에는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는 경구와 함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는 교훈이 실려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滿招損, 謙受益)”는 ‘서경(書經)’의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같은 선인들의 가르침을 어릴 적부터 익히 배운 바 있는 이병철(李秉喆) 삼성 창업주는 ‘호암자전(湖巖自傳)’에서 “교만한 자치고 망하지 않은 자 아직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젊은 시절 처음 벌인 사업에서 경험한 실패가 바로 교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는 교훈으로 얻은 그는 이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김으로써 후일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프간 정부의 붕괴는 결국 교만으로 인한 나태와 부패 때문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사진은 난민들의 탈출이 어려워지자, 군중이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미군에게 아이를 건네는 모습. 사진 AP연합
아프간 정부의 붕괴는 결국 교만으로 인한 나태와 부패 때문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사진은 난민들의 탈출이 어려워지자, 군중이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미군에게 아이를 건네는 모습. 사진 AP연합

중국 역사에서 교만으로 인해 실패하거나 멸망한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항우(項羽)다. 귀족 출신으로 자질과 재능이 출중한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나머지 ‘강퍅한 성격에 모든 일을 제 고집대로 처리하여(剛愎自用)’ 결국 패망에 이르렀다. 그가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에 불렀다는 ‘해하가(垓下歌)’에서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다(力拔山兮氣蓋世)”고 하였으니 그 교만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때가 불리하여 나의 말도 가지 않는구나(時不利兮騅不逝)”라고 시절을 원망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260년에는 조(趙)의 조괄(趙括)이 진(秦)과의 ‘장평(長平)전투’에서 패전, 45만 명의 대군이 참수 또는 생매장되는 비극을 맞았다.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병법에 능통한 그가 군사작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교만한 장수가 되어 결국 나라를 패망 직전으로 몰고 갔다. 이런 그를 조롱거리로 하여 ‘종이 위에서 군사를 논하다(紙上談兵)’는 말이 생겨났다.

삼국시대에는 백만 대군을 거느렸다는 원소(袁紹)가 그보다 훨씬 열세인 조조(曹操)에게 ‘관도(官渡)전투’에서 패망하였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북방을 통일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호호탕탕 남하하였지만 ‘적벽(赤壁)대전’에서 대패하였다. 이 양자의 패인도 물론 교만이다.

383년에는 중국 북방을 통일한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동진(東晋)을 정벌하려고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으나, ‘비수(淝水)전투’에서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상대에게 처참하게 궤멸되었다. 역시 수적 우세로 생겨난 교만함 때문이었다. 패잔병들은 도주하면서 “산 위의 풀과 나무만 보아도 모두 적군으로 착각하고 놀랐으며(草木皆兵)” “바람 소리와 학 울음만 들어도 기겁하였다(風聲鶴唳)”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경험을 통해 예부터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驕兵必敗)’는 말이 널리 회자된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 현대사에서도 압도적 우세였던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장정(長征) 끝에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은 우리도 깊이 되새겨야 할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이상과 같은 고금의 역사 사실과 선인들의 교훈을 지금의 좌파 집권 세력은 뒤늦게라도 겸허하게 되새겨 보며 각성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언론재갈법’이라고 국내외적으로 크게 비판받는 ‘언론중재법’을 당장 철회하도록 권한다. 그래도 계속 교만한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면,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현될 날이 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권세가 있다고 다 휘두르지 말지니, 권세가 다하면 원수와 마주치리라(有勢莫使盡, 勢盡寃相逢).”


▒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홍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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