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요리와 스페인의 리아스 바이샤스 와인. 사진 김상미
게 요리와 스페인의 리아스 바이샤스 와인. 사진 김상미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데 시원한 화이트 와인보다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아이스버킷에 담아 차게 식힌 와인이 목구멍을 타고 쭉 내려가면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트 품종은 고작 샤르도네(Chardonnay)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정도다. 기나긴 여름 내내 이 와인들만 마실 수는 없는 일. 조금은 낯설지만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상쾌한 화이트 와인은 여름철 보양식과도 궁합이 잘 맞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해산물과 어울리는 바닷가 와인들

서유럽 와인 역사는 약 2000년에 이른다. 이렇게 긴 시간 사람들은 다양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먹고 취사선택을 반복했다.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자신들이 먹는 음식과 가장 잘 맞는 품종을 고르지 않았을까?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논할 때 ‘그 지방의 음식은 그 지방의 와인과 즐긴다’는 것을 제일가는 원칙처럼 내세우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와인들을 보면 바닷가 산지에서 나는 것들이 많다.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의 북서쪽 끝에 자리한 갈리시아(Galicia) 지방. 여기에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리아스 바이샤스(Rias Baixas)라는 산지가 있다. 스페인의 여름은 덥고 건조하기로 악명 높지만, 리아스 바이샤스만큼은 예외다. 이곳은 대서양에 인접해 비가 자주 내리고 날씨가 온화해서 생산되는 와인도 상큼함이 남다르다.

리아스 바이샤스 와인은 알바리뇨(Alba-riño)라는 청포도로 만든다. 알바리뇨가 리아스 바이샤스에 도입된 것은 12세기였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이 포도가 독일 라인강 유역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청량한 독일산 화이트 와인과 맛이 비슷해서였다. 그래서 ‘라인강에서 온(riño) 흰 포도(alba)’라는 뜻으로 알바리뇨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대에 와서 DNA 검사를 한 결과, 전혀 다른 품종임이 밝혀졌지만, 알바리뇨로 만든 리아스 바이샤스 와인은 스페인 와인 특유의 묵직하고 힘찬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가볍고 섬세하다. 레몬색이 영롱하고 재스민 같은 꽃향기가 은은하며 레몬, 자몽, 복숭아, 파인애플 등 신선한 과일 향이 가득하다. 갈리시아의 특산물인 게, 새우, 조개 요리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고 하니, 모처럼 해산물로 보양식을 계획한다면 리아스 바이샤스 와인 한 병 곁들여 볼 만하다.

갈리시아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 국경을 넘으면 포르투갈의 최북단 와인 산지인 비뉴 베르데(Vinho Verde)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말로 비뉴는 와인, 베르데는 녹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비뉴 베르데를 영어로 ‘그린 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와인은 전혀 녹색을 띠지 않는데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리아스 바이샤스처럼 비뉴 베르데도 대서양과 가까워 한여름 기온이 높지 않고 비가 많이 내린다. 따라서 유난히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져 있다. 뜨겁고 메마른 포르투갈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곳은 완연한 녹색 지대다. 현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녹음에 둘러싸인 곳에서 생산된 와인이어서 비뉴 베르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루레이루(Loureiro), 아린투(Arinto) 등 여러 가지 토착 품종을 섞어 만드는 비뉴 베르데는 알코올 도수가 9~10% 정도로 낮고 라임, 풋사과 등 과일 향이 상큼해 무더운 여름을 가볍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단맛 없이 드라이한 것도 있고 살짝 달콤한 것도 있어서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도 있다. 가벼운 해산물과 잘 어울리고 기름에 볶거나 튀긴 음식에 곁들이면 산뜻한 신맛이 느끼함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매운 음식에도 화이트 와인이 별미

여름엔 매콤한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마실 와인으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과일 향이 진한 것이나 화사한 향이 가득한 와인을 추천할 만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에게 와인 산지로 익숙한 곳은 아니지만 이미 세계 8위의 와인 생산량을 자랑하는 나라다. 남아공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은 슈넹 블랑(Chenin Blanc)이라는 청포도다. 슈넹 블랑은 원래 프랑스가 고향이다. 프랑스산은 섬세하고 우아한 반면, 남아공산은 과일 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아공 슈넹 블랑의 경우 가격이 저렴할수록 복숭아와 살구 등 잘 익은 과일 향이 더 진하다는 것이다. 비빔냉면이나 막국수처럼 매콤한 양념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 가성비 좋은 남아공 슈넹 블랑을 곁들여 보자. 달콤한 과일 향이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 음식이 한결 맛있게 느껴지고 와인의 청량함도 살아난다.

남아공에서 남대서양을 가로지르면 아르헨티나에 다다른다. 이곳은 말벡(Malbec)이라는 적포도로 만든 부드럽고 묵직한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재배하지 않는 특별한 품종이 있다. 바로 토론테스(Torrontes)라는 청포도다. 토론테스는 주로 안데스산맥의 고지에서 재배되는데, 해발 1700m에 위치한 살타(Salta)라는 지역에서 자란 것을 최고로 친다.

고지대의 서늘한 공기와 강렬한 햇빛 속에서 자란 토론테스는 풍성한 과일 향과 상큼한 신맛의 밸런스가 매력적이다. 라벤더나 장미 같은 꽃향기와 사향의 풍미가 우아하기 그지없어 마치 꽃잎을 띄운 와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귀찜처럼 매콤하게 요리한 해산물과 즐겨도 좋지만, 복달임 음식으로 별미인 초계탕과 함께 맛보면 겨자의 톡 쏘는 향과 토론테스의 화사함이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가볍고 섬세한 화이트 와인은 의외로 돈가스와도 잘 어울린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의 북쪽에 가면 호이리게(Heuriger)라는 선술집이 모여 있다. 호이리게에서는 소시지, 샐러드 등 소박한 음식을 파는데, 여기에 유리 피처에 담은 신선한 와인을 자주 곁들인다.

호이리게의 햇와인은 빈 인근에 있는 바인비어텔(Weinviertel)이라는 광활한 산지에서 그뤼너 벨틀리너(Grüner Veltliner)라는 청포도로 만든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품종인 그뤼너 벨틀리너는 라임, 자몽, 풋사과 등 과일 향이 경쾌하고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 향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는 통념을 깨고 돈가스에 그뤼너 벨틀리너를 마셔 보자. 돈가스에 레몬즙을 뿌린 것처럼 느끼함이 사라지고 고기의 감칠맛이 한층 살아난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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