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생애 최고의 경기’는 골프 역사상 최고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위멧(샤이아 러버프 분·왼쪽)의 실제 이야기다. 사진 IMDB
영화 ‘내 생애 최고의 경기’는 골프 역사상 최고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위멧(샤이아 러버프 분·왼쪽)의 실제 이야기다. 사진 IMDB

둥근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언제부터 둥근 공을 갖고 놀 줄 알게 되었을까? 크고 작고, 동그랗고 길쭉하고, 무겁고 가벼운 공들, 굴러가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규칙도 가지각색. 발로 차거나 손으로 잡거나 도구를 사용해 멀리 보내고 골에 넣고 무언가를 맞추어 쓰러뜨린다. 물속에서, 땅 위에서, 얼음 위에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공 하나만 있으면 던지고 받고, 지키고 빼앗으며, 이겼다고 졌다고 웃고 운다.  

‘지상 최고의 게임’ 또는 ‘내 생애 최고의 경기’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이 영화는 골프 역사상 최고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위멧의 실제 이야기다. 미국에서 열린 제8회 US오픈에서 아마추어 선수로 첫 출전한 위멧이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골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해리 바든을 이기고 우승컵을 안는 기적을 일으켰다.

위멧이 좋은 환경에서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란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집에 돈을 가져오는 것이 남자가 할 일’이라고 믿었던 가난한 아버지는 귀족과 상류층이 즐기는 놀이일 뿐, 먹고사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며 골프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컨트리클럽 근처에 살며 어릴 때부터 캐디로 일했던 위멧에게 골프는 먹고 자고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꿈이었다.

1900년, 영국의 골프 스타 해리 바든이 US오픈에 출전하러 미국에 왔을 때, 어린 아들의 소망을 이뤄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위멧을 팬 미팅에 데려간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들려준 바든의 한 마디는 프란시스의 가슴에 남아 꿈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던 위멧은 고교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고 전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앞둔다. 그런데 클럽의 공식 회원이 되어야만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위멧은 만약 우승하지 못하면 골프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담보로 아버지에게서 입회비를 빌린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실력 이외의 요인이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처음으로 큰 대회에 출전한다는 부담감, 가난한 캐디가 나왔다고 비웃는 사람들 그리고 이기지 못하면 골프를 버려야 한다는 압박감. 위멧은 심리적 장벽을 이기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같은 해인 1913년, 잠재력을 알아본 골프협회는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하고 있던 위멧을 찾아가 아마추어 자격으로 US오픈에 출전할 것을 제안한다. 아버지와 약속을 핑계로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위멧은 다시는 클럽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브리티시 오픈에서 5연승을 기록하며 새로운 신화를 써가고 있던 해리 바든이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가슴이 설렌다. 아무리 깊이 감추고 눌러놓아도 마음속에서 지지 않는 태양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며 아버지는 더 완고하게 반대하지만 위멧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는다. 자식은 언제까지나 부모의 보호 속에서만 살 수 없다. 부모 품을 떠나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을 때, 자식은 비로소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기만의 인생, 자신만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위멧은 6연속 버디 기록을 세우며 가뿐하게 예선을 통과한다. 돈도 인맥도 없던 그에게 공짜로 해줄 테니 캐디를 맡겨만 달라고 졸랐던 열 살 소년 에디를 운명적으로 만난 행운도 한몫했다. “바로 그거야, 한 번에 하나씩.” “제대로만 굴려. 그럼 알아서 들어갈 테니.” “읽고 치고 넣는다, 골프는 쉽다니까.” 자기 키만 한 백을 끌고 다니면서도 에디는 위멧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긴장을 풀어주며 의젓한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위멧은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과 전년도 우승자들을 제치고 그의 우상이었던 바든과 결승에서 만난다.

쾌감을 자극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경기 룰을 잘 몰라도, 결말을 다 알고 봐도 마지막 홀까지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과정은 스포츠 영화의 긴장감, 특히 골프가 가진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패자의 성숙한 신사도를 보여준 해리 바든도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감동을 더한다. ‘타이타닉’에서는 보물을 찾아 나선 탐사대장으로, 그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낯을 익혔던 빌 팩스톤이 감독, 200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트랜스포머’에서 주연을 맡았던 샤이아 러버프가 위멧 역을 야무지게 해냈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신분을 중시했던 당시 미국에서 프란시스 위멧은 우승하고도 프로 골퍼가 되지 못했다. 40년이 지나서야 골프클럽의 명예회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골프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고 미국 골프의 폭발적인 대중화를 이끌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물결일 때도 있지만 나비효과처럼 단 한 사람이 일으킨 잔잔한 파장의 결과일 때가 더 많다.

이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노력하고 경쟁해서 최고가 되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최상의 자리에 올라 세간의 찬사를 받는 것도 그것이 영원하진 않을지라도 맛볼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시험은 불필요하고 1등이 될 필요도 없다며 경쟁을 죄악시하는 세상이 되고 있지만, 떳떳하게 이기는 것만큼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은 없다.

노력했으나 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좌절 없는 승리, 실패 없는 성공이 어디 하나라도 있을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에겐 쓰디쓴 약처럼 그 또한 좋은 기회다. 승자에게 악수를 건네며 “즐거운 시합이었어. 넌 축하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패자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둥근 지구 위에 살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둥근 공에 인생을 담아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응원하고 승자를 축하하고 승리를 본능처럼 기뻐하는 이유이다. 수없이 반복하고 몰입하고 집중해서 최고가 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해낼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다시 한번 일어설 거야!’ 그렇게 누구라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남몰래 주먹 안에 꼭 쥐어보는 것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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