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는 “음악을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핵심만 붙잡아서 리듬을 추출한다. 군더더기는 싹 빼낸다”고 말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장기하는 “음악을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핵심만 붙잡아서 리듬을 추출한다. 군더더기는 싹 빼낸다”고 말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가수 장기하의 첫 산문집은 ‘우롱차 회사에서 만든 맥주’ 같은 맛이었다. 깊은 탄산의 맛이랄까. 착실하게 잘 배열된 일상의 문장(마침 뮤지션 휴직 중이고 파주에 혼자 산다), 그 행간을 알싸하게 찌르는 특유의 심드렁함과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사유의 리듬에 적잖이 취기가 올라왔다.

그는 느끼고 썼다. 석양이 비치는 도심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사막의 별빛 아래 홀로 노숙하거나, 홀로인 듯 홀로이지 않으며 결국 홀로인 우리 존재의 충만과 결핍에 대해. 비틀스의 ‘애비로드’를 듣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세라 누나가 가버렸을 때의 슬픔이 몰려오는 우리의 출렁이는 감정에 대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입자로 흩어질 뿐인 죽음에 대해.

장기하를 만났다. 단념하는 자아와 전념하는 자아를 한 몸에 지닌 효율적 모범생. 한 번 사는 인생,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정직한 사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못하는 걸 하나씩 포기하고 나니, 지금의 선명한 자기가 남았다고 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특이해지는 걸 선택했고, 특이해지기 위해 자신을 맹렬하게 관찰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기하의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프롤로그 中. 사진 문학동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기하의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프롤로그 中. 사진 문학동네

장기하씨는 지금 디자이너처럼 보인다. 늘어놓은 것을 정리해서 에센스만 정확하게 배치해놓은 디자이너 말이다.
“내 접근 방식이 그렇다. 음악을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핵심만 붙잡아서 리듬을 추출한다. 군더더기는 싹 빼낸다.”

군더더기를 안 좋아하는군!
“그걸 인지하고서도 내버려 두는 경우는 없다. 창작에서는 군더더기를 빼는 게 정말 중요하다. 나는 창작은 결국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거다. 저마다 포착하는 핵심이 달라서 서로 다른 요약이 나오는 것 같다.”

디자이너 출신인 카카오 대표 조수용과 크리에이터 정구호도 그렇게 말했다. 더하기보다 빼기가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만들어낸다고. 너무 많은 공을 던지면 소비자는 받아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다… 매개체를 통해서 감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동어 반복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서는 모르면서 단언하는 것, 짧게 쓸 수 있는데 늘여 쓰는 것 등등. 음악도 장르의 클리셰(상투적 표현)나 편견이 있으면 불필요한 걸 못 뺀다.”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한 편의 긴 노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세이 문장이 일상의 운율과 리듬을 품고 있더라. 당신이 노래 부르듯 나도 흥얼흥얼 읽어보았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흥얼흥얼 썼나.
“(멋쩍게 웃으며) 쓸 때는 솔직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게 목표다. 퇴고할 때는 소리 내 읽어봤다. 자연스럽게 들려야 잘 짜인 문장이니까.”

노래를 만들 때는 어떤가.
“음악 창작은 대개 순서가 있다. 먼저 멜로디를 만들고 거기에 의미 없는 발음을 붙여서 노래 꼴을 만든다. 그다음에 발음에 잘 붙는 가사를 쓴다. 나는 다르다. 어느 날, 한 문장이 스르르 다가온다.”

문장이 다가온다?
“예를 들어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문장이 쑥 나왔다. 가사의 첫 줄이 올 때도 있고 후렴구가 올 때도 있다.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이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건 니 생각이고’ 이런 노래들은 다 실마리가 되는 문장이 먼저 왔다.”

왜 당신에겐 멜로디가 아니라 가사가 먼저 왔을까.
“(잠시 생각하다) 사실 나는 작곡가와 가수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리듬을 치는 드러머로서 어떻게 연주를 잘할까’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은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리듬을 인지하는 섬세함이 말이 가진 운율을 알아챌 수 있도록 이끌었달까. 드럼 연습을 열심히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선생님이 ‘이건 정박이지만 빠른 거야, 이건 정박이라도 약간 느린 거야’라고 할 때의 차이를. 처음엔 다 똑같아도 점차 그 차이가 다 들린다.”

미묘한 스윙을 캐치하는 건가.
“그렇다. 그게 드러머의 능력이다. 귀와 손으로 그 스윙을 찾아가는 거다.”

그 촉으로 언어의 음악성을 찾아갔나.
“언어의 음악성은 음표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생활 언어에서 추출된 거다. 나는 드러머로 연습한 신체 기능을 잘 활용해서 언어의 음악성을 하나씩 추출해 간 거다. 이미 말속에 있는 음악성을 건져서 밖으로 꺼냈달까. 가령 ‘우리 지금 만나’ 같은 노래도 생활에서 건진 노래다. 전화하다가 답답하면 만나자고 하잖나. 그때 ‘우리 지금, 만나’ 이렇게 한달음에 훅 나온다. 그 억양을 음계로 표현하면 ‘도도레레라라’ 정도다. 말 자체가 음계와 리듬을 이미 품고 있는 상태다. 대개는 피아노와 기타 출신이 노래를 만든다. 나처럼 드러머 출신의 싱어송라이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내 노래의 개성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산문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느긋한 리듬이 느껴졌다. 마치 장기하의 노래에서 산울림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과 같달까.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다. 소재가 고갈될 때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반성했다. 이렇게 사소한 소재로도 글을 쓸 수 있다니. 일상에 무궁무진한 소재가 있구나!”

장기하의 글과 노래에는 오래된 동시대성, 익숙한 독창성의 냄새가 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따라 한 게 많다. 노래도 산울림을 따라 했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나는 따라 한 사람이다. 산울림과 송골매라는 정확한 레퍼런스가 있다’고 떠들었다.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음악 팬들은 ‘속았다’고 느끼지 않더라. 나도 속인 적이 없다. 가사만큼은 내 삶을 관찰해서 내가 쓴 거니까(웃음).”

베꼈지만 다른 것. 껍질은 외갓집 참외처럼 친숙하지만, 알맹이는 더 달고 찝찔한 것. 새로운 닮은꼴. 그것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아들이 아버지의 염색체를 복제하듯 그는 하루키의, 김창완의 예술적 DNA를 흡입했다. 나는 그가 이 시대에 어울리는 매우 효율적인 천재라고 느꼈다. 이 효율적인 천재는 좋은 걸 따라 하는 것도 잘하지만, 단념과 포기에도 능했다. 이유 없이 손 근육이 마비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앓자 프로 드러머의 꿈을 포기했고, 기타도 못 칠 상태가 되자 작곡과 보컬에 전념했다. 장기하에게 단념은 전념을 위한 반가운 알리바이처럼 보였다.


장기하는 단념과 전념 사이에서 효율적인 힘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장기하는 단념과 전념 사이에서 효율적인 힘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짧게 절망한 후 자기를 잘 ‘설득해서’ 생의 방향을 트는 건, 타고난 낙천성인가.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초연한 줄 아는데, 아니다. 반대로 욕심이 너무 많다. 이를테면 나는 학창 시절 체육을 못해서, 체육을 안 했다. 혼나면서도 기어이 포기했다. 뭐랄까, 나는 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일에는 흥미를 못 느끼는 인간이 아닌가 한다.”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일은 빠르게 포기한다는 건가.
“그렇다.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건 다 포기한다. 세상에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잘하지 못하면 고통받으니 신속하게 단념하는 거다. 돈에 욕심을 안 부리는 건 재력에 두각을 나타낼 자신이 없어서다. 나는 가창력에도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 그렇게 하나둘 포기하다 보면 알게 된다. 최고가 없으면서 내가 1등 할 수 있는 분야는 개성이라는 걸. 개성을 살리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구나! 나 혼자 게임해서 1등을 해야겠구나! 이를테면 축구가 아니라 혼자 뛰는 달리기를 선택하는 거다.”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렇다. 잘 못하면 특이하기라도 하자는 거지. 그런데 특이한 게 쉬운 게 아니다. 자신을 맹렬하게 관찰해야 한다. 타고난 게 나밖에 없으니, 나를 잘 살려야 한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패닉으로 활동했던 가수 이적의 8년 후배다.

좋은 학벌이 당신 인생에 영향을 미쳤나.
“서울대에 가보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득했다. 내 또래 청년이 기형도는 물론 웬만한 문학 전집을 다 읽었더라. 나만큼 책을 안 읽은 사람이 없었다. 결론은 겨룰 수 없는 일엔 노력하지 말자. 나는 고효율을 추구한다. 사람이 가진 게 다 거기서 거긴데 어디다 힘을 쓸지 효율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진짜 테스트는 사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사회에 나오면 시험 범위가 없잖나. 그런데 고학력자들은 1등을 못 하면 굉장히 당황한다. 심리적인 대비가 안 돼 있거든. 그때 자기만의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안 되는 게임은 포기하고 범위가 작아도 내가 1등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의 그라운드를 찾았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내 방법을 찾은 거다.”

팬덤에 대해서는 어떤가? 방탄소년단(BTS)의 아미가 부러울 때도 있나.
“아미가 대단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그 정도의 팬덤은 나의 행복을 위해 일찌감치 포기했다. 추구하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팬들은 장기하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다. ‘별일 없이 산다’ ‘그건 니 생각이고’ 이젠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책까지 내니, 내가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줄 아는데, 아니다.”

연연한다는 말인가.
“물론! 나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창작하는 사람은 대단한 예술혼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사실 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주변 몇몇 사람의 칭찬이 성에 안 차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싶은 사람들. 그런 면에선 나나 BTS가 다를 바 없다. 순수미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난 사람들이 관심 안 가져도 상관없어’라고 하는 분들을, 나는 믿지만 의심한다(웃음).”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과장과 오해에서 벗어났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나에 대해 과장하고 오해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상관없는 것 아닌가’라고 스스로 선언해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기에 이런 제목의 책까지 썼겠나(웃음). BTS나 아미가 부럽진 않지만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나가는 사람은 다 부럽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는 해도, 한눈팔면 역시나 또 부러워진다. 나는 망했고 나는 가망 없고 나는 실패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래도 10년 넘게 뮤지션으로 잘 살아남은 이유는, 완전하진 못해도 60~70% 확률로 포기에 잘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과욕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정도로, 포기에 성공했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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