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의 폭정을 비판한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사학과 교수. 사진 열린책들
트럼프 시대의 폭정을 비판한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사학과 교수. 사진 열린책들

폭정
티머시 스나이더│조행복 옮김│열린책들
168쪽│1만2000원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를 최근 확정했다. 오는 11월 선거의 초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다. 미국 대선이 지구촌에 미치는 영향은 언제나 막중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 내부에 머물지 않고, 지구촌 민주주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집권 이후 그와 유사한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여러 나라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독재 통치를 강화하는 시대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둔 뒤, 미국 사회는 한마디로 분열의 시대를 겪고 있다고 한다. 열성 지지층을 선동해서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트럼프의 통치 방식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그의 집권 이후 인종 갈등이 증폭하더니, 최근 경찰의 흑인 사살 사태에 분노한 전국적 시위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트럼프 시대의 혼란은 일찍이 예견된 측면이 있다.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사학과 교수가 2017년 ‘On Tyranny’를 내자마자 국내에서 번역본 ‘폭정’이 나왔다. 이 책은 명백하게 트럼프의 폭정을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나섰다. 스나이더 교수는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가르침을 준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그는 “현대 민주주의 역사 또한 쇠퇴와 몰락의 역사”라면서 1920~30년대 유럽에서 전체주의(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가 득세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역사가 오늘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책이 요즘 한국에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과 언론인 칼럼에 종종 인용된다. 왜 그럴까. 20세기 전체주의가 대중을 장악한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민주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을 열거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 책은 뒤로 갈수록 트럼프 비판 수위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주의자인데, 국가주의자는 애국자와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국가주의자는 ‘끝없이 권력과 승리, 패배, 복수에 관해 생각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국가주의는 상대주의적이다.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생각할 때 느끼는 분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이나 ‘위대한 미국을 다시 한번’ 같은 구호뿐만 아니라 최근 연이은 ‘중국 때리기’ 정책이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비판 언론을 향한 분노 표출을 선뜻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오늘날 미국과 서구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원인을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으로 나누어 파악했다. ‘필연의 정치학’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가 종식된 뒤 ‘자유민주주의 승리’를 섣불리 역사의 필연으로 여긴 나머지 ‘신자유주의’에 매몰돼 또 다른 미래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게을렀다는 것이다.

‘영원의 정치학’은 국가주의적 대중주의자가 열광하는 과거 역사의 신화적 재현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은 1930년대 미국이 나치 독일에 맞서기 위해 만든 위원회 명칭이었고, 영국의 브렉시트 정치인은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환상적으로 추억하면서 ‘영원의 정치학’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필연의 정치학이 일종의 혼수상태 같다면, 영원의 정치학은 최면 상태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순환적 신화의 소용돌이를 황홀경에 빠질 때까지 응시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충격적인 일을 저지른다.”

이 책의 핵심은 사실 도입부에 이미 나왔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한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 우리가 가진 한 가지 이점은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이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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