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0주기를 맞은 문학비평가 김현이 타계하기 1년 전, 난을 돌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올해로 30주기를 맞은 문학비평가 김현이 타계하기 1년 전, 난을 돌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사라짐, 맺힘
김현│문학과지성사│291쪽│1만2000원

“책읽기는 결핍이나 불행의 몸짓을 연습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가 책을 통해 불행이나 결핍이 되어, 충족이나 행복을 싸워 얻게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읽기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문학비평가 김현(1942~90)은 1980년대 중반에 낸 평론집 ‘책읽기의 괴로움’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책읽기가 선사하는 즐거움의 세계로 망명하는 현실 도피를 경계했다. 그 대신 책읽기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가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이 날카롭게 지적한 현실의 고통에 더 깊이 감응함으로써, 그 고통에 맞서 싸우려고 했다. 그러한 지식인의 입장이 ‘책읽기의 괴로움’으로 표현됐다.

그의 문학 후배들이 편집하는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서 추모 특집을 꾸몄지만, 원래 7월 초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30주기 추모 학술대회는 수도권의 확진자 증가 때문에 연기되고 말았다.

김현의 문학비평은 16권으로 완간된 전집으로 계승되고 있지만 일반 독자가 선뜻 집어 들기엔 너무 무겁다. 다행히 무난하게 김현의 글쓰기를 음미할 수 있는 오솔길이 있다. 김현이 남긴 에세이를 후배 평론가 이광호가 편집해서 새로 꾸민 산문집 ‘사라짐, 맺힘’이 지난해 여름에 나와서 아직 서점에 살아있다. 포켓북 형식으로 출간된 이 책은 생활, 문화, 독서, 여행, 예술 비평에 걸쳐 다양하게 쓰인 산문을 주제별로 모아놓았다.

앞서 소개한 ‘책읽기의 괴로움’은 1980년대 중반에 낸 평론집인데, 이 산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그 생각이 아주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쳤음이 드러난다. 산문 ‘즐거운 고통(1976년)’에서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책읽기는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대부분의 경우 책읽기는 즐거운 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을 최근에 윤흥길의 ‘황혼의 집’을 읽으면서 다시 느꼈다. 그가 고통스럽게 읽은 세상을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즐겁게 접근해갔는데 그 책을 덮고 나니까 다시 그가 느낀 고통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

김현이 1970년대 중반에 쓴 미술 비평에서도 고통은 핵심 어휘로 등장했다. 고흐의 예술혼에 대한 해석은 이랬다.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신이 하나의 광태가 되어,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그의 광태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기를, 그리고 자기 존재 속에 숨어 있는 심연을 바라다보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중략) 진짜 고통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짜로 고통하는 사람은 그것을 오히려 즐긴다. 그것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로 아프지 않고 어떻게 남에게 진짜 아픔의 소리라고 느껴질 소리를 내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김현은 세상을 뜨던 해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말로 설명될 수 있고, 있어야 하는 세계 속에는, 이곳이 살 만한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곳이, 사람 사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대표적인 곳이 예술의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편안함은 그곳이 아름답고 살 만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서 연유한다.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도피를 뜻하지 않는다. 현실 생활의 일상성에 길든 정신에는 그 편안함처럼 불편한 것이 없을 것이다. 진짜 도피는 편안한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정신이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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