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 이촌동 가정식 전문점 수퍼판의 파티 준비 상차림, 대표 메뉴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 함바그. 사진 조선일보 DB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 이촌동 가정식 전문점 수퍼판의 파티 준비 상차림, 대표 메뉴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 함바그. 사진 조선일보 DB

가정식은 쉬운 듯 어렵다. 우리는 ‘가정식?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음식 아니야?’라며 만만하게 보거나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 집 음식은 과연 맛있었는지. 어려서부터 먹고 자라며 내 혀가 길든 맛일 뿐, 남들도 인정하는, 객관적으로 맛있는 음식은 아닐 수도 있지 않겠냐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 요리 솜씨를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가정식이 얼마나 어려운 음식인지 설명하려는 것뿐이다.

서울 이촌동 ‘수퍼판’은 맛있는 가정식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우정욱 대표는 ‘이촌동 요리 선생님’으로 지금도 이름 높다. 20여 년간 수많은 주부가 가족에게 먹일 음식을 그에게 배웠다. 가정식 전문점이라지만 국, 나물, 찌개, 김치 같은 전통 한식은 아니다. 함바그(햄버그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등 한식과 양식, 일식, 중식이 섞여 있다. 21세기 서울 강남 엄마가 아이들에게 차려주는 밥상에 올리기 좋은 음식, 모처럼 일찍 귀가한 남편과 와인 한잔 마실 때 곁들이기 알맞은 요리 같은 ‘모던한’ 가정식이다.

수퍼판은 이촌동 터줏대감 장미맨숀 상가 1층에 있다. 반투명 플라스틱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건축가인 우 대표의 남편 김선제씨가 뉴욕 브루클린 스타일의 벽돌 타일로 인테리어를 마감했다.

테이블에 앉자 종업원이 물병과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클립보드에 끼워진 메뉴가 몇 장 되지 않는다. 전채 3가지, 메인 요리 9가지, 식사 5가지로 간략한 편. 하지만 맛없는 요리가 없다시피 해 어떤 걸 시켜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오랜만에 왔기에 고민하지 않고 먹어보고 싶은 걸 다 먹기로 했다. 우선 전채로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와 ‘들깨 묵은지 냉채’를 주문했다.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는 수퍼판 하면 누구나 바로 떠올리는 대표 메뉴. 말랑하고 달콤하게 조린 서리태(검은콩)를 부드럽고 고소한 마스카르포네 치즈에 버무렸다. 곁들여 나오는 얇게 썬 바게트에 발라 먹는다. 서리태를 5ℓ 냄비로 사나흘에 한 번씩 삶아도 동이 날 정도로 인기란다. 들깨 묵은지 냉채는 훨씬 한국적인 맛이다. 물에 씻은 묵은지를 더덕, 영양부추, 불고기 등과 함께 들깨 소스에 버무렸다. 처음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을 때는 고소한 들깨와 산뜻한 부추 향이, 씹으면 더덕의 쌉쌀한 맛과 불고기의 달콤짭짤한 맛이, 먹고 나면 묵은지의 개운한 맛이 느껴지는 복합적인 한국식 샐러드다.

‘듀록 보쌈’은 육질 좋기로 이름난 듀록 품종 돼지 삼겹살로 만드는데, 단순히 쪄내기만 하지 않고 직접 만든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굽는 과정을 추가해 일반 보쌈보다 맛이 깊고 식감이 쫀득하다. 함께 나오는 장아찌나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백김치와 먹으면 더 맛있다. 센 불에 육즙을 가둬 구운 ‘한우 바싹 불고기’는 그렇잖아도 질 좋은 한우 살코기를 배즙에 재워, 자연스러운 단맛이 기분 좋고 육질이 한층 부드럽다.

맛있는 음식은 희한하게 먹을수록 식욕을 당기는 마력을 지녔다. 전채와 메인 요리를 먹고 나니 식사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졌다. 배가 든든하게 불렀음에도 ‘함바그’ ‘라자냐’ ‘어란 파스타’ ‘시래기 리조토’를 주문했다.


서울 이촌동 가정식 전문점 수퍼판의 우정욱 대표가 요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이촌동 가정식 전문점 수퍼판의 우정욱 대표가 요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촉촉한 육즙 환상적인 함바그

함바그는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와 함께 수퍼판의 명성을 이끄는 쌍두마차 메뉴. 소고기에 돼지고기를 적정 비율로 섞어 프라이팬에 구운 함바그는 고기 씹는 맛도 훌륭하지만, 육즙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입안을 축축하게 적셨다. 여기에 비장의 데미글라스 소스가 섞이면 그야말로 환장의 조합이다. 노른자를 터뜨려 함바그와 소스, 밥과 함께 비벼 먹으면 더욱더 맛있는 달걀프라이를 주방 사정으로 더 올려주지 않는 건 무척 아쉬웠다.

시래기 리조토는 이탈리아식 쌀 요리 리조토에 도토리묵과 시래기, 무, 크림, 치즈를 쌀과 함께 뭉근하게 끓이고 여기에 잔 멸치를 튀겨 얹었다. 리조토 본연의 고소한 맛이지만 한국 사람 입에 전혀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버섯과 가지를 듬뿍 넣어 느끼하지 않은 라자냐도 마찬가지다. 이름이나 겉보기엔 외국 음식 같지만 먹으면 낯설지 않고 개운한 뒷맛이 분명 한식의 DNA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요리들이 바로 수퍼판이다.


수퍼판(SuperPan) ★★

분위기 편안하면서도 세련됐다.
서비스 전문적이지 않은 듯 전문적이다.
추천 메뉴 서리태 마스카포네 치즈 1만4000원, 들깨 묵은지 냉채 1만6000원, 문어 아보카도 3만원, 불고기 주꾸미 떡볶이 1만9000원, 듀록 보쌈 3만6000원, 한우 바싹 불고기 3만6000원, 메로구이 3만6000원, 업진살 수육 4만2000원, 라구 파스타 2만1000원, 시래기 리조토 2만3000원, 함바그 2만3000원, 라자냐 2만5000원, 어란 파스타 3만2000원. 서리태 마스카포네 같은 대표 메뉴와 음료 등 8코스로 구성된 디너 코스A는 1인 5만5000원이며 2인 이상 주문할 수 있다.
음료 100가지 넘게 구비된 와인 리스트의 핵심은 내추럴와인이다. 내추럴와인을 화이트 29, 레드 18 총 47종이나 보유한 식당은 서울에서 찾기 힘들다. 내추럴와인, 특히 주황빛을 띠는 ‘오렌지 와인’이 발효 식품이 많고 고기·생선·채소가 두루 섞여 있는 한식과 잘 어울리므로 다양하게 갖추게 됐다고 한다. 맥주 11가지, 전통주 4가지도 있다. 콜키지 차지를 와인은 병당 3만원, 나머지 주류는 5만원씩 내고 가져가 마셔도 된다.
영업 시간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저녁 오후 5시 30분~10시. 일요일 휴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계단을 올라야 하고 경사로가 없다.

★ 괜찮은 식당
★★ 뛰어난 식당
★★★ 흠잡을 곳 없는 식당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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