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코스 설계의 거장 피트 다이의 대표작인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 매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린다. 사진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도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3 홀로 꼽히는 17번 홀 그린을 둘러싼 팬들. 사진 PGA투어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코스 설계의 거장 피트 다이의 대표작인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 매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린다. 사진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도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3 홀로 꼽히는 17번 홀 그린을 둘러싼 팬들. 사진 PGA투어

세계적 골프 코스 설계가인 피트 다이(1925~2020)가 1월 9일 별세했을 때 수지 웨일리 미국프로골프협회 회장은 “다이는 후세에 이어질 훌륭한 그림을 땅에 남겼다”고 했다.

그 열하루 뒤 다이가 남긴 대표작 TPC 소그래스(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를 방문했다. 골프 코스는 3월 12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준비가 한창이었다. 관중석을 만들고 코스 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미 PGA투어가 직접 주관하는 대회로 세계랭킹 등에 따라 정상급 골퍼 144명이 출전하는 특급대회다. 1974년 창설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1982년부터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리고 있다. TPC는 ‘투어 선수들의 클럽(Tournament Players Club)’이란 뜻이다.

그는 현대 골프 코스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TPC 소그래스 바로 옆에 PGA투어 본부가 있고,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월드 골프 명예의 전당’이 있으니 이곳을 ‘현대 골프’의 중심지라고 할 만했다.

타이거 우즈(45·미국)는 “다이의 코스는 어렵지만 하나하나 다 어려운 이유가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샷마다 선수의 전략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까다로운 코스 때문에 선수들이 탈진(burn out)하기 쉽다고 한다.

뛰어난 아마추어 골퍼였던 다이는 보험 판매업을 하다 30대 중반 뒤늦은 나이에 아내 앨리스와 함께 골프 코스 설계가로 전업한 인물이다. 그는 1963년 스코틀랜드를 방문해 초창기 링크스 코스를 접한 후 자신의 설계 철학을 완성했다. 특히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 발상지인 프레스트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침목을 이용한 항아리 벙커와 작고 위험 요소가 많은 그린, 도전적인 레이아웃 등이 그 영향이다. 다이는 ‘사드 후작’이란 별명을 얻었다. 사디즘(가학증)이란 말의 유래가 된 그 사드 후작이다. 1994년 그가 낸 회고록 제목은 ‘나를 항아리 벙커에 묻어라’였다.

TPC 소그래스는 처음부터 토너먼트를 위해 만들어진 코스였다. 선수들의 미세한 실력 차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벙커와 해저드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좁은 페어웨이, 거친 러프 등 도전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앉혔다. 매번 홀의 방향이 바뀌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82년 이곳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렸을 때 선수들은 너무 가혹한 코스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좁은 페어웨이와 단단하고 빠른 그린, 끝없이 등장하는 워터 해저드와 벙커에 질린 선수들이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가 설계한 스타워즈 골프 같다”고 악평했다. 당시 우승자였던 제리 페이트(미국)는 마지막 퍼트를 성공한 후 이 코스를 만든 다이와 딘 비먼 PGA투어 커미셔너를 18번 홀 그린 옆 물로 밀쳐 빠트린 뒤 자신도 연못으로 다이빙했다. 리 트레비노(미국)는 이를 두고 “그때 악어가 세 명을 모두 잡아먹길 바랐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웃고 있는 피트 다이. 그림에 17번 홀 아일랜드 그린이 담겨 있다. 사진 PGA투어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웃고 있는 피트 다이. 그림에 17번 홀 아일랜드 그린이 담겨 있다. 사진 PGA투어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한 최경주.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한 최경주.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자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이 대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상징적인 코스에서 열린다. 나 자신을 플레이어스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영광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코스는 선수들에게는 시련을 주지만 관중에게는 친화적이다. 설계 당시부터 관중들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주요 지점마다 관람석이 마련돼 있다. 워터 해저드가 많은 것은 기량 테스트라는 목적도 있지만 미적인 요소도 고려해서다.

TPC 소그래스의 시그너처 홀은 17번 홀(파3)이다. 137야드에 불과해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라면 피칭 웨지로 공략할 수 있다. 하지만 매년 수많은 선수가 이 홀에서 좌절하곤 한다. 사방이 물에 둘러싸여 있어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수시로 변하는 데다 그린이 딱딱해 공이 그린에 떨어진 후에도 물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매년 약 10만 개의 공이 ‘물의 제물’이 된다고 한다.

선수들의 불만에 다이는 “골프는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다. 왜 만만한 코스를 설계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사실 다이는 처음에는 그린의 일부만 물과 접한 단순한 디자인을 구상했다. 그런데 코스가 거의 완공될 때쯤 관중석을 만들다 보니 홀 주변의 흙을 거의 다 파내어 사용해 버렸다. 흙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이가 고민을 하자, 그의 아내 앨리스가 “아예 호수를 만들고 아일랜드 그린을 만드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다. 이제 17번 홀은 아름다우면서 가장 어려운 파3 홀의 상징처럼 됐다. 미국 골프 채널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중계 때면 10대 이상의 카메라를 17번 홀에 배치할 정도다.

클럽하우스에는 코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과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한 최경주와 2017년 정상에 오른 김시우의 드라이버도 보였다.

클럽하우스에는 100달러 지폐도 한 장 전시돼 있는데 TPC 소그래스의 시작을 알린 돈이다. 1970년대 말 커미셔너였던 비먼은 투어 본부가 있는 플로리다주에 홈코스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인근의 소그래스 컨트리클럽을 사려고 했지만 그곳의 회장이던 찰스 코브가 거절했다.

그러자 비먼은 소그래스 컨트리클럽 근처 늪지대에 코스를 만들겠다고 했다. 코브는 그곳에 코스를 만들지 못할 것이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그래스 컨트리클럽을 빌려서 플레어스 챔피언십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둘은 이를 두고 100달러 내기를 했다. 그 2년 후인 1980년 TPC 소그래스가 탄생하면서 코브는 비먼에게 100달러를 줘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메모도 전달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 걸 이룬 딘 비먼에게.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일의 어려움에 내기를 걸었던 코브로부터’.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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