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홍콩의 야경. 사진 이우석
고층 아파트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홍콩의 야경. 사진 이우석

한 해가 저물 때면 문득 떠오르는 옛날 감성, 1980년대 그 홍콩이 부른다. 나이 마흔여덟. 내게 홍콩은 가장 친숙한 외국이다. 영어는 학교에서나 배우는 것이고 일본어는 들을 기회가 아예 없었다. 영화 ‘취권(국내 개봉 1979년)’을 본 후, 광둥어가 중국어(보통화)인 줄 알았다. ‘취권’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소권괘초’ ‘사형도수’가 연이어 동네 극장에서 개봉했다. 성룡을 따라 했고 그를 통해 한국이 아닌 외국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느꼈다. ‘최가박당(1982년)’ ‘오복성(1983년)’을 보고난 후 으리으리한 건물들로 빼곡한 홍콩을 남몰래 동경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도 홍콩은 여전히 대단했다. 휘갈겨 쓴 한자의 붉은 네온사인이 길 위로 첩첩이 올라가고, 그곳 거리에서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장국영이 총질을 했다. 홍콩섬에서 바라보는 마천루의 불빛은 미래 도시 그 자체였지만 류덕화는 화려한 빌딩 뒷골목 낡은 아파트 옥상에 걸터앉아 칼스버그 캔맥주를 마셨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홍콩

1980년대 당시 홍콩 사회는 그야말로 암울(Noir)했고 허무했다. 1984년 중·영 정부가 공동선언을 통해 1997년 홍콩 반환에 합의했다. 한 세기 동안 홍콩을 ‘아시아의 진주’로 가꾸며 살았던 시민은 혼돈에 빠졌다. 홍콩의 부패와 범죄, 그 속에서 의리를 부각시킨 허무주의 누아르 영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홍콩의 스크린은 완차이와 성완(上環)을 중심으로 어두우면서도 의(義)를 지키며 살아가는 홍콩상을 그려냈다. 그래서 내 첫 해외 여행지로 홍콩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이었다.

여전히 홍콩은 비대칭의 공간이다. 다습한 열대 하늘 아래 최첨단 설계의 유리 빌딩이 있고 그 밑엔 어김없이 대나무 비계가 에워싼 아파트가 있다. 명품숍 가득한 거리엔 롤스로이스가 달리고 신호가 바뀌면 웃통을 벗어젖힌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몇 천만원, 몇 백만원씩 하는 와인숍 옆에는 오리와 닭으로 추정되는 가금류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홍콩 택시기사는 영어가 서툴지만, 노인은 노래 부르는 듯한 말투로 꽤 숙달된 영어를 구사한다. 홍콩은 신비롭고 익사이팅한 곳이다.

신계 지역도 있지만 홍콩은 크게 홍콩섬과 카오룽(九龍) 반도로 나뉜다. 예전엔 반도 침사추이에서 바라보는 홍콩섬 야경이 예뻤다지만 지금은 사실 둘 다 나름 근사하다.

홍콩섬에선 센트럴과 완차이를 빼놓을 수 없다. 센트럴은 30~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곳이다. 땡땡이 이층트램은 여전하지만 올드타운 센트럴에서는 보통 주변 관광지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소호거리와 헐리웃 로드가 중심이다. 새로 생긴 곳도 있다. 란콰이펑 인근 애버딘 거리 PMQ다. 경찰 기숙사였던 옛 건물이 문화‧예술‧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건물과 마당을 작은 아뜰리에, 공예숍, 패션숍, 베이커리, 티하우스 등 젊은 시민과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빼곡히 채웠다. 특히 달콤한 케이크, 쿠키와 차를 파는 카페는 젊은 관광객으로 줄을 드리운다. 란콰이펑을 둘러보다 쉬어가기 딱이다.

이곳에선 차찬텡(茶餐廳)이나 얌찻집이 많다. 밀크티와 토스트를 맛보다 보면 실제 주윤발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가 자주 찾는 단골집이 센트럴의 란퐁유엔(蘭芳園)이다. 란퐁유엔은 66년 전통을 자랑하는 차찬텡이다. 명주 거름망(絲襪)으로 밀크티를 걸러낸다. 소고기 사태를 넣은 라면(拉麵)이 인기다.

언덕이라고 겁먹을 것 없다. 홍콩 센트럴과 미드레벨을 잇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기네스북 인정 세계 최장 옥외 에스컬레이터다. 이것을 타면 다양한 명소들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중경삼림(1994)’에도 등장했다.

지난 5월에 다시 태어난 타이쿤(大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사실 행정청사로 쓰던 곳이다. 옛날 감옥과 법정, 경찰청 등으로 쓰던 근대 유적을 두고, 옆에 세계적 건축가의 설계로 건축물 2동을 지어올려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곳곳에 조명과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옛 감옥에서 술을 마시고 정원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개관하자마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골든하베스트가 중국에 인수된 이후 홍콩 누아르의 부흥은 없지만 지금도 완차이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초고층 컨벤션센터를 비롯해 맛있는 레스토랑과 명품숍이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 군데군데 남은 허름한 빌딩은 추억을 소환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게 한다. 수많은 네온간판 위로는 빨래가 층을 이루고, 그 위로는 하늘로 수직으로 뻗은 고층빌딩이 하늘을 가린다. 그 아래 홍콩의 이층트램은 보기만 해도 클래식하다. 1904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100년 전통 트램에는 에어컨이 없다. 하지만 주요 도심을 이으며 불과 500원도 안 되는 요금으로 시민과 관광객을 열심히 실어나른다.

노스포인트(北角) 인근 코즈웨이베이. 바다를 끼고 도는 신흥 도심이다. 완차이보다는 낡지 않았다는 뜻이다. 타임스퀘어 홍콩과 빅토리아파크 등 번화가와 자연이 함께하는 곳이다. 숙소를 이곳으로 정해도 괜찮을 듯하다. 덜 시끄럽고 교통도 좋다. 여러모로 편리하다.


1㎞ 이어지는 야시장 볼 만해

영화 ‘첨밀밀’의 처음과 끝 배경이던 카오룽(九龍)역. 카오룽반도의 중심이다. 보통어로는 주룽이라 부른다. 카오룽역에서 시작하고 또 끝난다.

카오룽반도는 홍콩섬보다 좀 더 사람 냄새가 풀풀 난다. 금붕어 시장, 새 시장, 꽃 시장 등 각종 특이한 시장이 즐비한 몽콕(旺角)의 밤은 절대 끝나지 않을 듯 보인다. 과연 북부 최대 상권의 명성에 걸맞은 성대한 분위기다. 침사추이까지 이어진 네이든로드를 따라 대형 쇼핑몰과 빌딩이 섰고, 뒤편으론 시장과 노천카페들이 여태껏 버티고 있다. 낮의 활기찬 거리 풍경은 야시장으로 이어진다. 이 중 유명한 곳은 템플스트릿 야시장. 잡다한 생활용품과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등을 파는 길이 약 1㎞ 정도 이어지고 양옆으로는 노천식당이 즐비하다. 영어 한마디 통하지 않고, 정통 홍콩 스타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밤에는 불 꺼진 빌딩 사이로 새빨간 깃발과 간판을 드리운 야시장의 기나긴 라인과 마주칠 수 있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5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plus point

홍콩에서 아침·저녁 즐기기

호화카페차텡의 밀크티와 토스트. 사진 이우석
호화카페차텡의 밀크티와 토스트. 사진 이우석

홍콩의 아침은 얌차로 시작한다. 홍콩은 ‘미식의 천국’이지만 얌차(飮茶)만큼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느지막한 아침 식사 문화다. 차를 마신다는 뜻이지만 국수와 토스트 등을 먹는다. 브런치의 원조 격인 셈이다. 곳곳의 이름난 차찬텡에서는 찻주전자를 통째로 내주고 간단한 음식을 판다. 아침으로 조린 닭발과 볶은 국수, 만두 등 딤섬을 맛볼 수 있다.

영국 문화의 영향으로 애프터눈티도 즐긴다. 정통 영국식도 있지만 홍콩식도 많다. 느긋하게 일어나 얌차와 애프터눈티를 챙겨 먹으면 오리지널 홍콩 스타일 생활을 누려볼 수 있다.

센트럴 타이핑쿤(太平館)은 1860년에 개업, 150년이 넘었다. 다이파이동(노점 식당)으로 시작한 80년 역사의 국숫집 카우키(九記)도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좁은 실내를 가득 채우는 집이다. 소힘줄과 도가니를 넣은 수프, 맑은 우육면이 자랑거리다. 린헝루(蓮香樓)는 차를 마시며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는 집이다.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다. 볶은 국수, 송화단을 넣은 죽, 고기냄비밥, 포자만두, 닭발조림부터 홍콩식 카스텔라까지 없는 게 없다. 호화카페차텡(豪華CAFE茶廳)은 소고기국수와 밀크티가 맛있는 집이다. 특히 밀크티와 커피를 섞은 인앙티는 이곳의 명물이다.

퀴(Qi)는 쓰촨요리로 미슐랭 별을 받았다. 매콤한 산라탕은 과연 명불허전임을 깨닫게 한다. 홍콩에서 가장 먼저 생긴 양식당 ‘지미스 키친’도 여전히 그 명성을 지키고 있다.

이우석 스포츠서울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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