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취역한 퀸엘리자베스(R08). 영국이 37년 만에 획득한 정규 항공모함이다. 건조 중 사출기 채택을 고려하면서 요원들이 미 해군에 파견되어 운용 기법을 교육받기도 했다. 자신들이 먼저 개발한 기술이지만 사장되면서 벌어진 결과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2017년 취역한 퀸엘리자베스(R08). 영국이 37년 만에 획득한 정규 항공모함이다. 건조 중 사출기 채택을 고려하면서 요원들이 미 해군에 파견되어 운용 기법을 교육받기도 했다. 자신들이 먼저 개발한 기술이지만 사장되면서 벌어진 결과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16세기 말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은 이후 400여 년간 바다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이 시기에 영국 해군이 만든 전략, 전술, 제도, 하다못해 군복에 이르기까지 해군과 관련된 모든 것은 누구나 따르는 규범 아닌 규범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중반에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왔으나 지금도 영향력은 여전하다.

특히 군함의 개발과 운용에 끼친 흔적은 대단하다. 19세기에 대양해군의 시대가 개막되자 영국은 당대 최고의 전열함, 장갑함, 전함, 순양전함을 차례대로 개발해 배치했다. 경쟁국들이 벤치마킹하면 곧바로 더욱 강력한 후속 함을 선보이며 우위를 확고하게 장악했다. 20세기 초에는 2위 국과 3위 국의 합계보다 두 배나 많은 전력을 운용했을 정도였다.

현재 강대국의 상징이자 한국 해군이 도입을 고려 중인 항공모함도 마찬가지였다. 군함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날려 보내고 착함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항공모함을 최초로 만들고 배치한 나라는 영국이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영국은 기존 순양함과 여객선을 개조해서 만든 퓨리어스(47)와 아거스(I49)를 각각 취역시켜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항공모함은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항공기를 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실험적인 함으로 취급받았다. 여전히 바다의 주인공은 거함이라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항공모함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2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의 역사는 완전히 새롭게 써졌다.


증기식 사출기를 이용해 이함하는 F/A-18 전투기. 영국이 1970년대 정규 항공모함을 퇴역시키면서 기술력이 사장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증기식 사출기를 이용해 이함하는 F/A-18 전투기. 영국이 1970년대 정규 항공모함을 퇴역시키면서 기술력이 사장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패권이 넘어가다

함포의 사거리 밖에 있는 목표를 쉽게 공격할 수 있게 되면서 해전의 방법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영국의 항공모함들은 대서양, 지중해 일대에서 활약했으나 적수인 독일, 이탈리아 해군이 약체여서 본격적인 항공모함의 역사는 미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한 태평양 전역에서 이뤄졌다. 특히 미국의 성장세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엄청난 산업 생산력을 발판으로 미국은 붕어빵 찍어 내듯이 항공모함을 제작해 전선에 투입했고 연합국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에 해군 3강인 영국, 미국, 일본의 항공모함 전력은 비슷했으나 전쟁이 끝났을 때는 미국의 완전한 독주 체제로 바뀌었고 세계 최강 해군국이라는 타이틀도 이전되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초강대국 부상이 있고, 세계 제국이던 영국의 몰락이 있다. 이후 소련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으나 제풀에 무너졌고 현재 도전장을 내민 중국은 아직 경쟁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 항공모함 전력을 수치로 계량화한다면 약 80% 정도를 미국이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항공모함의 선도국인 영국이 순식간에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 년 정도 지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은 해당 분야의 발달을 선도했다. 이착함 공간을 구분한 경사 갑판, 증기식 사출 장치, 반사경을 이용한 착함 유도 장치 등이 이때 영국이 개발한 것들로 현재 미국, 프랑스의 항공모함들이 사용 중인 기술이다.


1917년 취역한 퓨리어스(47). 최초의 항공모함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나 영국이 처음 만들었음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사진 라인17QQ닷컴
1917년 취역한 퓨리어스(47). 최초의 항공모함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나 영국이 처음 만들었음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사진 라인17QQ닷컴

예상치 못한 어려움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난에 시달린 영국은 국방비 절감을 위해 1979년 아크로열(R09)을 퇴역시킨 후 수직 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 체계로 전력을 재편하면서 해당 기술이 필요 없어졌다.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과를 올렸음에도 경항공모함의 부족한 작전 능력은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결국 영국은 정규 항공모함 체계로 환원을 결정하고 2009년 퀸엘리자베스(R08) 건조에 착수하면서 경사 갑판, 사출 장치 채택을 고려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은 오래전에 자신들이 개발했음에도 어이없게도 외부에서 도입해야 할 상황이었다.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작이나 운용과 관련된 노하우와 인적 자원이 사라져 버린 결과였다.

‘다마스쿠스 검’처럼 대체재의 등장으로 제작 기술이 사라지는 예는 생각보다 많다. 이를 흔히 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의 항공모함이 해당 기술을 활용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국 사례는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영국이 마음먹으면 재생할 수는 있겠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결국 미국에서 역수입하는 대안을 택했다. 갑론을박 끝에 경항공모함처럼 스키점프대를 장착한 이함 시스템을 택하면서 결국 유야무야되었지만 이는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니 과거의 기술을 함부로 사장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잊힌 기술은 이처럼 복구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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