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워싱턴은 정치 휴지기(休止期)다. 대통령도, 의원들도 워싱턴에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별장으로 떠나고, 의원들은 9월 초까지 이어지는 한 달간의 휴회 동안 모두 지역구로 내려간다. 신문은 가십성 기사로 재탕, 삼탕 채워진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부시 대통령의 ‘특별히’ 긴 휴가가 한 기록을 남겼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8월2일부터 무려 33일간의 장기휴가에 들어갔다.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으로 떠나 9월 초에 백악관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올해 33일간 여름휴가는 근래 미국 대통령, 최소한 지난 36년간의 기록에서는 최장기 휴가라고 한다. 한 기자가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외부일정을 추적해보니 취임 이후 크로퍼드 목장을 찾은 것은 49차례나 된다고 한다. 또 크로포드 목장에서 지낸 날도 319일이나 돼 대통령 재직기간의 약 20%를 목장에서 지낸 셈이다.

 이렇게 장기간 동안 백악관을 비우는 것에 대해 미국에서는 비판론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오히려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있는 시대에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든, 크로퍼드 목장에 있든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을 비운다 해서 미국의 행정부가 스톱하는 것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휴가 동안에도 실질적으로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다. 휴가 다음날인 8월3일에는 인근 군부대에서 연설을 했고 다음날엔 콜롬비아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등 공식 일정이 줄을 이었다. 다른 주에 가서 대중연설을 하는 일도 수차례 잡혀 있고, 백악관 및 내각 장관들과 경제, 외교 등을 주제로 회의도 수시로 연다. 한 달이 넘는 장기휴가 동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해변가에 가서 쉬는 ‘프랑스식’ 휴가와는 다른 셈이다.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떠남으로써 백악관내 보좌진들도 줄줄이 휴가를 가지만 늘 ‘대기상태’ 내지 ‘당번 업무’를 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하고, 일부는 순번을 정해 크로퍼드 목장에 상주해야 한다. 올해의 경우 휴가 첫 주에는 백악관 부실장 조 헤이건이 크로퍼드 목장 앞에 대형 트레일러를 갖다놓고 거기서 ‘당번’을 섰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휴가 중인 대통령에게 모든 정보를 취합해 보고하고 일정을 보좌하는 게 당번의 주 임무. 국가안보회의 스티븐 해들리 보좌관과 잭 크라우치 부보좌관도 이 당번 업무에서 예외가 아니다.

 올해는 특히 이들 당번과 보좌진들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알카에다 테러조직이 제2의 테러를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온 직후인 데다, 2001년 9·11테러 직전 교훈이 될 만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9·11테러 한 달 전인 2001년 8월6일 부시 대통령은 크로퍼드 목장에서 CIA로부터 “알카에다 조직원이 수년 동안 미국 내에서 활동을 했고 항공기 납치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한 달 뒤 9·11테러를 겪었다. 나중에 이 CIA 보고내용이 공개되면서 부시 대통령은 큰 곤욕을 치렀다. 부시 대통령과 보좌진이 올해 미 역사상 가장 긴 대통령의 휴가기간을 잡아놓고도 유난히 부지런을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