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제철소. 중국은 ‘2060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실질 제로’를 목표로 내걸면서 자국 내 철강 생산의 환경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각종 금속의 대폭 감산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와이어드
중국의 제철소. 중국은 ‘2060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실질 제로’를 목표로 내걸면서 자국 내 철강 생산의 환경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각종 금속의 대폭 감산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사진 와이어드

미국의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국제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인플레) 공포가 드리워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기가 침체했던 작년의 반동(反動)일 뿐, 인플레는 일과성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과도한 재정 금융 확장 정책과 ‘달러 퍼주기’에 따른 구조적 변화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중국발(發) 인플레’다. 이게 특히 위험한 이유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렸던 중국의 생산비 상승, 공급 물가 상승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6월 9일 자에서 중국발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간과돼 온 이유를 “노동력과 물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때 국제적 시각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썼다. 유명한 필립스곡선 얘기다. 실업률이 오르면 물가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것.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실업률도 낮춘다는 두 가지 목표의 양립이 모순일 수 있다’는 게 본질이지만, 선진국 중심으로 물가·실업률이 동시에 잡히면서 그 가치가 퇴색된 개념이기도 하다.

미 연준은 금리를 조정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하는데, 이때 연준이 보는 지표 두 가지는 물가와 실업률이다. 최근까지 연준이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1990년대 이후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찰스 굿하트 명예교수는 “미국이 물가와 실업률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산업 글로벌화에 따라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싼값에 공산품과 노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배제 반도체 공급망→장기적 비용·물가 상승 초래

1980년대 이후 풍부한 노동력을 지렛대로 싼값에 대량의 공산품을 수출했던 중국은 ‘디플레이션의 원흉’으로도 불렸다. 세계적으로 공산품 가격 파괴가 진행됐고, 한때 두 자릿수에 달했던 선진국 인플레이션율이 1990년대 중반 2%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중국의 저가 생산과 물가 유지의 톱니바퀴가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조 바이든 정권에서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을 뺀 공급망 재구축, 특히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심각한 보틀넥(병목)뿐 아니라 구조적 비용 상승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공급 물가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세계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선 현금 지급 등을 중심으로 하는 1조9000억달러(약 2185조원) 규모의 경제 대책이 수립됐고, 이에 앞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 핵심 산업 강화를 뼈대로 한 2조달러(약 2300조원) 규모의 대책도 발표됐다. 미국의 달러화 살포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과 미국이 누려왔던 중국의 저가 공산품·서비스 혜택이 줄어드는 ‘이중 부담’이 세계적으로 인플레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 공급망 분리가 특히 문제다. 미국을 위한 정책이지만, 부담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진다. 대만·한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생산을 늘리려 할 때, 자국 내의 제조 클러스터를 확장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반도체 생산만큼 시설 집약과 규모의 경제가 빛을 발하는 산업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시설·자본의 집약체를 미국에 또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효율 면에서는 심각한 고비용을 유발하게 된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월 21일 자에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 강화에 500억달러(약 57조5000억원)의 지원책을 준비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미국이 반도체를 자급자족하려면 향후 10년간 1조4000억달러(약 1610조원) 이상의 투자와 정부 혜택이 필요하다”고 썼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는 하나, 이 모든 것이 엄청난 비용 상승이고, 결국 반도체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중국 환경 비용 부담으로 글로벌 물가 상승

중국에서 그동안 낮은 환경 비용을 기반으로 대량 수출되던 철강, 기타 금속 등의 가격도 지속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2060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실질 제로’를 목표로 내걸었는데, 이를 위해 자국 내 생산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각종 금속의 대폭 감산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중국 생태환경부는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신규 투자 건에 처음으로 CO2 배출량 평가를 의무화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화력발전, 석유화학, 석탄화학, 철강, 비철금속의 정련, 시멘트 등 6개 업종이 대상이다. 중국철강공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 기간(2021~2025년)에 2억3600만t 분량의 철강 생산 능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2억2100만t에 대해선 환경 부담이 적은 생산 공정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이러한 기조는 이미 급등하고 있는 원재료 시세 상승을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석탄화력으로 발전한 값싼 전력을 사용해 구리에서 철강에 이르는 다양한 금속을 생산·수출해왔다. 관련 국제 시장 가격을 중국이 지배하면서 세계 물가 억제에도 일조해왔다. 그러나 BMO캐피털마켓의 콜린 해밀턴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중국의 금속 수출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6월 10일 자에 “정련·제철업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각종 금속 공급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면서 “세계적으로 인플레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석유에서 금속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세계 최대 상품 소비국이다. 공급 감소에 따라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자국 내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 금속가공품과 석유정제제품의 주요 수출국이기 때문에, 세계적 물가 상승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56%, 알루미늄 생산량의 57%를 차지한다. 미국 조사 회사 S&P글로벌플래츠에 따르면, 열연코일의 미국 가격은 2020년 8월 이후 200% 이상 상승했다.

중국이 감산할 경우 다른 나라가 세계 수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선진국에선 이미 철강 생산의 탈(脫)탄소화가 진행 중이다. 철강 생산에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는 투자가 절실한데, 여기에는 기존보다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를 주저하는 기업이 많다. 맥쿼리는 “중국 밖에서 생산 체제가 확립되기도 전에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감산을 성급하게 진행할 경우, 상품 가격의 상승과 인플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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