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혁명이 시작됐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 특집기사에서 북미 라디오산업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새로운 형태의 라디오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업계가 인터넷의 확산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라디오 업계도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디오 혁명의 최전방에 ‘팟캐스팅(Podcasting)’이 있다. 팟캐스팅은 애플사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합친 신조어다. 기존의 인터넷 라디오와 달리 아이팟 등 MP3 플레이어에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팟캐스팅’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인터넷 라디오를 가능케 했던 기반기술이 최근의 블로그 붐과 결합돼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북미에만 3500개 이상의 팟캐스팅 사이트가 활동 중이다.

 인터넷 확산과 더불어 널리 퍼졌던 인터넷 라디오의 경우 현재 주당 최소한 1900만명의 청취자를 확보한 상태다. 일부는 광고수입을 올리기도 해 전통적 라디오도 주목하고 있던 분야다. 하지만 이제는 활동성을 겸비한 팟캐스팅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팟캐스팅의 내용은 델타항공의 부도위기에서부터 채식주의자 요리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커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이 팟캐스팅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정치인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팟캐스팅은 IT와 인터넷 세상의 두 가지 추세 즉, 블로그의 확산과 ‘아이리버’ 같은 MP3플레이어의 급속한 보급에 힘입은 바 크다. 최근 블로거들은 대부분 인터넷 라디오 형태로 홈페이지를 급속하게 전환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MP3 플레이어라는 하드웨어의 발달이 ‘휴대용 인터넷 라디오’를 탄생시킨 것이다. 텔레비전 산업의 티보(Tivo : TV 프로그램을 녹화해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맞춤형 TV)처럼 팟캐스팅은 사용자들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들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급속하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는 팟캐스팅이 ‘원맨쇼(1인 방송)’여서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이미 이를 둘러싼 상업화의 기운은 무르익고 있다. 인기 있는 팟캐스팅 사이트는 광고가 따라 붙기도 한다. 또 팟캐스팅이 좀 더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로 웹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신기술 창업자들도 많다. 에반 윌리엄스가 창업한 오데오(Odeo)는 팟캐스팅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개설방법과 운영 요령 등을 가르쳐 주는 사이트다. 이들은 사이트를 개설해 주고 회원 가입비나 수신료의 일정 부분을 매달 징수하거나 광고수입을 나누는 방식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볼보 같은 광고주들은 이미 네티즌들의 팟캐스팅 사이트 개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BBC나 NPR(미국 공익라디오) 같은 기존의 라디오방송국들이 속속 팟캐스팅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당장 뚜렷하게 뭔가 잡히는 게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1일 팟캐스팅을 시작한 NPR의 스테이션 매니저 루스 세이모어는 “지금 이렇게 해서라도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팟캐스팅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라디오 방송국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팅은 현재는 대부분 무료다. 아직은 시장의 초기 단계이므로 이런 식으로 안테나숍(주로 제조업체가 신제품 소개, 광고 효과, 정보 수집 등을 목적으로 여는 직영점)처럼 네티즌들의 반응을 관찰 중이다.



 팟캐스팅에 이어 위성라디오도 등장

 팟캐스팅이 기존 라디오업계에 자극제가 되고 있다면 위성라디오는 이미 상당한 출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라디오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찍부터 예고한 그룹이 바로 위성라디오다. 위성라디오는 수신료를 내고 라디오를 청취한다는 점에서 케이블 TV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위성라디오를 들으려면 한 달에 11~13달러의 수신료를 내야 한다. 현재 미국에는 XM과 시리우스(Sirius), 두 개의 위성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캐나다에는 올 가을 개국을 목표로 세 군데 컨소시엄이 준비하고 있다. XM이 캐나다 사업가와 손을 잡고 준비 중인 캐네디언 위성 라디오(CSR), 캐나다 국영방송인 CBC와 미국 시리우스가 합작한 시리우스 캐나다, 캐나다 순수자본인 첨(CHUM)방송 등이 현재 캐나다 통신방송위원회의 청문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위성라디오의 현재 가입자 수는 550만명 수준이다. XM이 본격적으로 위성라디오를 송출한 것이 2001년 9월이니 짧은 시간에 꽤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위성라디오는 수신료를 받는 대신 음악방송에서 광고를 없애 버렸다. 가입자들이 기꺼이 수신료를 내는 이유 중 하나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캐치원이라는 케이블 방송이 ‘광고 없는 영화전문 채널’이란 기치를 내걸었던 일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또 초고속 인터넷, 휴대폰 등의 확산으로 사용료나 접속료를 내는 데 익숙한 세대들이 늘어난 점도 위성라디오 흥행에 일조하고 있다. 신문업계에서는 무가지가 영역을 넓혀 나가는 반면 라디오업계에서는 오히려 사용료를 부과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위성라디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살펴보자. 위성라디오 업계의 선두주자인 XM은 한 달 사용료 12.95달러에 ▲힙합에서부터 클래식까지 음악 채널 67개 ▲야구, 풋볼, 나스카(NASCAR) 자동차 경주 등 실황중계 및 토크쇼 64개 채널 ▲교통방송, 날씨채널을 비롯 정보채널 21개 등 모두 150여 개의 디지털방송 채널을 서비스하고 있다. 현재 가입자 400만명을 확보한 XM은 올해 말까지 150만명을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가입자 수 150만여 명인 시리우스도 이와 유사하게 음악, 교통방송, 날씨 등 140여 개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XM은 특히 언제 어디서나 전국의 모든 야구경기를 가입자들에게 중계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라디오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를 전송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위성으로 전파를 내리 쏘는 시스템이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XM은 지난해 말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강조하는 TV광고를 내보낸 일이 있다.

 XM 라디오는 앞으로 안정적인 야구중계를 확보하기 위해 향후 11년간 MLB의 전 경기를 방송할 수 있는 권리를 6억5000만달러에 지난해 말 사들였다. 경쟁사인 시리우스는 미식축구(NFL) 경기를 향후 7년간 방송할 수 있는 중계권료로 2억2000만달러를 지급했다. XM측은 미식축구보다는 야구가 라디오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계약을 성사시켰다. 실제로 XM의 400만 가입자 중 150만명은 XM이 지난해 10월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권을 따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는 경쟁사인 시리우스의 가입자 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XM이나 시리우스가 지금 당장 이익을 내는 기업은 아니다. 라디오 관련 조사기관인 아비트론에 따르면 시리우스는 올해 매출액이 2억1000만달러로 예상됐지만 손실액은 이보다 더 많은 5억달러대에 이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위성라디오가 앞으로 2~3년 동안은 계속 자금이 빨려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 신세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추세로 가입자 수가 늘어난다면 조만간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위성라디오, 자동차 시장 점령 나서

 또 하나 위성라디오 업계가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자동차 스테레오다. 이 부분도 XM이 앞서간다. 제너럴 모터스(GM)와 혼다가 2005년형 자사모델 62종, 전체 물량의 30%에 XM 위성라디오를 기본 사양 품목으로 장착했다. 한편 크라이슬러와 포드사는 10~15%의 출고 차량에 시리우스 수신기를 달아 출고했다.

 재밌는 것은 지난해 중반 이후 올해 5월까지 XM 수신기를 장착한 차를 구입한 운전자 중 60%가 무료 서비스 기간이 끝난 뒤 유료회원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기존 라디오 업계가 긴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운전 중에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시장’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면서 라디오 쇼를 녹음할 수 있는 휴대용 단말기와 MS사의 미디어 플레이어처럼 PC에 다운받는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앞으로 이 부분에 주력할 방침이다.

 리만브러더스 증권은 향후 5년 안에 위성라디오 가입자 수는 3500만명으로 지금보다 7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존 라디오 청취자들 2억명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지만 그 효과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리만브러더스의 미디어 애널리스트 윌리엄 마이어스는 “대부분 위성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출퇴근 때 주로 방송을 듣는다”면서 “이 시간대는 보통 광고시장에서 황금시간대로 불리는 시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청취자를 점점 잃다 보니 전통 라디오 업체들의 매출성장률은 내년 이후부터 연 평균 4%에서 2.5%로 둔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최근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충분한 실탄을 비축한 위성 라디오의 쌍두마차가 가입자 확보를 위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XM이 스포츠 중계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시리우스는 방송진행자 영입에 힘썼다. 현재 1200만명의 고정 청취자를 확보한 유명 DJ 하워드 스턴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스턴은 현재 인피니티(Infinity) 라디오에서 DJ로 활동하고 있는데 인피니티와의 계약이 끝나는 오는 2006년부터 5년 동안 시리우스에서 프로그램을 맡는 조건으로 연봉 1억달러, 총액 5억달러짜리 새 계약서에 사인한 것이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와도 4년간 출연료 3000만달러와 광고료 반분(半分) 등에 합의했다. 또 XM이 현재 독점 중계하고 있는 자동차 경주 나스카를 2007년부터 시리우스에서만 중계할 수 있는 계약도 맺은 상태다.

 같은 뉴미디어이지만 위성라디오와 팟캐스팅 역시 서로의 영역을 파고들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다. 각각 위성라디오 수신기와 아이팟이라는 단말기를 이용하는 매체인 만큼 서로의 시장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앞으로 이동통신업계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면 말 그대로 난타전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휴대폰 단말기 업체인 모토롤라는 현재 ‘아이라디오(iRadio)’를 시험 방송 중인데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MP3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자동차 스테레오에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북미의 유비쿼터스 시장은 라디오로부터 촉발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전통 라디오업계, 고음질 방송에 총력

 전통적인 라디오 방송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우선 라디오산업의 외형에 뭔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비트론에 따르면 지난 1993년 이후 라디오 청취시간은 주당 3시간 이상 줄어들어 20시간 이하로 떨어졌다. 미국 최대의 라디오방송 네트워크인 클리어채널은 이에 따라 광고 단위시간을 60초에서 30초로 줄였다. 보다 더 복잡한 변화는 메이저 라디오 방송국들이 디지털 라디오 시대의 총아인 고음질 방송(HD) 전선에 속속 뛰어드는 데서 잘 드러난다. CD 수준의 음질을 청취자들에게 제공하는 HD 라디오로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앞으로 5년 뒤면 적어도 2500개의 방송국들이 HD 라디오 방송을 송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HD 라디오가 티보 같은 기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청취자들은 뉴스, 클래식 음악은 물론 교통상황이나 날씨 예보, 스포츠 등 자신이 편집한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최고의 음질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전통적 라디오의 경영진들은 HD가 이미 위성라디오나 팟캐스팅 등 웹라디오가 구축한 영역을 파고드는 틈새시장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HD 라디오 수신기의 가격이 500~1000달러선으로 만만치 않다는 점이 장애요인이다.

 새로운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올드미디어도 물론 있다. 클리어 채널과 인피니티는 조만간 별도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 진출키로 했다. 올 여름에 클리어채널은 수신료는 받지 않고 광고수입으로만 유지되는 웹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야후와 AOL, MSN 등은 이미 회원들에게 웹라디오 서비스를 하고 있어 가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편집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라디오 업계가 이들의 양태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클리어 채널은 AOL에서 이 분야를 맡았던 에반 해리슨을 스카우트해 관련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인피니티의 조엘 홀랜더 대표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이상 수비자세만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인피니티는 최근 휴렛팩커드, 노키아 등과 자사 프로그램 독점 방송 계약을 맺기도 했다.

 디지털 혁명이 라디오 산업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는 것이다. 라디오 쇼는 디지털 신호로 바뀌었고 여러 형태의 라디오는 웹에서부터 인공위성, 휴대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청취자에게 도달하고 있다.

 1960년대 FM방송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당시 AM은 사멸할 것이라고 주장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AM은 여전히 전파를 쏘고 있다. 이에 앞서 1950년대 TV방송이 선보인 뒤에도 라디오는 꿋꿋하게 살아남았으며 비디오나 DVD의 확산에도 영화관객은 줄어들지 않았다. 라디오 업계의 올드 미디어-뉴 미디어의 대결에서도 이 같이 각자 병립(竝立)하는 일이 가능할까?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수신료를 내는 라디오’란 개념은 자리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박형진 미주 통신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