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항공사, 멸종 위기에 놓이다.” 지난 4월4일 AP통신은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AP통신은 두 교수가 공동 집필한 ‘미국 항공 품질 평가(AQR)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국 항공산업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한 것이다. 미국 연방 교통부 통계를 분석, 이 보고서를 만든 위치타주립대의 딘 헤들리 교수는 “2000년 시장점유율 7%에 머무르던 저가 항공사들이 불과 5년여만에 전체 시장의 4분의 1을 좌우하는 수준으로 급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서 고객 만족 상위 6대 항공사 중 다섯 군데가 저가 항공사였다. 제트블루, 에어트랜에어웨이, 사우스웨스트, 유나이티드, 알래스카에어라인, 그리고 아메리카 웨스트에어라인 등의 순이다. 보고서의 공동 집필자인 브렌트 보웬 박사(내브래스카항공학교)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전통적인 항공사들은 사라지고 저가 항공사와 지역 항공사들만 살아 남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북미의 대형 항공사들이 직면한 갖가지 문제들을 살펴보면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 콘티넨털항공의 최고 경영자 고든 베순은 지난해  미국 의회 항공위원회에 출석,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원유가 등으로 질식할 것 같다는 하소연이었다. 여기에다 그가 직접 언급치는 않았지만 저가 항공사들의 약진으로 대형 항공사들은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저가 항공사들의 파상 공세로 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구문(舊聞)이다. 항공 요금은 최근 5년 사이에 39%나 떨어졌다. 업계 전문 컨설팅사인 백에이비에이션솔루션에 따르면 미국 대륙 횡단 편도 항공권 가격은 5년 전 평균 302달러였으나 최근 183달러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업계 평균 순익은 1좌석 마일(유료 여객 1명을 1마일 수송하는 단위)당 2000년 11.4센트에서 지난해 8.3센트로 23%나 급감했다. 이에 따라 대형 항공사들은 지난해 92억달러(약 10조원)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에 미국 최대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은 32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3억1300만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베순 대표가 항공위원회에 보고할 당시만 해도 원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하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가의 15%를 차지하는 유류 가격이 배럴당 40달러선에만 머물러도 이미 60억달러의 손해가 나는 판국인데 50달러를 웃도는 것은 물론, 일각에서 ‘배럴당 100달러’ 전망까지 나올 정도니 대형 항공사들은 ‘사면초가’인 셈이다. 



 대형 항공사 잇단 파산 신청

 지난 2002년 12월 세계 2위 항공사인 미국의 유나이티드가 파산 보호 신청을 내놓았을 때 이미 항공업계가 당면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2001년 테러 여파에 따른 항공 여객 감소가 문제의 시작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수면하에서는 경직된 노사 관계, 고비용 구조 등이 유나이티드항공의 경영을 압박하고 있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당시 직면했던 문제들은 다른 대형 항공사들을 똑같이 괴롭히고 있었다. 유나이티드에 이어 지난해에는 세계 7위 항공사인 유에스에어웨이즈가 두번째로 파산 보호 신청에 들어갔다. 이 항공사는 현재 8억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삭감키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국 3위 항공사인 델타항공 역시 파산 직전이다. 델타는 지난 3년간 56억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현재 보유중인 20억달러 상당의 내부충당금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끝내 파산 보호 신청을 할 경우 미국의 대형 항공사 중 절반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에 따라 이들 대형 항공사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 조정’에 돌입했다. 델타항공의 경우 50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계획을 올 초 발표한 바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 보다 싼 요금으로 승객들을 끌어오겠다는 것이지만 이 전략이 온전히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비용 요인이 근로자들의 임금인데, 보통의 경우 노조에서 순순히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캐나다의 국적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동안 외부 투자자보다는 내부의 노조와 협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나마 에어캐나다는 상황이 절박해 노조에 임금 삭감 및 구조조정안을 제시해 관철시켰다. 노조는 30%의 인력 축소와 함께 연간 인건비 10억달러(1조원) 감축안에 마지못해 합의했고, 뒤이어 법정관리가 해제됐다.

 또 유에스에어웨이가 고강도 구조 조정을 벌이면서 임금 삭감을 강요했을 때 노조의 반발로 벽에 부닥친 일이 있었다. 에어캐나다 역시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법정관리 기간인 데도 파업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아무리 구조 조정이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한들 30~40%에 달하는 임금 삭감과 인원 정리를 동시에 받아들일 노조가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조지아주립대의 제임스 오워스 교수는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형 항공사들은 구조 개혁에 가속이 붙지 않으면 사멸할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회사별로 별 뾰족한 해결 방안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항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5년 안에 미국의 대형 항공사 2~3개는 파산해서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산한 항공사들이 저가 항공사에 흡수·합병될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는데, 대형 항공사로서는 악몽 같은 얘기다.

 저가 항공사들은 기내 서비스 등 부대 서비스가 없거나 적다는 점에서 ‘노 프릴스(No Frills:거품을 뺐다는 뜻)  항공’, 요금 기준으로는 ‘저가(Low Fare) 항공’, 운영 비용을 낮췄다는 측면에서는 ‘저비용(Low Cost) 항공’으로 불린다. 이같은 저비용 항공사들은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저가 항공 요금, 기차 요금·배삯마저 위협

 저가 항공사의 역사는 오래 됐다. 1970년대말 사우스웨스트항공 창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들 항공사가 여행산업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확산되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가격 파괴 바람이 몰아치는 과정에서 터진 2001년 9·11 테러가 이들을 주류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는 불안하고 고용은 불안정한데 돈 벌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인터넷 확산으로 중간 매개자 없이 소비자들에게 직접 항공권을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저가 항공사들의 약진에 큰 몫을 했다. 바야흐로 항공료는 기차 요금이나 뱃삯과 가격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의 가격 인하 전략은 ‘비용의 최소화’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된다. 북미의 주요 도시를 오가는 저가 항공사의 경우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객실에 기내식도 없다. 심지어 지정 좌석이나 종이 티켓까지 없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우 뚱뚱한 승객에게 두 자리의 항공권을 살 것을 요구했다가 원성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저가 항공사들은 별 서비스 없이 그저 ‘수송’이란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할 뿐이다.

 안으로는 근로자들에게 ‘다다익선의 근로 시간과 생산성 향상’을 강요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CEO로 지난해 8월 취임한 게리 켈리 대표는 취임 직후 노조 간부들과 만나 “경영진은 비전 제시와 합리적인 경영을 기할 테니 근로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업무 효율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조는 비행사들이 월 7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형 항공사 비행사들의 평균 운항 시간은 월60시간 이하다.

 여기에다 최근 저가 항공사들이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로 무장하고 있다. 캐나다 웨스트젯항공의 경우 올 2월까지 1차적으로 20개 노선 항공기 각 좌석에 LCD TV를 설치했다. 이코노미, 비즈니스 클래스 구분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웨스트젯은 TV 설치에만 2200만달러(약 230억원)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저가 항공사들의 서비스 향상은 수치로도 증명됐다. 앞에서 든 AQR에 따르면 제트블루는 정시 도착률 86%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승객들이 항공 당국에 불만을 제기한 비율은 10만명당 0.31명으로 0.14명을 기록한 사우스웨스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역 항공사 속속 저가 항공사로 독립

 대형 항공사들이 믿고 있던 ‘지역 항공사’들이 최근 속속 독립하고 있다는 점도 대형 항공사에는 악재다. 지난 1970년대 대형 항공사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허브 공항에서 중소 도시로 연결하는 업무를 지역 항공사들에게 맡겼다. 대형 항공사가 직접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하청 형태로 운영했던 이유는 노조의 압력을 피하면서 동시에 저비용으로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조는 자회사 형태로 지역 항공계에 진출하는 데 반대한 것은 물론 하청을 줄 경우라도 70인승 이하 항공 노선에만 국한시키도록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 지역 항공사들은 대형 항공사 간판을 달고 운항했었는데, 이제 이들도 저가 항공사로 독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사, 스카이웨스트 등이 이들 군소 지역 항공사다. 하지만 앞의 AQR에서 드러나듯, 일부 지역 항공사들은 품질 면에서도 대형사들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21세기 화두를 ‘저비용 항공사’로 꼽는 데 주저치 않는다. 단순히 저가에 항공권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용을 줄여 저가 항공권은 물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항공사만이 살아 남을 것이란 전망이다.

 북미의 항공업계에 “누군가 쓰러져야 다른 회사라도 산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 대형 항공사들은 체면 불구하고 소규모 저비용 항공사들과 가격 경쟁에 나서거나 사멸의 길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가격 경쟁은 대형사에만 국한된 전쟁은 아니다. 인디펜던스, ATA 등 일부 저가 항공사들도 퇴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 제트블루 등 저가 항공사들의 약진은 대형 항공사들에게 더욱 타격을 입히고 있다. 그래서 이미 ‘내부 자본을 태워’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는 일부 대형사들에 올 여름 휴가철은 퇴출과 도약의 갈림길이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Plus tip



캐나다 항공업계는…



 현재 캐나다의 정기 항공사는 국적 항공사인 에어캐나다, 저가 항공사인 웨스트젯·캔젯 등 3개사다. 3위 항공사였던 젯츠고는 지난 3월 11일 전격적으로 운항을 중단하고 파산 보호를 신청, 현재 5월10일까지 파산이 유보된 상태다. 지난 2002년 설립돼 오로지 저가만을 무기로 2위 자리를 넘보던 젯츠고는 지나친 가격 파괴로 자멸해 버렸다. 수십여개의 대형, 저가 항공사가 정기 노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은 미국보다는 3개사가 오밀조밀 영업중인  캐나다가 한국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 제1의 국적 항공사 에어캐나다는 1996년 저가 항공사 웨스트젯 출범 이후 국내선의 시장점유율을 잠식당한 가운데 2001년 9·11 테러와 2003년 사스 발생 등으로 여객이 급감하면서 도산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홍콩 허치슨암포와그룹 리자칭(李嘉誠) 회장의 아들인 빅터 리(39·캐나다 국적)가 뛰어들었으나 결국 미국계 펀드인 세버러스가 새 주인이 됐다. 채권단과 부채 탕감 및 출자 전환 협상을 벌여 13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50억달러로 줄이긴 했으나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82%였던 에어캐나다의 국내선 시장점유율은 2004년 9월 법정관리에서 해제될 때 59%로 떨어져 있었고 70%대 회복도 요원한 상태다.

 지난 1996년 캐나다 서부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태동한 웨스트젯은 저비용과 효율성, 그리고 강력한 서비스를 무기로 국내선에선 에어캐나다까지 위협하고 있다. 당초 비행기 3대, 종업원 200여명으로 출발한 웨스트젯은 지난 2004년 3분기까지 31분기(7년) 연속 흑자 행진을 기록했다. 현재 미국을 포함, 24개 공항에 취항한 상태다. 웨스트젯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비용 절감 정신으로 요약된다. 리스할 비행기는 보잉 737로 단일화해 유지 보수 비용을 줄이는 한편, 비노조원 근로자를 우선 고용했다.  그 결과 운항 거리 1마일 1석당 비용은 8.8센트로 떨어졌다. 이 단위 비용은 사우스웨스트항공 7.6센트, 제트블루 6.1센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범 10년도 안된 새내기 항공사로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에어캐나다의 경우 이 단위 비용이 웨스트젯에 비해 50%나 높은 편이다. 이는 경직된 노동 구조와 다양한 비행기 보유로 인한 유지비 증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두 항공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사가 서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4월 에어캐나다는 “웨스트젯의 고위 경영진이 에어캐나다의 인트라넷에 침투, 회사의 주요 기밀을 빼내 손실을 끼쳤다”는 요지로 2억2000만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웨스트젯측은 “에어캐나다가 사립 탐정을 고용, 쓰레기통까지 뒤져 중요한 서류를 절취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소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아직까지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 소송으로 인해 웨스트젯의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신생 항공사임에도 웨스트젯은 비용 절감과 깔끔한 서비스로 승객들과 시장에서 호감을 얻었다. 또 ‘성실하고 윤리적 기업’이란 이미지도 구축, 이를 바탕으로 1999년 주식시장 상장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상대 회사의 기밀을 빼냈다’는 오명을 얻은 웨스트젯의 지난 2004년 4분기 실적은 마이너스 4700만달러를 기록, 31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마감했다. 2004년 전체로는 1700만달러(약 180억원) 적자였다. ‘유가 상승과 퇴직연금 과다 적립’이란 악재도 있었지만 소송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편 젯츠고가 파산한 3월 이후 캐나다 항공료는 평균 16% 인상됐다. 주요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나머지 항공사들이 여유를 찾은 셈이다. 저가 항공사가 항공료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박형진 미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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