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웬슨 미국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CIO)가 201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5월 5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웬슨 미국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CIO)가 201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월요일(5월 3일·이하 현지시각), 데이비드 스웬슨은 암과 오랜 싸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예일대에서 투자 수업을 진행했다. 이틀 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자금 관리자 중 한 명인 그는 마침내 병마에 굴복하고,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월 8일 미국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CIO)이자 교수인 데이비드 스웬슨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마지막 일상을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투자 업계에서 스웬슨의 명성은 워런 버핏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5월 5일 저녁 숨을 거두자 FT는 지면 한 페이지를 통째로 할애해 추모했다.

1954년생인 스웬슨은 1975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살로몬 브러더스, 리먼 브러더스 등 미 월가에서 6년 동안 일했다. 살로몬 재직 당시 세계은행(WB)과 IBM 간 금리 스와프 체계를 짜는 데 도움을 줘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85년 예일대로 돌아와 기금 운용 업무를 맡았다. 월급이 80%나 줄어드는 조건이었음에도 스웬슨은 부(富)가 보장된 월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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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웬슨을 예일대로 부른 건 그의 지도교수이자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였다. 물론 은사의 설득만 스웬슨의 행보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스웬슨은 예일대 동문지와 인터뷰에서 “월가의 경쟁적인 면은 마음에 들었지만, 가치 판단을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인간은 결국 자신만을 위해 큰돈을 벌려고 한다”라고 했다. FT는 스웬슨의 어머니가 수많은 난민의 미국 정착을 도운 루터교 목사였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이런 성장 배경이 ‘그가 왜 투자은행에 남지 않았나’를 설명해줄 것”이라고 했다.

스웬슨은 1985년 10억달러(약 1조1250억원) 규모이던 예일대 기금을 2020년 6월 기준 312억달러(약 35조969억원)로 31배가량 불렸다. 1985년 대학 전체 지출의 10분의 1 정도를 책임지던 기금은 지난해 대학 운영 예산의 3분의 1 수준까지 커졌다. 스웬슨이 활약한 35년 동안 예일대 기금은 연평균 13%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주식시장 수익률을 두 배 이상 웃도는 성과다. 리처드 레빈 전 예일대 총장은 스웬슨을 “예일대 역사상 가장 큰 기부자”라고 했다.

스웬슨은 기금을 다양한 자산에 분산하면서도 공격적인 투자 철학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성공 투자의 전설을 썼다. 그는 우량주·채권 등 보수적 포트폴리오가 주를 이루던 당시 대학 기금 투자 트렌드에서 벗어나 주식 비중을 늘리고 신흥시장·사모펀드·원자재·부동산 등에도 적극적으로 분산 투자했다. 스웬슨은 기금을 직접 굴리기보다는 외부 자산운용사를 활용하는 걸 선호했다. 대신에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워 아웃소싱 운용사를 까다롭게 정했다. 또 자산 리밸런싱(재조정)도 부지런히 해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큰 충격에서도 신속히 빠져나왔다.

1997~2008년 예일대 기금 회장을 맡았던 찰스 엘리스는 “스웬슨의 성과는 훌륭하지만 놀랄 일이 아니다. 만약 훌륭한 요리사가 부엌에서 준비하는 것을 봤다면, 여러분은 음식이 맛있을 것이란 사실을 진작 알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힐하우스캐피털 창업자인 레이 장. 사진 위키피디아
힐하우스캐피털 창업자인 레이 장. 사진 위키피디아

연결 포인트 1
“대가 정신 받들자” 곳곳에 뿌리내린 스웬슨 키즈

다양한 자산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데이비드 스웬슨의 ‘예일 모델’은 등장 당시 파격적인 전략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뿐 아니라 기금을 운용하는 많은 기관과 투자 회사에서 예일 모델을 ‘바이블’로 여긴다. 스웬슨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나간 많은 후배가 그의 철학을 들고 나간 덕분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세스 알렉산더, 스탠퍼드대의 로버트 월래스, 프린스턴대의 앤드루 골든, 웨슬리안대의 앤 마틴 등이 널리 알려진 미 대학 기금 CIO이자 스웬슨의 후배들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힐하우스캐피털을 세운 레이 장도 예일대 졸업생이다. 장은 2005년 사모펀드를 세우기 전까지 예일대 기금에서 스웬슨과 함께 일했다. 스웬슨은 힐하우스캐피털에 2000만달러(약 226억원)를 투자해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가 넘는 수익을 안았다. 장은 스웬슨에게 배운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중국 텐센트 등에 고루 투자해 큰 결실을 봤다.


이화여대 캠퍼스. 사진 이화여대
이화여대 캠퍼스. 사진 이화여대

연결 포인트 2
여전히 안전자산 선호 한국 대학 기금 운용은 걸음마

탁월한 기금 운용 역량은 예일대뿐만이 아니다. 미 하버드대의 경우 2018년 기준 400억달러(약 47조원)의 기금 운용액으로 1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중 2조원이 학교 운영 예산으로 쓰였는데, 이는 하버드대 한 해 운영 자금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비하면 국내 대학의 기금 운용 수준은 취약하다. 우리나라 사립대는 현재 약 8조원가량의 적립금을 모았다. 하버드대 한 곳과 비교해도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금의 덩치 자체가 작다 보니 스웬슨의 투자 철학을 도입하기는커녕 지금 있는 돈을 지키기에도 급급하다. 정기예금과 채권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에서도 변화 시도는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이화여대는 기금 중 일부인 1500억원에 관한 운용을 삼성자산운용에 맡기기로 했다. 국내 사립대 가운데 첫 번째 외부위탁운용(OCIO) 사례다. 앞서 서울대도 2019년 2000억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삼성자산운용에 위탁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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