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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글로벌 경제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경제 제재는 상당수가 ‘실버 불릿(silver bullet)’이라고 믿지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겉만 번지르르한 말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 은으로 만든 총알은 전설 속에 나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초자연적인 존재를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를 뜻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상황도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타개책을 의미하는 관용어로 서구에서 널리 쓰인다. 우리가 잘 아는 ‘스모킹 건(smoking gun)’이 사건 해결의 가장 확실한 단서를 의미한다면 ‘실버 불릿’은 한 단계 더 높은 완벽한 해결책을 말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리더들이 사랑하는 단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은으로 만든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아직 최종 결론을 단정하긴 이르지만, 러시아가 손들고 나올 만한 확실한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뉴스가 지배적이다. 

중국을 제외한 경제 강국들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라고 제재를 앞다퉈 내놨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에 치명상을 입힐 조치들이 많이 거론됐지만 얼마나 실행될지 알 수 없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가스와 원유를 비롯한 주요 수출품에 빗장을 걸고 경제 제재 중 최고의 압박 수단인 국제적인 금융거래 네트워크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퇴출했다. 곧바로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고 외국에 예치돼 있던 상당수의 외환이 묶이면서 러시아는 디폴트(채무 불이행)와 같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러시아가 루블화로 외채를 갚겠다고 선언했지만, 대외신인도가 낮은 루블화는 절대로 달러화를 대신할 수 없었다. 개전 초기 전황도 좋지 않고 경제적인 타격이 심해 러시아가 쉽게 백기를 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도 있었다. 실제로 전쟁 발발 후 러시아의 스마트폰 수입 규모가 절반 정도로 줄고 루블화 가치는 50% 정도 폭락하더니 곧바로 약 80% 추락했다.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많은 글로벌 기업이 영업을 중단하고 일부는 철수하면서 주식시장도 폭락 대열에 합류했다.

얼마 가지 않아 반전이 전개된다. 미국 등이 러시아를 압박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석유에 대한 수입 중단이다. 그러나 국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EU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가스와 석유, 석탄이 356억달러(약 46조원)에 달할 정도로 규제가 유명무실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언론에 등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 경제가 매우 좋다고 자랑까지 하고 있다. 폭등했던 루블화 환율은 벌써 전쟁 전인 2월 초 수준으로 돌아갔고 대외 거래 성적표도 매우 좋다. 이는 심리전을 위한 허풍이 아니다. 모두가 러시아 내 외화고갈을 노렸지만 2022년 1분기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580억달러(약 75조원)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소비자 물가는 개전 이후 9.4% 올랐고 연간으로는 17.5% 상승이 예상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하지만, 전쟁과 서방 제재를 고려한다면 너무 얌전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푸틴은 한술 더 떠 서방 측을 걱정하고 있다. 제재는 서방의 인플레이션 및 실업, 경제 역동성 약화, 생활 수준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분쟁 해결 수단 부상한 경제 제재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제재는 쉽게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 언론에 대서 특필되고 조만간 피제재 국가가 손들고 나올 것 같지만 그런 전례는 찾기 힘들다. 글로벌 경찰국가를 자원하는 미국 등이 경제 제재에 나선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된 무기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적지 않은 인명 손실을 경험하면서 무력(전쟁)보다 경제 제재가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대중화됐다고 할 정도로 너무 쉽게 남발되고 있다. 1990년부터 10년간 총 67건이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 제재가 실행됐다. 이 중 3분의 1 정도는 미국이 부과한 일방적인 제재였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세계 인구의 약 40%(2억3000만 명)를 대상으로 제재를 실행에 옮긴 ‘제재 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미국은 약 8000건의 제재를 시행했거나 시행하고 있는데, 이란과 북한이 단골손님(?)이다. 특이한 점은 미·중이나 미·러 제재와 달리 대부분은 큰 국가가 작은 국가에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함께 경제 제재를 주도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유엔(UN)이다. 1960년대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유엔헌장 제41조에 따라 30개의 다자간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안보리는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않는 어떠한 조치(주로 경제 제재)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또한 유엔 회원국에 대해 그런 조치를 적용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제재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권을 종식한 정도이며,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 외에 알 카에다, 탈레반 등 이슬람 테러 단체를 타깃으로 삼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란의 제재가 보여주듯 그 성과에 많은 의문이 들고 있다. 로버트 페이프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 등 정치·안보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기에 부과된 170건의 제재 중 3분의 1만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재 성공률이 5%보다 낮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규제에 대해 2018년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운송, 금융 등에 대한 보다 강화된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이에 따라 이란 내 통화가치 하락과 산업붕괴로 명목적인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외국인투자도 떠나가기도 했지만 규제가 효과적이라고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이란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의 핵심은 석유 수출을 못 하게 하는 것인데 원유에 대한 거대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가 거래 금지 대상에서 빠져 있고 유조선이 항해추적장치(AIS)를 끄고 이동하는 방법을 통해 추적을 피하고 있다. 또한 공해상에서 배와 배 간의 거래를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오랜 기간 시행됐지만 내성만 키우고 있을 뿐 당초 기대한 성과는 크지 않다고 말한다.


경제 제재 실패 7가지 이유 

그럼 왜 경제 제재는 쉽게 무력화되고 있을까. 제재 조치는 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대외교역을 줄이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다. 또한 실업과 인플레이션, 외환위기 등을 초래해 해당 국가와 국민을 괴롭힌다. 그러나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생명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대신하지만 그만큼 남발하기도 쉬워 실효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 둘째로는 제재에서 식품과 의약 등은 인도주의적 필수 제품이라는 이유로 제외돼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셋째, 언론이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외부에 적을 만들면 내부적으로는 더욱 단합하는 경향이 있어 얼마 가지 않아 내성이 생긴다. 넷째, 스마트하게 규제를 실행한다는 이유로 부분적인 제재가 많아 해당국 고위층은 타격이 없고 일반 국민만 힘들게 한다. 특히 규제는 특권층을 겨냥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자를 더 힘들게 한다. 다섯째, 인권 보호가 목적인데 해당 국가 내 비정부기구(NGO)와 인권단체가 적과 결탁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면서 큰 핍박을 받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여섯째, 석유 거래나 수출의 금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공급자와 수요자가 다양하게 묘안을 동원해 그 규제를 피한다. 북한은 중국의 원조로 버티고 산유국은 이란처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수출 규제를 무력화한다. 일곱째, 전 세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반드시 편법이 있다. 물물 교환을 통해 달러화 개입 없이 거래가 이뤄지고 밀수는 브로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줘 매력적인 거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경제 제재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금융시장 퇴출이나 교역 및 운송금지가 기본이고 소셜미디어(SNS) 폐쇄도 주요 메뉴로 올라와 있다. 제재 효과를 높이는 확실한 대안은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룰을 만들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제재가 강자만의 논리를 적용하는 수단이어서는 항상 한계가 있다.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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