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미·중 간 기술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가 앞으로의 먹거리와 세계 질서를 결정할 전망이다. 4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워싱턴에서 만나 6G(6세대 이동통신) 개발에 총 45억달러(약 5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회사가 세계 6G(6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6G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또한 미·일 양국은 국제 표준화 부문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고,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는 한편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터 등의 공동 연구도 추진키로 했다. 이는 모두 미·일 양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적극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5년 수립한 ‘중국제조 2025’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견제받기 시작한 이후 ‘중국제조 2025’를 수면 아래로 내리는 반면 국제표준을 선도하기 위해 ‘중국표준 2035’를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가 이미 고속 성장 단계에서 고품질 발전 단계로 상당 부분 전환되었다는 판단 아래 보다 높은 단계의 기술표준을 통해 성숙한 제조업의 글로벌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AI, 빅데이터 등 차세대 기술 영역은 글로벌 기술표준이 부족하므로 중국이 서구를 추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18년부터 IoT(사물인터넷)용 반도체,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스마트 헬스, 5G 등 분야의 국가표준 제정 작업을 가속화하고 중국 표준이 글로벌 표준이 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기술개발 전략은 지난 3월 초 개최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채택된 14차 5개년 경제계획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4.5 계획을 통해 차세대 정보기술 등 8대 신흥산업을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를 상회하도록 육성하기로 했다. 또 AI, 양자 정보, 반도체, 생명건강, 뇌과학, 생물육종(유전자 등), 우주과학, 지질·심해 탐사 등을 첨단 프런티어 기술 분야로 선정하고 이들 분야 핵심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는 연구개발(R&D) 비용 연평균 증가율을 매년 7% 이상으로 하고, R&D에서 기초연구비 비중을 8% 이상으로 제고하기로 하였다. 또한 제조 강국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스마트제조, 녹색제조, 서비스형 제조로 제조업의 고도화, 스마트화, 녹색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즉 과학기술의 자주독립화,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산업구조 고도화와 혁신 성장을 14.5 계획의 최우선 핵심 과제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래 먹거리 산업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2013년 12월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진 로이터연합
2013년 12월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진 로이터연합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중국이 구사하는 산업정책은 1950년대 말 대약진(大進) 운동 당시 비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무모한 산업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중국은 정치이념에 사로잡혀 인민공사를 설립하고, 15년 내에 미국과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무모한 목표 아래 협동농장(공동 소유), 토법고로(제철소 대신 소형 용광로 설치), 제사해운동(참새, 들쥐, 파리, 모기 등 해충박멸 운동) 등 엉터리 정책으로 당초 좋은 의도와는 달리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다.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정책은 정부 내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기술 관료들과 싱크탱크들이 정밀하게 기획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미국이 더 긴장해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더 급해질 만한 보고서가 나왔다.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이나 EU(유럽연합), 일본 등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라이트하우스 네트워크(Global Lighthouse Network)’ 리스트에 새로 편입된 69개 제조 현장 가운데 중국은 20개를 보유해 1위를 차지했고, 그다음으로 EU가 19개, 미국이 7개, 일본이 5개를 각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리스트에 포함된 제조 공장과 현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기술 도입과 적용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과 가치 사슬을 성공적으로 혁신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중국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인프라와 교육 강화를 통해 미국 노동자의 경쟁력 제고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할 의향을 밝혔다. 일단 2조2500억달러(약 2542조5000억원)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 정책으로 경쟁력 회복의 기초를 다질 계획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500억달러(약 56조5000억원)를 반도체 분야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 차원의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나서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또한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해외에 소재한 미국 기업들에 대한 리쇼어링과 한국 반도체 기업과 같은 첨단 산업 분야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토지 무상 제공, 법인세 면제 등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미국도 이제 중국과 유사한 산업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미·중 간 무역분쟁에서 중국의 산업정책을 비판해온 미국이 산업정책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다행히 반도체, 특히 DRAM과 전기차 배터리 등 일부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제조의 경우 한국은 대만과 함께 양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중 간의 반도체 전쟁에서 세계 최고 비메모리 제조업체인 대만의 TSMC는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고 미국과 밀착한 반면 한국의 삼성전자는 다소 애매한 스탠스로 최종 입장을 정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우리의 절대적 우세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국한되어 있고, 반도체 관련 원천기술은 대부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미국의 눈 밖에 날 경우 곤란한 처지에 빠져들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제조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조차도 원천기술은 미국에서 출발한 만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원천기술에 대한 경쟁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겠다. 그만큼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조차 우리의 경쟁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가 이럴진대 AI, 자율주행, 양자 정보 등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경쟁력은 미국이나 중국에 훨씬 더 못 미치는 형편이다. 우리는 중국식의 정부 주도 산업정책을 중단한 지 20여 년이 넘는다. 돌아가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도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 미래 산업 발전에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비전문가가 아닌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에 의한 정확한 비전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계획 수립 등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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