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연합뉴스

미국을 필두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도 인플레이션이 부동산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뜨거운 아파트값에 기름을 부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 동향 10월호’에서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및 공급망 차질 등으로 회복 속도 둔화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김영훈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10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5% 오른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통신비 지원 등으로 낮았던 물가가 올해 물가 상승 요인으로 반영될 것”이라며 “국제 유가, 환율 등을 보면 상방 압력이 좀 더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작년 기저효과와 환율, 국제 유가 등을 고려하면 (물가 상승률이) 3%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3% 이내로 낮출 수 있도록 하향세를 보이는 농·축·수산물 등에 대한 수급 관리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금리 인상 앞에 장사 없다?

부동산 시장은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예측이 정설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가 미국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20%에 이르는 고금리·긴축 정책으로 잡아내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라는 칭호를 얻어낸 후, 시장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금리 상승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은행(한은) 역시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올린 후 11월에도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에 대해 치솟는 부동산값이나 연준의 테이퍼링(tapering·양적 완화 축소) 예고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고려도 있다고 해석한다.

부동산도 금리 상승에 반응하고 있다. 10월 25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 가격 동향 통계에 따르면, 한은의 금리 인상 예고와 함께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서울 아파트값은 1.05% 올라 지난 5월(1.01%) 이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강북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9월 1.87%에서 10월 0.93%로 반 토막 났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인플레이션이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와 단기가 다르다”며 “장기에는 물가 상승에 대한 보상으로 부동산값이 오르지만, 단기적으로는 금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아파트값 상승 역시 저금리가 주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시장이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을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주택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 연합뉴스
주택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 연합뉴스

2│부동산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돈의 가치 하락을 헤징(hedging·위험 분산)하는 수단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내년까지, 물가 상승이 오히려 강한 아파트값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인플레이션 조짐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주택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골드만삭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잰 해치어스는 10월 11일 보고서를 통해 자체 모델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의 집값이 2022년 말까지 16%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5.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2008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그동안 인플레이션 조짐이 ‘일시적 현상’이라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인플레이션율이 계속 높아질 경우 연준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시장은 연준의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에 테이퍼링뿐 아니라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反)인플레이션 긴축 정책에도 미국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이유는 무엇일까. 골드만삭스는 집값 상승 예상의 근거로 자재난·인력난으로 인한 공급 요인과 자금 여력이 충분한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주택 매수에 나서는 수요 요인을 꼽았다. 현금을 쥐고 있는 것보다는 실물자산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적어도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란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인플레이션은 본질적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실물자산 가치가 오르는 현상”이라며 “부동산은 실물 성격이 가장 확실한 자산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高)인플레이션 시대에는 헤징 수요로 포트폴리오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준석 교수는 또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그는 “한국의 경우 이미 금리와 상관없이 대출의 건전성, 총량 규제가 워낙 강해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오르더라도 부동산 가격 하락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주택 가격은 결국 땅값과 인건비, 건자재값, 공사 기간과 영업이익률 등의 총합이라고 봐야 한다”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집값도 오르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양가상한제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의 산식에서도 물가 상승분은 ‘정당한 상승’으로 간주해 별도로 고려한다”면서 “인테리어·리모델링 비용도 모두 오르는 시기에 집값만 오르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3│‘단기 상승론’과 ‘타산지석론’

단기에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에도 가격이 오르겠지만, 상승장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절충론 역시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은 집값이 떨어질 요인이 전혀 없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급격히 올리지만 않는다면 집값은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고인플레이션 시기는 자산 시장에 돈이 몰린다는 게 교과서적 설명이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중·장기적인 상승 동력을 어떻게 얻을지는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던 중 연준의 섣부른 테이퍼링 발표로 신흥국 자산 시장이 출렁였던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위기가 있더라도 자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세심하게 접근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테이퍼링, 금리 인상으로 한국 부동산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ECB)에서도 2013년을 기억하고 실물자산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 부동산값이 출렁이는 출구전략을 짜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병훈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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