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TX엔진
사진 STX엔진
김명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캘리포니아대(UCLA) 신문방송학, 스탠퍼드대국제정책학 석사, 미국 로욜라 로스쿨 J.D,현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국제중재인 사진 법무법인 화우
김명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캘리포니아대(UCLA) 신문방송학, 스탠퍼드대국제정책학 석사, 미국 로욜라 로스쿨 J.D,현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국제중재인 사진 법무법인 화우

국제중재 사건은 단심제다. 한 번의 결정으로 승패가 갈린다는 뜻이다. 물론 절차상 재판부가 이미 판단한 사안에 대해 취소 신청을 하거나 파기환송을 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그런데 이처럼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사건에서 법무법인 화우가 STX엔진을 대리해 승소했다. STX엔진은 STX중공업과 방글라데시 및 싱가포르 소재 컨소시엄(Sinha Power Generation Company 등 6개로 구성, 현지 로펌 A HOSSANI & ASSOCIATE 대리) 간 미지급 물품매매대금 청구 소송(이하 본안 사건)에서 하마터면 공동 피신청인이 될 뻔했다. STX엔진이 “우리는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제기한 ‘중재 관할권’ 관련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확실하게 선을 긋게 됐다. 이는 당초 국제상업회의소(ICC)가 내린 판정을 뒤집은 것이라는 점에서 법조계에선 “교과서에서나 나올 만한 사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언뜻 보기에도 STX엔진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에 어쩌다 STX엔진이 엮이게 됐을까.


STX엔진, ‘남의 집 싸움’에 등장한 이유

본안 사건은 2018년 3월, STX중공업이 방글라데시 및 싱가포르 컨소시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중재를 ICC에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컨소시엄은 STX중공업으로부터 방글라데시 암누라(Amnura) 지역 발전소와 관련해 설비를 구매하기로 하고 공급 계약서를 체결했다. 당시 STX중공업은 모든 물품을 자체 생산할 수 없었다. 이에 특수 엔진 부품을 STX엔진으로부터 납품받기로 하고 별도의 공급 계약서를 STX엔진과 체결했다. 하지만 컨소시엄 측에서 물품을 받은 후 “현지에서 제대로 가동이 안 된다”며 물품 하자 이슈를 제기했고, 서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STX중공업이 ICC 중재를 통해 해결하자며 소송을 냈다.

문제는 컨소시엄 측이 본안 사건 계약서의 당사자(STX 법인)가 아닌 STX엔진을 상대로 중재절차 ‘강제 인입(joinder)’ 신청을 포함한 반소를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쉽게 말해 “STX 법인과 STX엔진 사이에 어떠한 모의와 계약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니, 이 사건에 다 같이 들어와야 한다”는 게 컨소시엄 측 주장이었다. 

이에 본안 사건에 대한 판정과 별도로 ICC가 ‘강제 인입’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됐다. 컨소시엄 측은 △STX엔진이 STX중공업의 계열사이자 프로젝트 엔진의 하도급업체이며 △대표이사가 일정 기간 동일했고 △계약서상 의무 사항을 STX엔진이 대리해 수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강제 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STX엔진은 엄연히 STX중공업과 다른 법인격을 가진 별도의 업체로 본안 사건 계약서상 당사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ICC 중재인단은 STX중공업과 STX엔진 사이의 밀접한 거래 및 관련성 가능성을 받아들여 컨소시엄 측 주장을 인용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STX엔진은 대리인을 법무법인 화우로 교체했다. 사건을 대리한 김명안 화우 미국 변호사는 “STX엔진이 강제 인입되려면 해당 중재조항에 (STX엔진도) 합의했다는 증빙 자료가 있어야 한다”면서 “가장 분명한 것은 계약 당사자가 됐다는 증거인 서명 등이 있어야 하는데 정작 계약서를 보면 STX엔진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땡큐 스위스!” 관할권 전략 카드 먹혔다

화우는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하나는 STX엔진도 강제 인입된 마당에 아예 본안 사건에서 결백함을 주장하면서 책임이 없다는 점을 다툴 것인지, 또 다른 하나는 강제 인입 결정 자체를 취소할 방법이 있는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 변호사가 떠올린 것은 국제중재 사건에서 ICC와 같은 중재기관의 규칙에 명시돼 있지 않은 절차적 이슈나 제반 사항에 관한 관할권은 “중재지 법에 따라 결정된다”라는 점이었다. 특히 중재지 법원 성향에 따라 결정의 흐름이나 방향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중재지가 어디인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따라서 당초 본안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계약서상 중재지를 스위스로 정해뒀다는 점에서, 김 변호사는 곧바로 스위스 국제사법 제190조 2항에 기재된 중재판정 취소 사유 및 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재인단의 기존 결정은 중재판정 취소 사유 중 하나인 ‘관할에 관해 잘못된 판단이 이뤄진 경우’라고 판단해 스위스연방대법원에 중재판정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STX엔진은 강제 인입된 중재절차의 잠정적인 중단을 신청했다. 

그는 “본안 사건 당사자들이 계약할 당시 STX엔진은 하도급업체로만 인지됐고 실제 하도급 업무 수행 외에 그 이상으로 해당 계약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당시 제반 사정에 비춰 양측이 STX엔진을 당사자로 포함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을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ICC의 기존 판단처럼 실제 당사자가 아닌 피신청인을 강제 인입할 경우, 중재라는 사법적 틀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언제든 중재 판정부가 강제 인입 같은 ‘불확실한 변수’를 인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자체가 ‘중재’의 원칙이나 취지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 변호사는 “합의 당사자들끼리 ‘서로 무엇에 합의를 하는지 알고 진행한다’는 게 어느 정도 체계화돼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용상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강제로 재판부가 인입시킨다면 어떻겠냐는 부분을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스위스연방법원은 중재인단의 강제 인입 결정을 파기환송해 중재인단의 재심을 명했고, 이에 STX엔진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절차가 중단됐다. 그 결과, 6월 7일 최종 판결을 통해 STX엔진에 대한 강제 인입 결정과 관할권 취소를 인정하고 컨소시엄 측에 관련 법률 비용을 보상하도록 했다.

이번 사건은 STX엔진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사건’이기도 했다. 전체 계약 관계에서 하도급업체에 불과한데도 발주자(STX 법인)와 수급인(컨소시엄 측) 간 소송에 끼어들게 됐다는 점에서 만약 ‘패소 판정’이 날 경우, 향후 사업에서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했다. 또 본안 사건에서 컨소시엄 측이 청구한 금액이 1712만달러(약 239억원)의 거액이라는 점에서 금전적 불이익도 큰 소송이었다. 특히 통상 중재판정 취소 신청의 승소율은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한 번 내린 판단을 뒤집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김 변호사는 “국제중재절차의 기본 원칙인 당사자의 명시적 합의에 근거한 중재 진행이라는 엄격한 요건과 범위를 다시 한번 재확인한 셈”이라며 “하청업체로서의 협력자료가 오히려 역이용돼 제삼자로 강제 인입되는 등 특정 법인의 권익을 보호했다는 점 이상으로 국부 유출 방지에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미호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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