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인 해창주조장 대표 2007년 해창주조장 설립, 2020년 해창 18도 막걸리 출시
오병인 해창주조장 대표. 2007년 해창주조장 설립, 2020년 해창 18도 막걸리 출시

“언제까지 1달러짜리(약 1200원) 막걸리만 마실 겁니까? 서양 와인은 100달러, 1000달러 주고도 잘 마시면서, 왜 막걸리는 100달러 하면 안 됩니까?”

해남 땅끝마을에 자리한 해창주조장 오병인 대표는 작년에 내놓은 신제품 해창 18도 막걸리(출고가 11만원)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탔다. ‘전통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막걸리를 팔고 있다’ ‘10만원이 넘는 막걸리가 페트병이 웬 말이냐’는 비난도 많았지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 맛봤다. 마치 유산균 덩어리를 마시는 것 같다’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서 해창 막걸리를 ‘인생 막걸리’라고 추켜세웠고, 신세계가 운영하는 고급 슈퍼마켓에서는 해창 막걸리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 얘기도 들렸다.

최근 해남 해창주조장에서 만난 오 대표는 기자를 보자마자 도자기 병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가관이다. 이번에는 110만원짜리 막걸리, ‘해창 아폴로 21도’를 출시한다고 했다. 금 한 돈을 들여 병 앞쪽에 글자(해창)도 새긴다고 했다. 재룟값만 70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막걸리에 금 글자 새긴 도자기 병이 어울릴까?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100만원이 넘는 제품이라서 본인이 마시려고 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대부분 선물용으로 살 것으로 본다. 금 한 돈이 붙어 있는 도자기 병은 소장 가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물용 와인은 100만원 정도면 얘깃거리도 안된다. 하지만 막걸리가 100만원이 넘으면 주목을 받지 않겠나 싶다.” 이쯤 되면 오 대표가 전통주 양조인이기보다는 탁월한 마케터가 아닌가 싶었다.

오 대표의 ‘고가 마케팅’은 ‘한국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그의 자부심 대부분은 술 재료에서 나온다. 그가 만드는 막걸리는 찹쌀 80%, 멥쌀 20%를 쓴다. 해창 막걸리 6도, 9도, 12도, 18도 막걸리, 다 마찬가지다. 찹쌀은 양조장 근처 논에서 수확되는 유기농 찹쌀을 쓴다. 오 대표는 “단맛과 함께 감칠맛도 찹쌀에서 비롯된다”며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물도 최대한 적게 넣는다”고 말했다.

해창 막걸리의 ‘기분 좋은 단맛’ 비결은 하나 더 있다. 해창주조장은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물, 누룩과 같이 버무려 발효 공정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양조장에서는 하지 않는 공정을 하나 더 한다. 선풍기로 식힌 고두밥을 찬물로 다시 한 번 씻는 과정을 꼭 거친다. 막걸리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쌀로 고두밥을 찌면 밥 겉면에 전분 가루가 묻어 있다. 이대로 술을 만들면 다소 텁텁한 맛이 나는데, 이런 텁텁한 맛을 줄이려고 고두밥을 다시 한 번 물로 씻는 과정을 거친다. 밥맛이 없을 때 뜨거운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건 누구한테서 배운 게 아니고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어느 다른 양조장에서도 고두밥을 찬물로 다시 씻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해창 막걸리는 기본이 삼양주다. 한 번의 밑술, 두 번의 덧술로 막걸리를 만든다. 해창 6도, 9도, 12도, 15도 막걸리를 이렇게 만든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18도 되는 ‘해창 18도’는 좀 다르다. 두 번이 아닌 세 번의 덧술을 한다. 사양주인 셈이다. 덧술을 한 번 더 해서 효모 활동을 최대한 오랫동안 지속시켜 알코올 도수를 더 높인다. 사양주인 해창 18도는 그래서 도수 낮은 해창 막걸리보다 발효 시간이 더 길다. 저온 발효와 숙성에만 두어 달 걸린다. 해창 18도를 제외한 술들은 발효와 숙성에 20일 걸린다. 세 배 차이가 난다.

해창주조장 오 대표의 양조 이력은 그리 길지 않다. 지금의 양조장을 인수해, 막걸리를 내놓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즈음. 그러나 1927년 이곳에 터를 잡은 일본인이 청주를 빚었고 해방 후 2대, 3대 주인(오 대표는 4대 주인)도 막걸리를 빚었으니, 이곳 해창주조장 양조 역사는 192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해창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 인연으로 양조장 대표가 이제 나이가 많아 양조장 운영이 어렵다고 직접 맡아서 해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은퇴 후 인생을 고민하던 때라 덜컥 양조장을 인수했다. 양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정직한 재료(쌀, 누룩, 물만으로 만들고 일체의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는다)로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해창주조장은 현재 6도, 9도, 12도, 15도, 18도 제품을 만든다. 6도는 식당에서, 15도 제품은 일부 골프장에서만 취급한다. 또 18도는 연말에만 소량 생산한다. 그래서 9도와 12도 제품만 대형마트나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많이 팔리는 주력 제품은 해창 12도 막걸리다.


오병인 해창주조장 대표가 해창 18도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양조장 출고 가격이 11만원인 국내 최고가 막걸리다. 박순욱 기자
오병인 해창주조장 대표가 해창 18도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양조장 출고 가격이 11만원인 국내 최고가 막걸리다. 사진 박순욱 기자

오 대표가 요즘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제품은 ‘해창 아폴로 21도’다. 아직 출시하지 않은 신제품이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110만원이란다. 막걸리 한 병에 100만원이 넘다니, 도대체 누가 이걸 사서 마시겠나 싶었다.

해창 아폴로 21도는 도자기 병을 쓴다. ‘11만원 하는 해창 18도는 프리미엄 막걸리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유리병도 아닌 저렴한 페트병을 쓴다고 욕 꽤나 먹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막걸리를 도자기 병에 담아 출시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해창 아폴로 21도는 도자기 병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금 한 돈으로 ‘해창’ 글자를 도자기 병에 새길 예정이다. 도자기 병 사용, 24K 금 한 돈으로 글자 새기기 등 패키지 재료비만 70만원이 넘는다.

해창 아폴로 21도 술 재료는 해창의 다른 막걸리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제조 공정엔 더 정성과 시간을 기울였다. 발효와 숙성을 6개월 이상 오래 해, 맛이 부드럽고, 고유의 향이 나도록 했다. 발효만 두 달 정도 걸린다.

증류식 소주도 곧 나온다. 해창 18도를 증류한 술이다. 35도, 45도, 60도 세 가지 알코올 도수의 소주를 내놓을 작정이다. 소주 이름은 팔만대장경을 본떠 ‘대장경’이라 지었다. 우리나라에 증류주 기술을 전해준 나라가 몽골인데, 몽골의 침략을 불심으로 막기 위해 만든 것이 ‘팔만대장경’ 아닌가. 소주 개발에서도 오 대표의 ‘마케팅 DNA’가 여지없이 발휘될 전망이다. 해창 60도 대장경 소주를 올해 일 년 동안 소주잔 하나와 패키지로 묶어 2320만원에 팔 예정이다. 그냥 소주잔이 아니다. 24K 순금으로 만든다. 그것도 무려 금 50돈이 들어간다. 잔 하나 제작비만 2000만원 남짓 든다. 즉, 금 50돈으로 만든 소주잔 하나를 포함해서 대장경 60도 소주 가격이 2320만원이다. 잔 안쪽에는 계량 단위 금이 음각돼 있어, 바텐더들의 ‘원픽’이 될 것으로 오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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