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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다. 통상임금이 높아지면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각종 수당과 퇴직금은 증가한다. 기업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을 최대한 제외하려는 이유다.

최근 대법원은 수차례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기아 근로자 350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어학 수당’, 버스 운전기사들의 ‘물품 교환권’, 한국GM 사무직의 ‘업적 연봉’ 등도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통상임금과 관련한 친(親)노동 판결이 계속되면서 경영계의 관심은 대법원의 사무직(월급제) 고정OT(Overtime pay·시간외수당) 통상임금 판결로 쏠렸다. 현재 대다수 기업은 사무직 직원들에게 고정OT를 지급하는 임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만약 사무직의 고정OT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폭증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삼성·롯데·SK는 사무직 고정OT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단에 따라 인건비 부담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하급심에서 삼성SDI 패소 판결을 내린 터라 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삼성SDI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은 이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021년 11월 11일 삼성SDI 울산사업장 소속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판결을 깨고 “월급제 근로자의 고정OT는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법조계에선 고정OT의 통상임금 여부를 두고 판단한 첫 대법원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판결에 따라 고정OT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온 기업(현대차·기아·LG 등)이 휴일수당이나 연차수당을 줄일 가능성이 높아 결국 근로자의 향후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SDI 리튬 이온 배터리가 담긴 박스. 블룸버그
삼성SDI 리튬 이온 배터리가 담긴 박스. 사진 블룸버그

“고정OT는 연장근로 대가”⋯통상임금성 부정

삼성SDI는 전체 근로자에게 월 32시간분에 해당하는 고정OT(기본급의 20%)를 지급해왔다. 월급제 근로자에게는 평일 연장·야간근로에 대해 별도의 가산 수당을 주지 않았다. 고정OT로 연장근로 수당을 대신한 것이다. 이에 근로자들은 회사에서 지급한 고정OT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회사가 초과근로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고정OT를 정액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SDI는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은 노사가 사전에 정한 ‘소정근로’의 대가를 의미하는데, 고정OT는 연장근로의 대가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맞섰다.

1·2심은 고정OT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월급제 근로자의 고정OT는 실제 연장근로 여부와는 무관하게 지급된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12월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3요소로 제시한 내용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뒤집고 삼성SDI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고정OT가 관행적으로 지급됐다고 하더라도 해당 임금 체계가 만들어진 배경과 연혁을 살펴봐야 한다”며 “회사가 실제 연장·야간근로 시간을 별도로 따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고정OT가 소정근로의 대가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경영 선언’ 변수로⋯7·4제 반박에 ‘올인’

태평양은 이번 소송 항소심부터 참여해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쟁점을 특정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과거 고정OT의 지급 실태와 산정 방식 등을 토대로 소정근로의 대가가 아닌 연장근로의 대가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이 신경영 선언의 일환으로 제시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가 변수가 된 것이다. 이 전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7월 7일 일본 도쿄 회의에서 7·4제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듬해 4월부터 시간외수당 명목으로 지급하던 고정OT의 명칭을 ‘자기계발비(自己啓發費)’로 변경했다.

항소심은 이 전 회장이 선언한 7·4제가 시행됐으면 4시 퇴근 이후 연장근로는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지급된 고정OT는 연장근로의 대가가 아닌 소정근로의 대가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7·4제 시행 이후 고정OT의 명칭을 자기계발비로 변경한 것은 오후 4시 퇴근제의 정착이라는 7·4제 도입 취지와 상충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며 “연장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자기계발비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볼 때 소정근로의 대가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김상민(사법연수원 37기) 태평양 변호사는 “항소심 패소 판결이 나오고 ‘7·4제 때문에 졌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김경한(변호사시험 5회) 변호사도 “항소심에서 사실관계를 잘 정리하고 쟁점도 특정했는데, 법적 판단 과정에서 7·4제가 변수로 떠올라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태평양은 상고심에서 이 전 회장의 7·4제를 분석하는 데 ‘올인’했다. ‘7·4제로 인해 수당의 법적인 성격이 바뀌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대응 전략을 만들기 위해서다. 먼저 1심을 담당한 로펌이 10년 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정리했는데, 태평양은 이를 확장해 40년 전인 1980년대 임금 대장과 각종 규정 등 자료를 찾아냈다. 고정OT 제도의 연혁과 취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태평양은 이 자료를 토대로 1980년대부터 시간외수당이 지급됐다고 강조했다. 소정근로의 대가가 아니라 당시에도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를 주기 위해 시간외수당 명목으로 기본급 20% 상당액의 수당을 지급한 사실을 피력했다. 또 과거 자료를 통해 ‘7시 출근은 있고, 4시 퇴근은 없다’는 점을 증명하고, 실제로 대관·영업 부서 등에서 4시 이후에도 연장근로를 한 사실을 찾아냈다. 그 결과 재판부에서도 고정OT는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판결이 향후 고정OT와 관련된 논란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소속 근로자 3800여 명도 회사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상민 변호사는 태평양에서 각종 노동 관련 소송과 자문 업무를 수행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법률 전문 매체인 Asia Legal Business(ABL)가 선정한 2018 아시아 지역 40세 이하 우수변호사 4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경한 변호사는 2019년 태평양에 합류, 국내 기업들의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최저임금·교섭단위 분리 사건 등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냈다.

김종용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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