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운의 탱커선 화이트 웨일(WHITE WHALE) 2호. 사진 대한해운
대한해운의 탱커선 화이트 웨일(WHITE WHALE) 2호. 사진 대한해운

월셋집에 사는 세입자가 주택에 부과되는 재산세까지 부담하는 ‘특약 조항’을 포함한 계약을 맺은 뒤 도산(倒産)하게 된다면 재산세는 회생 감면 대상일까 아닐까. 이 경우 세입자가 도산해도 월세는 집주인에게 모두 줘야 한다. 다만 재산세는 회생절차에서 감면될 수 있다. 선박을 빌리는 방식도 주택 임대차 계약과 비슷하다. 회생절차를 밟은 대한해운은 세입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집주인 입장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대한해운은 해운 업계의 ‘도미노 파산’ 속에서 2011년 회생절차를 밟았다. 회생절차에서 영국 ‘택스리스(Tax Lease)’ 추징금을 100% 변제해야 하는 ‘공익채권’으로 봐야 할지, 변제율 3.7%의 ‘회생채권’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이 됐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택스리스 추징금이 공익채권, 대한해운은 회생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2009년 두 회사의 계약이 영국 택스리스로 맺어졌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택스리스는 영국과 미국 등의 세법에서 적용된 것으로, 세금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리스 방식을 뜻한다. 초기에 감가상각 비용을 크게 잡아 해운사에 최대한의 리스료를 부과하면 금융사 재무제표 당기순이익이 줄어들고, 그만큼 절감된 법인세를 금융사와 해운사가 나눠 갖는 것이다.

대한해운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택스리스 추징금 보증채권을 회생채권으로 인정해야 함을 증명해 스탠다드차타드은행(김앤장법률사무소 대리)을 상대로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 승소를 이끌었다.


대한해운 회생절차 화두 된 ‘택스리스’…法 “회생 채권으로 봐야”

2009년 당시 기업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택스리스를 일반적으로 인정한 영국 세법의 향후 개정 가능성이 이슈였다. 만일 택스리스를 금지하는 개정안이 소급 적용될 경우 절감됐던 법인세를 돌려줘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위험)가 컸다. 이미 미국은 2004년 세법 개정으로 택스리스에 따른 법인세 절감을 막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해운이 택스리스를 추진했던 이유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해운업이 궁지에 몰리면서 자구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대한해운은 2007년 파나마에 소재하는 특수목적회사(SPC)와 선박을 장기 리스하는 ‘원계약’을 맺었다. 이후 2009년 대한해운은 법인세를 대폭 절감하기 위해 택스리스 방식을 선택하면서 ‘변경계약’을 체결했다.

영국 국세청에서 택스리스를 인정받기 위해 영국계 금융사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영국에 새로운 택스리스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대한해운이 리스한 선박의 소유주가 됐다. 택스리스를 활용해 두 회사는 총 400억원을 절세할 수 있었다. 이 중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약 300억원, 대한해운은 약 100억원을 나눠 가졌다. 만일 향후 영국 세법이 소급 개정돼 절세 이익을 반환할 경우, 400억원의 절세이익 반환을 모두 대한해운이 부담하는 내용의 면책청구권 내용이 변경계약에 포함됐다.

그런데 우려했던 대로 2015년 영국 세법이 택스리스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두 회사가 소급 적용을 받으면서 400억원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대한해운이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불거졌다. 법정관리를 받던 대한해운이 SM그룹에 인수되고 회생절차에서 원계약을 이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맺었던 ‘(특정 선박과 관련된) 원계약과 변경계약을 하나로 본다’는 취지의 규정이 대한해운의 발목을 잡았다. 이 규정에 의해 선박 리스에 대한 원계약과 택스리스에 관한 변경계약이 ‘하나의 계약’으로 평가될 경우, 원계약을 이행하기로 한 결정에 의해 변경계약까지 전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대한해운은 ‘선박 임대료’의 경우 원계약을 유지해 공익채권으로 100%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택스리스가 포함된 변경계약을 원계약과 분리할 수 있는 별개의 계약이라고 봤다. 공익채권으로 인정되는 원계약상 선박임대료 채권과는 달리, 변경계약상 면책청구권은 회생채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계약 전부를 이행해야 하고 계약 일부만을 이행 선택할 수는 없다”면서 “당사자들이 해당 선박에 대한 원계약과 변경계약을 하나의 계약으로 보기로 정함에 따라 변경계약까지 이행돼야 하고, 이에 따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면책청구권 역시 공익채권에 해당한다”면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

하지만 2심은 대한해운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해운을 대리해 승소로 이끈 최효종(사법연수원 34기) 대륙아주 변호사는 일반적인 계약 상황이 아닌 ‘회생절차’ 도중에 벌어진 법적 다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2심은 “원계약과 변경계약은 계약 체결 경위와 목적이 다르고, 내용과 성질도 다르다”고 판시했다. 원계약과 변경계약이 분리될 수 있고, 결국 택스리스를 회생채권으로 판단한 것이다.


외국 도산법 들여다본 대륙아주…“도산절차에선 ‘공익채권’ 인정 범위 좁혀야”

한국 도산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이 부분에 관한 논의가 많지 않았다. 이에 대륙아주는 원계약과 변경계약이 분리돼야 함을 증명하기 위해 외국 도산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대륙아주는 미국, 일본 등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에 대한 판례를 분석하고 번역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최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 도산 판례 역사만 100년이 넘어 중요한 판례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나라 도산법도 미국 법과 일본 법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참고 판례로 냈다”면서 “특히 선박 임대 과정이 주택 임대와 비슷해 일본에서 임차인이 회생절차에 들어갔을 경우 두 계약을 분리해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를 찾아내 법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5월, 하나의 협약서에서 정한 계약도 그 내용과 본질에 따라 별개의 계약으로 나눠질 수 있다고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도 대륙아주의 변론에 힘이 됐다. 전합 판단에 따르면 일반적인 민사 사건에서 당사자 간의 관계에 따라 ‘대가관계’가 넓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를 포괄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회생절차는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공익채권을 폭넓게 인정하면 다른 이해관계인들이 후순위로 밀려나면서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최 변호사는 “외국 금융 자본이 한국의 중견 기업을 공격하고 해운 업계를 흔든 것인데, 이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택스리스로 이익을 얻은 총 400억원 중 대한해운이 100억원밖에 분배받지 못했지만 추후 400억원 전부의 추징금 보증책임을 부담한다는 내용의 불공정한 계약이었다”라며 “그런데도 계약상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은 도산 법리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11월 17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민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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