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이연제약 충주 바이오 공장. 라이시스 공정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유전자 치료제 생산을 위해 배양한 대장균을 파괴해 플라스미드를 꺼내 유전자를 추출하는 설비가 있다. 조선일보 DB
1월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이연제약 충주 바이오 공장. 라이시스 공정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유전자 치료제 생산을 위해 배양한 대장균을 파괴해 플라스미드를 꺼내 유전자를 추출하는 설비가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개문(開門)합니다.”

1월 3일 오전 충북 충주 첨단산업단지 이연제약 충주바이오 공장 정문. 안내 직원이 리모컨을 누르자 SF영화 한 장면처럼 안내 데스크 좌측 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사 로고인 ‘이연(REYON)’이 음각된 층고(層高) 10m, 20㎝ 두께의 브론즈 벽이 열리자, 흰색 복도가 나타났다.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복도 양쪽으로 회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연제약의 충주⋅진천 공장을 총괄하는 송진용 전무는 “여기가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들어서는 입구”라고 소개했다. 이연제약은 지난 2017년 7만6000㎡(약 2만2851평) 충주 공장 부지에 유전자 치료제를 생산하는 바이오 공장과 합성 의약품 등을 생산하는 케미컬 공장을 착공해 지난해 완공했다. 작년 6월 완공한 바이오 공장은 유전자 치료제 원액 대량 생산에 필요한 바이오리액터(세포 배양기) 등을 갖췄으며 올해 가동을 목표로 한다.

국내에서 유전자 치료제 생산만으로 이 정도 시설을 갖춘 곳은 이 공장이 유일하고, 전 세계에서도 이 정도 규모는 손에 꼽는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 출신으로 36년을 의약품 제조 공정에 바친 송 전무도 “이런 첨단 최신식 공장은 처음이다”라며 “공장은 완공했고, 현재 제조 공정이 규격에 맞게 균질하게 생산되는지 검증하는 밸리데이션 작업이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플라스미드(pDNA) 키우는 대장균 배양이 첫 단계

브론즈 벽 뒤쪽 벽에는 무인지게차(LGV)를 원격 조종하는 무선 제어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부착돼 있었다. 노란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 모니터와 함께 사람 몸통만 한 플라스틱 백이 달린 기계가 나왔다. 대장균(E.coli)을 배양하는 30L짜리 발효기인데, 한 번 쓰고 폐기하는 플라스틱 백을 활용해 소량 생산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첨단 의약품을 만든다고 기대했는데, 시작은 대장균이었다. 대장균의 용처를 묻자 유전자 치료제 개발부터 설명이 시작됐다. 유전자 치료제는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성분을 처방하는 합성 의약품과 달리, 환자의 세포에 치료용 유전자를 추가하는 맞춤형 약이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유전자(DNA) 재설계에서 시작한다면 제조는 ‘대장균(박테리아)’에서 시작한다. 조작된 유전자를 치료제로 쓸 만큼 만들려면, 고리 모양의 미생물 DNA인 플라스미드(pDNA)에 유전자를 끼워 넣어서 배양해야 한다.

플라스미드는 대장균 안에서 증식하니, 대장균에 먹이(배지)를 주고 잘 키워야 한다. 이후에 대장균을 깨부숴서 플라스미드를 꺼내고, 플라스미드에 끼워 넣은 유전자를 효소 가위로 추출해 치료제로 만든다. 충주바이오 공장에는 30L짜리 일회용 배양기부터 세척 후 연속 사용이 가능한 50L·200L·500L다회용 설비도 갖췄다.

또 다른 방에 들어가니 거대한 원통이 파이프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배양한 대장균을 깨서 플라스미드를 꺼낸 후 유전자를 추출·정제하는 곳이다. 대장균을 배양해서 유전자 추출까지 약 일주일이 걸린다. 

대장균 배양에 4일, 대장균에서 플라스미드를 꺼내 유전자를 추출하는 정제까지 2~3일이면 한 개의 배치(원액)가 나오는데, 그 양이 30L의 배양액 기준 3g이라고 했다. 가격을 묻자 “부르는 게 값”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제품을 제작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서 가격을 매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세포 유전자 의약품 인식 급변

유전자 치료제 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유전성 질환인 척수성 근육위축증(SMA) 치료제인 ‘졸겐스마’는 대표적인 유전자 치료제다. 주사 1회에 25억원으로 유명하다. SMA에 걸린 아기는 근육이 줄어 앉지도 걷지도 못하고, 마지막엔 호흡조차 힘들어 사망하는데, 졸겐스마는 유전자 자체를 바꿔 병을 완치시킨다. 

하지만 유전자 치료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암, 희귀 질환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니,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긴 하겠지만 ‘안전성 문제도 있고, 가격도 비싸니, 지금 당장 투입할 약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컸다.

그런데 노바티스가 2017년 악성 백혈병을 완치시키는 ‘킴리아(1회 주사 비용 5억원)’로 잭팟을 터뜨렸다.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포⋅유전자 의약품의 일종인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서 인식이 급변했다. 

유전자 치료제는 최근 제약 업계를 송두리째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BIS리서치가 지난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2020년 25억6000만달러(약 3조원)에서 2027년 250억달러(약 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의료 장비 대기업인 다나허는 지난해 6월 플라스미드와 mRNA를 전문으로 위탁생산하는 기업인 ‘알데브론’을 96억달러(약 11조원)에 사들였다.

국내 바이오벤처들도 글로벌 제약사 기술이전을 목표로 연구개발(R&D)에 대거 뛰어들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임상 및 비임상 시료 생산을 해외에 맡긴다고 한다. 국내에 생산 가능한 곳이 많지 않은 탓이다. 이연제약은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임상용 시료는 대량생산이 필요하지 않지만, 생산하려면 대규모 설비가 있어야 한다. 이연제약과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바이오벤처는 충주바이오 공장 원액 라인에서 신약후보 물질 임상용 시료를 생산하고, 이연제약은 완제품 라인에서 위탁생산(CMO)을 할 수 있다.


플라스미드 선택 집중하고 ‘유연성’ 확보

그러나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생산을 ‘블루오션’으로 보는 것은 국내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SK㈜ 계열사인 SK팜테코는 수천억원을 들여 해외 세포 유전자 치료제 관련 시설을 사들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짓는 5공장에 세포⋅유전자 치료제 생산 공정을 갖추고 위탁생산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연제약 충주 공장 전경. 이연제약
이연제약 충주 공장 전경. 사진 이연제약

이연제약은 이들과의 차별점을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기존에 세포·유전자 치료제 제조 공장은 ‘세포와 유전자’를 모두 다룬다면, 이연제약은 ‘유전자’, 그중에서도 유전자 치료제 원액인 ‘플라스미드’에 집중했다.

플라스미드는 대장균을 발효해 만들기 때문에 원액 생산 관리가 쉽지 않다. 여기에 원액부터 완제까지 원스톱 생산이 가능한 공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충주 공장은 독일 사투리우스와 보쉬, 미국 사이티바에서 최첨단 최신식 장비를 공수했다.

발효기와 배양기 한 대당 값이 10억~20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독일 보쉬가 제작한 유전자 치료제 완제(DP) 공정은 장비 구입에만 150억원이 들었다. 박병완 이연제약 팀장은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이런 장비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박 팀장은 “페라리를 샀다고, 카레이서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고급 설비만 있다고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핵심은 이런 설비를 다루는 맨파워”라고 말했다. 합성 의약품은 전자동으로 찍어내듯 생산하지만, 첨단 바이오 의약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미생물을 다루는 작업이라 작업 환경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박 팀장은 “본격적으로 공정이 시작되면 생산 자격이 있는 한정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라며 “안전 문제와 기술 유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충주 공장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30L 수준의 소형 장비부터 500L의 초대형 장비까지 다양하게 시설을 구축한 것도 차별점이라고 했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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