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마트(PX·Post Exchange) 위탁판매 입찰전을 앞두고 화장품 업체들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해 수익성은 낮지만, 일단 PX 진열대에만 상품이 들어가면 연간 수십억원대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병을 겨냥한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장병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PX 위탁판매가 ‘알짜 시장’으로 통하면서 화장품 업계에선 ‘기획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신제품을 출시한 뒤 정상가를 턱없이 높게 설정한 후, 입찰 제안에서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는 식의 ‘낙찰 매뉴얼’이 관행으로 통하고 있다. 여기에 신생 화장품 업체에 접근해 PX 납품을 성사시켜주겠다며 접근하는 브로커 업체까지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작년 화장품 매출 1731억·치열해진 입찰 경쟁

국군복지단에 따르면, 지난해 PX의 총매출액은 1조2071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화장품 매출은 1731억원, 전체 매출의 14.3%다. 애초 PX에서 화장품 매출 비중은 10%대를 넘지 않았지만 장병의 급여 증가로 소비력이 커지면서 화장품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2011년 10만4000원에 불과하던 병장 월급이 2017년 21만6000원, 지난해 54만1000원으로 늘었다. 올해 병장 월급은 60만8000원이다. 장병의 소비력이 커지면서 PX 상품 트렌드도 달라졌다. 과거엔 ‘양 많고 저렴한 제품’이 인기였다면, 이제는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한다. 여기에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장병은 ‘온미맨드(나를 위한 소비 형태를 이르는 신조어)’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아침 점호 전 선크림 바르기와 일과 후 마스크팩은 생활관의 평범한 일상이 됐다.

PX에서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PX 시장을 노리는 화장품 회사가 많아졌다. 문제는 PX가 품목별로 소수의 상품만 선정해 판매를 허용하는 ‘폐쇄형 시장’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국군복지단은 현장 실사 및 가격 조사 결과 ‘적격’ 판정을 받은 물품에 한해 ‘서류심사·심의위원 평가’ 점수, ‘판매가 할인율’ 점수를 합산한 뒤 위탁판매 물품을 선정한다. 유통 단위와 가산점을 더하는 서류심사와 갑·을·병 세 그룹으로 진행되는 심의위원 평가는 각 제품 간 점수 차가 크지 않아 변별력이 없다. 적격성 판정도 납·비소·수은 등 안전성 검사 항목에 대한 국가공인기관 시험성적서 제출로 대신한다. 최종 당락의 성패는 할인율이 결정한다.


‘시중 가격의 5% 수준’·비상식적인 할인율

국회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성일종(국민의힘) 의원실이 국군복지단으로부터 제출받은 PX 납품 화장품의 가격표에 따르면, 2019년 PX 입찰을 통과한 엔프라니의 블랙스네일(달팽이) 리페어 크림 정가는 29만8000원으로 신고됐다. 2020년 낙찰된 닥터지의 블랙스네일 프레스티지 세트의 정가는 35만원, 같은 회사의 프레스티지 마유 크림은 14만9000원을 정가라고 신고했다.

화장품 업체들은 입찰 제안서에서 해당 제품을 정가 대비 90% 이상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했다. 엔프라니는 달팽이 리페어 크림의 판매 단가를 7700원으로 잡았다. 닥터지는 블랙스네일 세트를 3만2690원, 프레스티지 마유 크림을 9510원에 팔겠다고 했다.

이 판매 단가는 PX 관리수수료 6.09%, 복지수수료(복지율) 7.2%, 카드수수료 2.5%와 물류 비용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군납 정보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수수료와 물류 비용 등으로 판매 단가의 30%가 빠진다”면서 “달팽이 리페어 크림 하나를 팔아 화장품 회사가 가져가는 돈은 5000원 내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시중가 29만8000원짜리를 납품하고 5000원만 받아가겠다는 것인데, 악성재고를 일시적으로 털기 위한 목적이라면 몰라도 장기적으로 납품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거래”라고 말했다.

PX에서 많이 팔리는 달팽이 크림과 마유 크림은 유분이 많고 발림성이 좋다는 이유로 10여 년 전 화장품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소재다. 하지만 지금은 유행이 지나 시중 화장품 매장에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현재 시중 로드숍에서 판매되는 달팽이 크림은 2만원 내외. 1만원대 이하의 상품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PX에 납품하는 회사들은 자사 제품의 가격이 10만원대를 초과한다고 주장한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해당 상품에 대해 군납 시장을 노리고 만든 ‘기획 상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납을 하고 있는 한 화장품 대기업 관계자는 “시중 정상가가 2만~3만원대에 불과할 상품을 20만원이 넘는 초고가로 책정한 뒤, 납품 심의에선 90% 이상 할인율을 제시하는 식으로 입찰에 나서는 업체들이 최근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입찰용 대형마트 영수증 발급 비용 1500만원

심사 주체인 국군복지단은 PX 입찰에 나서는 업체에 출품 제품의 시장 가격을 오프라인 매장의 영수증으로 증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출 영수증은 발행처 규모가 클수록 심사에서 유리하다. 배점 때문이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규모 점포는 2.5점, 롯데슈퍼와 GS수퍼마켓 등 준대규모 점포는 2.0점, 종합할인점과 올리브영·랄라블라 같은 전문점은 1.5점, 기타 소형 매장은 1.0점을 준다. 유통 대기업과 대형마트는 소형 점포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안정돼 있고, 제품 선별 작업이 까다롭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제조사는 대형마트 네 곳의 영수증을 제출해야 10점 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형마트에 제품을 입점시키려고 한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해외 명품 화장품보다 비싼 국내 기업 화장품이 대형마트에서 20만~50만원에 팔릴 가능성은 현저히 작다. 판매율이 저조한 상품에 매장 공간을 내줄 대형마트도 없다. 바로 이때, 화장품 업체에 대형마트 영수증을 만들어주겠다는 브로커 업체가 등장한다.

브로커 업체들은 대부분 대형마트에서 화장품 임대 매장을 운영하거나 화장품 납품사를 운영하는 업체들이다. 이들은 제조사가 입찰하려는 상품의 품목 코드를 생성하고, 대형마트에서 해당 상품이 판매되는 것처럼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한 수출 전문 화장품 회사의 대표는 “브로커로부터 상품 하나당 1500만원을 주면 국군복지단에 제출할 수 있는 영수증을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화장품 회사에서 돈을 주면, 그 돈으로 제품을 구매해 대형마트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것처럼 조작하고, 남은 비용은 브로커 업체에서 수수료로 챙기는 방식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수익 환수를 위한 부실 제품 제조와 장병 복지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한 화장품 대기업 관계자는 “애초 가격에 거품이 낀 제품은 90% 이상 할인한다고 해도 소비자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면서 “가격 경쟁이 심해질 경우 제품의 질 악화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고할인율을 제시하는 기획 상품이 판을 치다보니 정작 MZ 세대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은 PX 판매가 어려운 실정이다. 군납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MZ 세대가 많이 쓰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선 ‘제 살 깎기’식 할인율 경쟁은 거부한다며 PX 입점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다”라고 했다.

성일종 의원은 “장병들이 그동안 거품 가격을 앞세워 PX에 납품된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장병 복지를 최우선으로 PX 납품 절차를 개선하고, 곳곳에서 드러난 부당 거래는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 했다.

윤희훈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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