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준 휴이노 대표부산대 컴퓨터공학과 학·석·박사길영준 휴이노 대표가 7월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길 대표가 손에 쥔 것은이 회사가 개발한 원격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다. 김명지 기자
길영준 휴이노 대표부산대 컴퓨터공학과 학·석·박사
길영준 휴이노 대표가 7월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길 대표가 손에 쥔 것은이 회사가 개발한 원격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다. 사진 김명지 기자

7월 11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글로벌 의료기기 1위 업체인 존슨앤드존슨(J&J)메디칼의 ‘메드테크(MedTech)’ 행사가 열렸다. J&J메디칼이 기존 의료기기를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종합 치료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비전 선포식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오진용 J&J메디칼 북아시아 총괄사장은 “한국 바이오벤처와 오픈이노베이션을 언제나 환영한다”며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휴이노를 언급했다. 휴이노는 심전도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는 심전도 의료기기 ‘메모패치’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J&J 공식 행사에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자 업계에서는 휴이노의 심전도 기기가 J&J메디칼을 통해 유통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휴이노는 지난 4월 유한양행과 메모패치에 대한 국내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삼성, 구글, 애플도 휴이노가 보유한 환자 심전도 데이터에 관심을 보였다”라고도 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판매하는 스마트워치에는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돼 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환자용’ 데이터는 없기 때문이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인 길 대표는 같은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이후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국으로 가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길 대표는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서 협업을 제안했더니 ‘서울대병원에 가 보라’고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더니 ‘하버드대 의대에서 쓰느냐’라고 묻길래 아예 ‘미국으로 가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길 대표를 7월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J&J메디칼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J&J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메드테크’를 매년 연다. 휴이노는 지난 2020년 글로벌 톱20에 선발됐다. 한국 회사 중에서는 휴이노가 유일했다.”

어떤 회사들이 결선에 올랐나.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몇 군데 있었다. 휴이노가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기술력이라고 본다. 휴이노는 지난해 구글이 후원하는 글로벌 AI 대회에서도 전 세계 1등을 차지했다.”

AI와 헬스케어를 접목할 생각을 한 계기가 있나.
“박사 학위 논문이 생체신호와 관련돼 있다. 의료는 다뤄야 할 정보가 많다 보니 의료진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진단 과정에서) 환자가 아닌 사람의 신호를 보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환자가 아닌 사람을 걸러내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AI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오·탈자만 잡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오·탈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글 쓰는 사람의 생산력이 훨씬 향상된다.”

불필요한 생체신호를 걸러준다는 건가.
“사람의 심장은 통상 1초에 한 번씩 뛴다고 본다. 그렇다면 심장은 1시간에 3600번, 하루 종일은 8만6400번 뛴다. 환자를 찾으려면 이렇게 8만6400번 뛰는 심장의 신호 중에서 단 한 번의 잘못된 신호를 잡아내야 한다. 메모패치는 그 하나의 잘못된 신호를 잡아내려고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모패치의 엔드유저는 의료진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다. 창업 초기에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최고의료책임자(CMO)로 근무했다. 의료진의 생각과 의료진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직접 대변해서 기술에 녹이는 역할을 했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서는 환자 데이터와 관련한 문의가 있다고 들었다.
“애플, 삼성, 구글 같은 회사들도 심전도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일반인 데이터만 갖고 있다. 애플 워치나 갤럭시 워치는 의료기기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이 쓴다. 반대로 우리는 환자들의 데이터만 분석해 왔다. 그러니 관심을 갖지 않았겠나 싶다.”

휴이노의 기술력은 어디에 있나.
“전체 직원 80여 명 중에서 40여 명이 개발자다. 박사급은 15명, 석·박사를 포함하면 30명 정도가 된다. 최근에는 수리과학연구소에서 수학을 연구해 온 교수가 합류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전문의, 임상병리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전문가 12~13명이 일하고 있다.”

휴이노는 2021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윤성로 교수팀과 함께 피지오넷(PhysioNet)이 주관하는 글로벌 AI 대회에서 1위 성적을 거뒀다. 피지오넷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 의대에서 운영하는 오픈소스 의료 정보 제공 기관이다. 휴이노⋅서울대 연구팀의 논문은 심전도(ECG)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회인 CINC(Computing in Cardiology) 저널에도 게재됐다.

응급구조사는 어떤 일을 하나.
“환자의 심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직군이다. 심장의 위험 신호를 AI에 학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병원에서 받은 환자의 응급 데이터를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기준 800억원가량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투자를 받았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투자받는 과정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다. 투자자들을 찾아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투자설명회(IR)를 한다. 사업성을 평가받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정이 있다. 투자자의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찾아내서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회사를 하고, 이런 제품을 갖고 있는데, 투자 문의를 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 데서 시작한다.”

창업자들은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우여곡절은 없었나.
“창업을 하면서 10억원 가까운 개인 돈이 들어갔다. 살던 집을 줄여서 이사를 하고, 그 집을 팔고 전세를 가고, 전세금을 빼서 월세로 옮겼다. 2014년 창업해서, 2017년쯤 시드투자로 받은 투자금을 모두 소진했다. 모두가 봐도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는데, 무턱대고 버텼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무식하게 사업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회사가 반전할 기회는 어떻게 찾았나.
“2016년 12월 종무식 때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설명하고 퇴사를 권유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한국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부흥기 초입에 있다고 믿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창업 대회가 열렸다. 16강 안에 들면 1억원을 상금으로 주는 대회였다. ‘1억원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서울대병원과 협력해 도전했는데, 바로 그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상금이 5억원이었다. 그때부터 여러 병원으로부터 협력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내년 8월 상장 계획은 변함없나.
“변함없다. 실력 있는 회사에 시장 상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되는 식당은 경기가 안 좋아도, 코로나19가 와도 늘 붐비지 않나.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 정책에 필요한 점이 있다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건강보험 수가와 육성 정책이 이어져 있어야 하는데, 수가에 대한 정책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가가 좀 더 높이 측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가 있나.
“수가를 높여야 의사들이 쓰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회사들이 생기지 않겠나. 한국은 원격 모니터링 의료에 건보 수가가 없다. 미국에서는 보험 적용이 된다. 보험 적용이 되고, 안 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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