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고려대 의대 석·박사, 일본 게이오대 연수, 현 고려대 안암병원 기획실장 사진 고려대 안암병원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고려대 의대 석·박사, 일본 게이오대 연수, 현 고려대 안암병원 기획실장 사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암 4기라고 해서, 곧 말기 암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리 겁먹을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바로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다. 8월 9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이 병원의 김진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기수가 4기이지만,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라며 “좌절하지 말고 의사를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년에 약 300~400차례의 대장암 수술을 하고 있다. 15년간 약 3000차례 대장암(직장암·결장암 포함) 수술을 집도하며, 이 분야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 가장 끝부분인 ‘대장’은 길이가 1.5m에 달하는 긴 장기다. 구불구불한 파이프 모양의 관으로 이뤄진 대장은 소장 끝에서 시작해 항문으로 이어진다. 대장은 크게 결장과 직장으로 이뤄져 있다. 중요한 소화기관인 대장에 종양이 발생해 고통받는 국내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과다한 육류 섭취, 섬유질 섭취 부족 등으로 대장암은 위암 다음으로 흔한 암이 됐다. 2019년 발표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국내에서 대장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2만8111명으로 전체 암 발생 환자 수(23만2255명) 의 12%를 차지했다.

대장암은 완치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10명 중 2명이 재발하거나 전이된다. 암이 재발하면 수술 난도는 더 높아진다. 김 교수는 재발성 대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세계 최고 수준인 40%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의사다. 

특히 재발성 직장암의 경우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비율이 40%가 되지 않고 암이 재발한 부위와 전이된 부위를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일반적인 대장암 수술보다 난도가 높을 뿐 아니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적은 이유다. 

김 교수는 국내를 넘어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인도, 카자흐스탄 등에서 오는 환자를 치료하며 대장암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전인 2019년 한 해에만 인도·홍콩·싱가포르 등 해외 의료진에게 의술을 전수하기 위해 해외를 12번 왕복했다.

재발성 대장암은 추가 전이를 막기 위해 골반, 자궁, 방광 등을 모두 절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종양 부위가 혈관, 림프절 등과 맞닿아 있어 수술 난도가 높다. 수술이 12~13시간 이어지기도 한다. 김 교수는 “암과 충분한 거리를 두되, 최소한의 절제로 각 장기의 기능을 보존하면서도 종양만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대장암 환자들은 암 절제 시 항문 보존을 하지 못하게 돼서, 인공 장루(腸瘻)를 사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직장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주로 묻는 말이 “배변주머니를 차느냐”다.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암수술센터를 찾아 진료를 받는 대장암 환자는 연간 5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45%는 암 절제 시 항문 보존이 힘들어 자칫 인공 장루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를 직장암 환자들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는 항문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수술 기법을 도입했다.

김 교수는 “직장암 수술 후 항문 기능을 상실해 복벽에 인공 항문을 만들어주는 비율은 5%도 안 된다”면서 “직장에 생긴 암을 도려낼 때 가능한 한 항문 기능을 살려 놓는 항문 보존 괄약근 간 절제술을 시행해 수술 후 삶의 질이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쉬운 것은 재미가 없다”라며 “어려운 수술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도 보람 있는데, 외과 의사로서의 삶이 곧 환자에게도 도움이 돼 더욱더 뜻깊다”라고 했다. 외과 분야에서도 대장·항문 분야의 전문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배경에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즐겁다”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은 수술 기법이 뛰어나다. 이런 이유로 복강경 수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암수술센터 또한 개복 수술과 복강경 수술 비율이 2 대 98이다. 대부분의 수술이 복강경 수술로 진행된다는 얘기다.

복강경 수술이란 개복하지 않고 제대 주위에 1㎝의 복벽 구멍을 만든 후 복강 속에 이산화탄소 가스를 넣어 복강 내 기복을 만들어 수술 공간을 확보한 다음 비디오 모니터를 보면서 필요에 따라 5㎜ 또는 10㎜의 구멍 1~4개를 배에 뚫고 이를 이용해 복강경 수술 기구를 삽입, 수술하는 것을 말한다. 흉터 부위가 작고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른 ‘최소침습’ 수술이다. 직장암과 같이 수술 범위가 좁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들여다보기 어렵고, 외과적으로 더욱 정교한 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로봇을 활용하기도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암수술센터는 김 교수 외에도 대장암 분야 권위자 김선한 교수를 필두로 곽정면 교수, 백세진 교수 등이 있다. 김 교수는 “매주 의료진들이 수술 사례를 논의하면서 더 성공적인 수술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진(왼쪽 첫 번째)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홍콩 중문의대 의료진 및 홍콩 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직장암 로봇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고려대 안암병원
김진(왼쪽 첫 번째)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홍콩 중문의대 의료진 및 홍콩 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직장암 로봇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고려대 안암병원

조기 발견 시 90% 이상 완치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암 수술의 경우엔 다를 수 있다. 그는 “늘 어려운 수술일수록 머릿속에서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수술 부위 윤곽을 그려보고, 구현해 본다”면서 “다른 병원에서도 수술이 어렵다고 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찾아오는 환자도 많아, 그들에게 최적의 수술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르네상스기에 ‘어려운 일을 쉽고 세련되게 하는 천재의 방식’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김 교수는 스프레차투라 분위기를 풍기는 의사다. 그는 “대장암과 관련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단하다”면서도 “이런 일을 결과적으로 쉽게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외과 의사는 고령이거나 암 수술 부위가 복잡할 경우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기도 한다. 그는 “무리하지는 않는 선에서, 조금 어렵더라도 환자 생존율을 높기 위해 수술을 시도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줌(Zoom)을 활용해 의료진과 의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서전 크리에이티비티(surgeon creativity·수술의 창조성)’ 주제의 강연도 했다.

대장암은 국가 암 검진 권고안에 따라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만 받으면 조기 발견으로 90% 이상 완치할 수 있다. 그는 “먹고 싶은 건 먹고, 건강검진을 잘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장윤서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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