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오 바이오니아 회장 서울대 화학과, KAIST 생물학 석·박사, 전 한국생명과학 연구원 사진 바이오니아
박한오 바이오니아 회장 서울대 화학과, KAIST 생물학 석·박사, 전 한국생명과학 연구원 사진 바이오니아

대전 대덕특구에 있는 분자 진단 전문기업 바이오니아는 최근 3년간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진단키트 수출이 늘면서 연 매출이 2019년 360억원에서 지난해 2237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진단키트 특수가 끝날 무렵이던 지난해 탈모 완화 화장품 ‘코스메르나’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코스메르나는 탈모를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small interfering RNA)’으로 잘라내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RNA가 가닥이 아주 짧은 형태일 때는 특정 유전자 기능을 차단하는데, 이를 탈모에 적용한 것이다. 코스메르나가 독일 화장품 평가 업체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면서, 회사 주가가 급등했다. 3년여 전 1500억원대였던 시가 총액은 2조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연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화장품 품목 허가를 반려하면서 현재 주가는 고점에서 반토막 났지만, 해외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남아있다. 

8월 26일 대전 관평동의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창업주인 박한오(60) 회장을 만났다. 문평동 본사에서 2㎞ 떨어진 글로벌센터는 지난해 중견기업 공장을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외벽에 연두·빨강 알록달록 원색을 입히고 아스팔트 주차장을 정원으로 꾸몄다. 박 회장은 “글로벌센터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서, 관평동 일대가 밝아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바이오니아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30세에 바이오니아를 창업한 박 회장은 올해 환갑이 됐다. 박 회장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벤처창업진흥’ 금탑산업 훈장을 받았고, ‘공학계 명예의 전당’인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정됐다. 박 회장을 인터뷰한 건물 로비에는 1992년 창업 당시 사용한 DNA 합성 장비가 전시돼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로비에 전시된 DNA 합성 장비들은 뭔가.
“들어오자마자 있는 건 1992년 창업 때 썼던 장비다. 미국산인데, DNA를 동시에 두 가지 합성할 수 있다. 한국생명과학연구원에 있을 때 이 장비를 쓰다가 고장 나면 다 뜯어서 고쳐서 썼는데, 몇 번 하다 보니 ‘내가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1990년대에도 DNA 합성 수요가 있었나.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2003년 마무리됐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끝난 게 2003년이고, (1990년대) 연구는 그 전부터 시작했다. 앞으로 DNA 합성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으로 보고, DNA 50개 동시 합성 장치를 개발하겠다고 연구원에 계획서를 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반려당했다. 선배들이 ‘DNA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서 뭘 하려고 그래. 쓸 데도 없는데’라고 했다.”

그래서 ‘직접 나가서 만들어 보자’라고 생각한 건가.
“연구실에 있으면서 해외 장비를 많이 썼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게 문제였다. 국내 독점 대리점들이 30~40% 마진을 붙여서 원래보다도 더 비싸게 팔았다. 국내에서 최신 유전자 장비를 사려면 현지 가격의 두 배였다. 이런 상황에서 똑같은 아이디어라도 미국과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된다고 봤다. 그래서 ‘유전자 장비 정도는 국산화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얼마 만에 개발에 성공했나.
“12번 실패하고 13번째 성공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94개를 합성하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다 건너뛰고 384개를 한꺼번에 합성할 수 있는 장비 개발에 들어갔다.”

어렵진 않았나.
“그 당시엔 벤처 투자라는 것도 없었으니, 초반에는 회사에 흑자를 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여유 자금이 생기면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고, 창업 후 8년 정도 지난 2000년에야 (DNA 대량 합성을) 완성했다. 그 장비로 2001년 건너편(문평동)에 세계 최대 DNA 합성 공장을 세웠다.”

그 당시에도 유전자 연구가 활발했나.
“1984년 KAIST에 입학했는데, 그해 유전공학진흥법이 만들어졌다. 유전공학 관련 연구비 정부 예산 5000만원이 책정됐고, 그중 하나가 DNA 합성 기술 개발이었다.”

바이오니아는 PCR로도 유명하다. 진단키트로 명성을 날린 일화가 있나.
“지난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당시 자동화 진단키트 150대를 한 번에 판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PCR은 전문 인력만 검사가 가능했다. 검체 추출을 자동화해서 생명과학 실험을 해 보지 않은 보건소 공무원들도 진단 검사가 가능한 장비를 만들어냈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서울 보건소와 시립병원에서 진단 장비 입찰 소식이 들렸다. 그때 입찰에 참여한 로슈진단의 장비를 보니 스펙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냉장 기능을 넣은 것인데, 일주일 밤을 새워서 우리 장비에도 냉장 기능을 탑재했다. 

그리고 반값 입찰에 참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서울시를 넘어 완도의 보건소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그 당시에 매출 150억원에 영업이익 100억원을 냈다.”

박 회장은 자신이 개발한 진단 장비 소개를 부탁하자 20여 분을 쉬지 않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진단’에 대해 쏟는 관심이 더 커져야 한다고 봤다. 박 회장은 “DNA 시퀀싱을 하는 미국 기업인 일루미나의 연 매출이 1조원인데, 영업이익률은 80%에 이른다”라고 했다. 박 회장에 따르면, 로슈진단 등 글로벌 진단 기업들은 플랫폼 장비를 갖고, 거기 들어가는 시약을 팔면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1층 로비에 검은색에 굉장히 투박한 장비도 있었다. 그건 뭔가.
“탄저균 등 생물 테러균을 진단할 수 있는 장비다. 한·일 월드컵을 1년 앞두고 9·11 테러가 일어나자, 청와대에서 월드컵 경기 전에 생물 테러를 검출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달라는 요구가 떨어졌다. 연구원들이 공장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먹고 자면서 6개월 만에 개발해 냈다. 탄저균뿐만 아니라 북한이 보유한 12종의 생물 무기도 모두 감지할 수 있다.”

이제 코스메르나 얘기를 듣고 싶다. SiRNA를 20여 년 전부터 연구한 계기가 있나.
“1978년에 RNA와 관련한 논문을 본 게 계기가 됐다.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메신저 RNA(mRNA)를 통해 리포솜에 전달된다. 우리 몸속 단백질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합성 DNA를 넣어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기전을 설명하는 세계 최초의 mRNA 논문이었다. 세계 10대 RNA 회사로 꼽히는 아이오니스의 창업주가 이 논문을 썼다.”

SiRNA에 부작용은 없나.
“약물에서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을 부작용이라고 한다.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면 모든 시스템을 다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인간 세포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이해를 못 했기 때문에 통제가 안 됐다. 그런데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이제 모든 유전자 코드가 분석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만 하면 된다.”

인간의 몸이 기계가 아니지 않나.
“가정해 보자는 거다. 인체가 기계라면 몸에 고장 난 부분만 족집게처럼 찍어서 고치면 된다. 기존에 있던 소분자는 고장 난 부분을 네 개 정도 인식한다면, SiRNA는 15개 정도 인식한다. 인식 능력이 훨씬 많으니까 원하는 부분만 공략할 수 있게 되고, 독성도 훨씬 줄어든다.”

그런데 그 기술로 어째서 탈모 치료제를 개발하게 된 건가.
“탈모 쪽으로 미충족 수요가 크다고 판단했다. 지금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받은 약들은 부작용이 많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독성을 줄인 족집게 같은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식약처가 화장품 품목 허가를 반려했다. 
“화장품으로 먼저 출시한 뒤 효과가 더 높은 의약품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 식약처는 ‘세계 최초’는 시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만년 2등밖에 하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회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 회사들이지 않나. 남들 따라 해서 1등 하는 기업은 없다. 1등 기업이 나오려면 규제 당국도 바뀌어야 한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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