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캘빈클라인, 푸마,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속옷, 운동복 등을 국내에 판매하는 코웰패션이 국내 4위 택배사업자인 로젠택배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패션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번 인수로 코웰패션 모회사인 대명화학은 ‘디자인→제조→온·오프라인 판매→배송’까지 유통 전 과정을 좌우할 수 있는 독자적인 패션 생태계를 갖춘 기업으로 거듭난다.

‘은둔의 패션 재벌’ ‘인수합병(M&A)의 귀재’로 알려진 권오일 대명화학 회장과 그의 독특한 사업 확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회계사 출신으로 패션과는 큰 연이 없었던 그는 투자 가치만을 따져 인수합병을 거듭한 결과 코웰패션 인수 6년 만에 대명화학을 패션 한 우물만 판 전문기업 못지않은 인프라를 갖춘 회사로 만들었다.


깜짝 후보 코웰패션, 로젠택배 전격 인수

코웰패션은 자회사인 투자목적회사(SPC) 씨에프인베스트먼트가 사모펀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베어링PE)로부터 로젠택배 지분 100%를 3400억원에 취득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10월 8일 잔금을 치르면 계약이 마무리된다. 코웰패션은 “지배회사의 온라인 경쟁력 강화 및 신규 사업 진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코웰패션은 베어링PE가 지난 2013년 인수한 로젠택배 매각을 2017년부터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 유통업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던 권오일 회장의 눈에 로젠택배가 들어온 것은 올해였다. 코웰패션 측은 다른 후보에 비해 자금 조달 능력, 자사 사업과 시너지 계획 등을 충실히 제출해 매각 측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코웰패션의 작년 매출은 4264억원으로 로젠택배(5128억원)보다 적다. 하지만 그외 재무 지표는 코웰패션이 월등히 좋다. 영업이익은 코웰패션이 800억원으로 로젠택배(292억원)의 2.5배, 당기순이익은 607억원으로 3배 이상 많다. 현금성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은 코웰패션이 622억원으로 로젠택배보다 200억원가량 많은 반면 부채총계는 831억원으로 300억원 적다.

로젠택배 인수로 코웰패션은 홈쇼핑에 치중돼 있는 판매 채널을 온라인, 모바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회사는 관계사로 모다아울렛, 온라인몰 패션플러스를 두고 있지만 작년 기준 수익 81%가 홈쇼핑에서 나온다. 로젠택배의 전국 물류거점과 18개 모다아울렛 매장을 활용하면 중소기업, 이커머스 입점 업체 대상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3자 물류(3PL) 신사업 진출이 가능하다. 로젠택배는 대기업 계열인 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에 비해 중소기업과 이커머스 기업 물량이 많다. 신지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오프라인 채널 비중이 거의 없고 라이선스 계약 수가 늘어날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코웰패션의 독특한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중소기업과 이커머스 물류에 특화된 로젠택배와의 시너지 효과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명화학, M&A로 패션·전자 기업 보유

이번 딜을 이끈 권 회장은 지분 90.49%를 보유한 대명화학을 통해 회사 양대 축인 코웰패션(지분율 51%)과 모다이노칩(75%)을 지배하고 있다. 작년 기준 대명화학 연결 매출은 전년 대비 15.8% 증가한 1조3300억원이다. 코웰패션이 32%, 모다이노칩이 31%, 나머지는 기타 계열사이자 전자기기용 인쇄회로기판(PCB)를 만드는 디에이피와 화학 계열사가 냈다.

대명화학은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사업 분야는 크게 패션과 전자로 나뉜다. 코웰패션은 의류와 잡화, 화장품 제조 및 판매 등 패션 사업에 치중하고 모다이노칩은 전자 사업과 유통 사업을 함께한다. 모다이노칩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전장, 스마트TV, 노트북에 들어가는 세라믹 수동부품을 납품하는 전자 사업과 오프라인 아웃렛 사업과 온라인 유통(패션플러스), 부동산 투자·개발을 담당한다. 의류 브랜드 닉스(NIX), 겟유즈드를 보유한 케이브랜즈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계열사만 30개다. 얼핏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패션과 전자가 대명화학이라는 한 울타리에 놓인 건 전적으로 권 회장의 투자 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성장 가능성이 큰 작은 회사에 일찍이 투자하거나, 현재 사정은 어렵지만 사업 재편을 통해 승부수를 던져볼 수 있는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업종을 고수했다기보다는 가치 대비 저렴한 매물을 골라 투자하고 기존에 보유한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패션과 전자에 집중하게 됐다.

최근에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매출 비중이 높아, 자체 브랜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계열사를 통해 올해 10~30대 인기 브랜드인 로켓펀치, 어몽, 큐리티를 보유한 스페이스스테이션, 콤스튜디오, 마뗑킴, 분더캄머, 히든포레스트마켓 등 7개 회사 17개 브랜드에 투자했다. 문어발식 투자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정작 투자를 받았거나 계열사로 편입된 브랜드 관계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한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에도 불구하고 코웰패션과 대명화학 실적이 안정적으로 개선돼 왔고 권 회장이 한 번 인수한 기업의 경우 사업 전반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크게 터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웰패션의 매출은 2015년 1615억원에서 2017년 3094억원, 작년 4264억원으로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015년 흑자 전환한 이후 작년 800억원을 기록했다.


얼굴 없는 큰손 권오일 회장은 누구

권 회장은 1962년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뒤 회계사로 일하다 크고 작은 기업 투자로 돈을 벌어 2000년 설립된 창업투자회사(KIG홀딩스, 지금의 대명화학)를 인수했다.

2006년 삼성, LG 등에 전자기기용 콘덴서(전자회로에서 전하를 모으는 장치)를 공급하는 필코전자의 최대주주에 오른 데 이어 지분율을 꾸준히 늘렸다. 2008년 패션 브랜드 겟유즈드코리아, 케이브랜즈, 2009년 모다이노칩, 2010년 모다(모다아울렛)를 인수했고 투자사였던 코웰패션을 2015년 필코전자와 합병시켜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패션 업계에선 ‘직원들조차 얼굴을 모르는 베일에 싸인 회장님’으로 유명하다. 언론을 통한 직간접적인 노출을 극히 꺼린다. 회사에서도 그의 사진을 제공하지 않고 서울대, 삼일회계법인, 몸담았던 기업을 통해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현승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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