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루 일조 시간이 5시간도 채 안 되는 아이슬란드에서는 수면 무호흡증이나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집에서 원격진료를 받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곳의 수면진단 기기 업체 녹스메디컬(Nox medical)은 환자가 집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라는 점에서 착안, 가정용 원격 수면다원검사 시스템(Hospital to Home PSG System)을 지난 2009년 시장에 내놓았다. 현재는 수면 전문의가 이 시스템을 통해 기록된 데이터를 보고 진료 및 처방에 활용한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는 2017년 처음으로 ‘슬립테크(Sleep-Tech·숙면 기술)관’을 따로 만들었다. 이후 매년 슬립테크관을 통해 전시되는 기술이 잠과 직결되는 침대·베개 등 전통적인 수면 관련 소비재의 혁신에서부터 빛·온도·소리 관점에서 수면 질(sleep quality)을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제품과 스마트워치·IoT(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 접목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2015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수면 부족을 ‘공중보건 감염병(public health epidemic)’이라고 정의 내린 이후, 슬립테크가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져 왔다.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신사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셀프 케어’ 트렌드도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시장을 키우고 있다. 슬리포노믹스란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숙면을 위한 소비’를 뜻한다. 

슬립테크는 슬리포노믹스의 신성장 동력으로 수면 산업의 신사업 창출뿐 아니라 노동 생산성 향상까지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질 낮은 수면이 알츠하이머나 고혈압 같은 질병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 끼치는 손실 규모만 연간 4000억달러(약 573조6000억원)를 웃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진화하는 슬립테크’를 조명한 이유다.


빅테크·스타트업 슬립테크 경쟁 가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 수는 2017년 56만 명에서 2021년 68만 명으로 늘었다. 무호흡증 같은 숙면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불어난다. 

수면 장애 인구가 늘면서 관련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컬리에 따르면 올 1~10월 수면 관련 제품 중 침구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3배 증가했고 특히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을 주는 건강기능식품 판매는 18배 늘었다. 이외에도 숙면 분위기를 조성하는 향초 같은 홈 프레그란스 제품은 2.8배, 에센셜 오일은 9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면제 처방과 가전·가구 중심의 국내 수면 산업은 2021년 3조원 규모로, 10년 전인 2011년(4800억원)보다 5배 이상 성장했다는 게 한국수면산업협회의 추정이다. 이 가운데 매트리스 시장 규모만 1조8000억원으로 수면 산업의 60%에 이른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수면 시장에도 밀려들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슬립테크 업체들이 부각되고 있다. 슬립테크는 크게 현재 수면 상태를 ‘진단’하고 수면 질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수면의 질을 진단하는 기기로는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가 가장 보편적이다. 현재 애플의 애플 워치(시장 점유율 30%)와 삼성전자의 갤럭시 워치(10%)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지난 10월 구글(픽셀 워치)이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구글은 지난해 21억달러(약 3조114억원)를 투자해 웨어러블 업체 핏빗(Fitbit)을 인수한 후 픽셀 워치에 수면 질을 평가해 점수로 매기는 ‘슬립 스코어(Sleep Score)’ 기능 등을 담았다. 구글의 코너 헤네간(Conor Heneghan) 선임연구과학자는 “성별·연령 등 다양한 수면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AI 딥러닝(심층학습)을 탑재해 데이터 정확도가 높다”며 “픽셀 워치에 측정된 데이터를 보고 숙면을 위한 생활 습관인 ‘수면 위생(sleep hygiene)’을 지키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타트업들도 숙면을 돕는 기술로 승부를 거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네덜란드 슬립테크 스타트업 섬녹스(Somnox)는 엄마가 아기를 재우는 방식에서 착안해 수면 보조 로봇을 개발했다. 프랑스·미국 스타트업 드림(Dreem)은 뉴로(신경) 기술을 이용해 수면을 유도하는 헤어밴드 형태의 기기 드림을 개발했다. 핀란드의 오우라 헬스(Oura Heal-th)는 심장 박동 수 등을 측정하는 스마트링 기술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됐다. 명품 업체 구찌가 이 회사와 손을 잡을 만큼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무선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비접촉식 수면검사법을 개발한 스타트업 에이슬립이 아마존 AI 스피커인 알렉사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슬립테크 시장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10억달러(약 15조7740억원)에서 2021년 150억달러(약 21조5100억원)로 불어난 데 이어, 2026년에는 321억달러(약 46조314억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 베를린사무소의 토비아스 실버잔 파트너는 “수면 부족은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하는 만큼 슬립테크 솔루션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잠자는 수면 데이터 깨워야”

하지만 슬립테크는 실제 효과를 임상적으로 입증한 사례가 드물고, 전 세계 수면 데이터를 통일된 표준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컨설팅 업체인 록헬시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의 40%가량이 원하는 숙면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기 사용을 중단했다. 특히 슬립테크 시장에서 각종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많은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에는 진척을 이루고 있지만, 수집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수면 상태 측정에는 센서를 이용해 움직임과 호흡, 심장 박동 수, 코골이 소리, 체온, 뇌파, 근전도 등 다양한 지표가 이용되고 있는데, 전 세계 어디에도 표준화한 해석 방식이 없다. 수집한 수면 데이터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것이다.

이에 AI를 이용한 자동 판독(Automated Sleep Scoring)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미국의 NSRR, 캐나다의 MASS 등 AI 모델 학습을 위한 ‘수면 질 AI 데이터 세트’의 구축 시도가 늘고 있다. 신현우 한국수면기술협회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을 먼저 정비하는 주체가 판도를 흔들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혜윤 국제성모병원 수면의학연구소장
“만성 수면 부족? 주기적으로 ‘수면 부채’ 줄여라”

김혜윤 국제성모병원 수면의학연구소장 사진 국제성모병원
김혜윤 국제성모병원 수면의학연구소장 사진 국제성모병원

“하루 24시간을 넘어 다음 날까지 일을 하면, 과도한 수면 부채(sleep debt)가 쌓인다. 피로는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듯 늘어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단기 상환’이다.”

국제성모병원 수면의학연구소의 김혜윤 교수는 11월 2일 서면 인터뷰에서 “수면 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징이 있다”며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면 다음 날 오후 2시 이전에 낮잠 시간(30분 이내)을 갖는 등 주기적으로 단기 상환하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했다. 수면의학연구소에서는 숙면을 돕는 ‘디자인 유어데이(가칭)’의 베타 버전을 연구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성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8시간이지만, 개인마다 숙면했다고 느끼는 시간은 차이가 있다. 일어날 때 자신 있게 ‘굿모닝’을 외칠 수 있는 때가 적절한 수면 시간이라고 본다. 잠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음 날 양껏 늦잠을 자는 것도 추천하지는 않는다. 매일 24시간의 루틴을 회복하는 것이 숙면을 위한 방법이다.”

숙면을 위해 깨어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낮 시간에 햇볕을 충분히 쬐는 등 우리 몸의 생체 시계 태엽을 매일 감아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대인은 인공 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면과 각성의 루틴이 깨지기 쉽다. 건강하게 깨어 있지 못하면 수면에 문제가 생기는데, 결국 수면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는 것이다. 우리 몸의 생체 시계를 점검하고, 잘 자기 위해 깨어 있는 시간에 적절한 활동을 통해 ‘수면 압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숙면을 위한 팁이 있다면.
“수면의학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잠들기 전 4시간 금식을 유지할 경우 수면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숙면을 위한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나만의 수면 의식’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잠들기 2시간 전에는 족욕을 하고, 1시간 전에는 책을 읽고, 30분 전에는 물을 한 잔 마시는 등 잠 들기 위한 루틴이 그 예다. 무엇보다 에너지 넘치는 활력의 하루를 보내고 낮 동안 충분히 활동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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