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의심!’ 2025년 어느 겨울밤, 극심한 근육통과 오한을 호소한 이루다(가명)씨는 패치 형태의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부착한 후 원격의료 애플리케이션(앱)에 결과를 업로드했다. 그러자 인공지능(AI) 주치의가 나타나 진단을 내리면서 1초 만에 가까운 약국과 배달라이더를 매칭해 약 배송 준비를 마쳤다. 최종 컨펌은 하루 4시간씩 교대 근무하는 수백 명의 인간 의사가 소속된 원격지휘본부에서 확정했다. 이씨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단 10분 만에 약을 구할 수 있었다. 개인 맞춤형 원격의료를 구현할 미래의 ‘AI 주치의’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며 전 세계가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1990년대부터 원격의료가 도입된 반면 국내에서는 2020년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이 이뤄지고 나서야 원격 의료 분야 사업의 물꼬가 터졌다. 국내에서 팬데믹 기간 비대면진료 이용자는 올 3월 말 누계로 443만 명에 달했다. 원격의료 스타트업만 20여 곳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일상회복 정책으로 원격의료 전망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5월 10일 출범했다. 새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의료사각지대 해소 및 상시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 일차 의료 중심의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원격의료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코노미조선’이 기획을 한 이유다.


팬데믹 날개 단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15년 181억달러(약 23조5300억원)에서 2021년 두 배가 넘는 412억달러(약 53조5600억원)로 불어났다. 원격의료의 시작은 의료 불균형 문제 해소에서 비롯된다. 미국 원격의료업체 텔라닥헬스는 저소득층, 소수인종, 교외 지역 등 의료 인프라 소외층에게 ‘의료 대기 시간 10분’을 강조해 지난 2015년 업계 최초로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아마존과 손잡고 AI 비서 ‘알렉사(Alexa)’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에 ‘의사와 상담하고 싶다’고 말하면 곧바로 텔라닥 콜센터(의사)에 연결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까지 70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으며, B2B2C(기업-기업-개인) 방식으로 기업 고객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의료 빈부격차가 심한 중국에서는 이미 25만 명 이상의 의사가 원격의료를 전문으로 활동한다. 알리바바, 징둥(京東) 등 중국의 상위 전자상거래 업체는 물론 핑안(平安)보험 계열사(앱 ‘핑안굿닥터’)부터 배달 음식 주문 앱 메이퇀(美團)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원격의료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빅데이터는 원격의료의 또 다른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화(personalized)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 건강 상태를 예측(predictive)해 나쁜 상황을 예방(preventive)하는 참여 의학(participatory)을 뜻하는 ‘4P’가 원격의료의 핵심인데, 빅데이터가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AI와 머신러닝(ML)의 도움을 받아 분석한다면 질병의 조기 진단과 건강 유지가 가능하다. 현재 원격의료 수준은 전화 및 비디오를 통한 비대면진료, 약 배송, 원격 모니터링 정도지만 미래에는 스마트폰 앱, 게임, 가상현실(VR), 챗봇, AI 등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시장까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페어 테라퓨틱스는 2017년 디지털 치료제로는 세계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노바티스, 산도스, 암젠, 머크, 사노피 등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투자 대상에 디지털 치료제 업체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토종 1호’ 디지털 치료제 승인 경쟁에 뛰어든 라이프시맨틱스, 웰트, 에임메드, 뉴냅스, 하이 등 5개 사가 확증 임상을 진행 중이다. 


삼성·구글·애플·메타까지…웨어러블 시장 ‘대격돌’ 

원격의료 빅데이터가 중요해지면서 데이터 수집 창구인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뜨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심장 부정맥 같은 ‘소리 없는 암살자’의 공격을 미연에 막는 조기진단, 개인 맞춤형 치료 방안 제시, 당뇨 같은 만성 질환 관리를 가능케 하는 채널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9년 애플의 스마트워치가 스위스 모든 시계업계보다 많은 양의 시계를 판 배경엔 헬스케어 기능 강화가 있다. 스마트워치 선두 주자인 애플(점유율 30.1%)과 삼성전자(10.2%)가 올 하반기 내놓을 애플워치8, 갤럭시워치5도 헬스 기능을 크게 강화할 예정이다. 애플워치8은 체온 센서가 탑재되고 여성의 건강과 수면 관리, 약물 관리 기능이 대폭 추가된다. 갤럭시워치5는 혈압, 심전도,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 센서 외에도 체온 측정 기능을 추가한다. 다른 빅테크도 웨어러블 시장에 잇따라 참전하고 있다. 구글은 올가을 안드로이드 기반의 ‘픽셀워치’를 출시한다. 웨어러블 업체 핏빗 인수 이후 독자 개발한 첫 결과물이다. 메타(옛 페이스북)도 라이브 방송 등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스마트워치 시장은 2021년 590억2000만달러(약 76조7260억원)에서 2025년 990억달러(약 128조7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호에서 2020년 2억 대에 달한 전 세계 웨어러블 기기 판매량이 2026년엔 4억 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기기가 7500여 종에 이르는 인간의 신체 및 행동 패턴의 변화를 추적한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선도하는 아마존과 구글은 의료 서비스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마존은 올해부터 미국 전역에 원격의료 서비스 ‘아마존 케어(Amazon Care)’를 확대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를 활용해 가상 진료와 무료 원격의료 상담, 방문 진료를 연계할 예정이다. 구글은 기존 자사 제품 및 서비스를 원격의료에 활용하는 실험을 한다. ‘구글 지도’에서 병원을 예약하고 ‘구글 미트(화상회의 솔루션)’로 원격진료를 받으며 ‘구글 클라우드’의 자연어 처리 기술로 약 정보를 해석하는 식이다. 메타는 작년 10월 사명을 바꾼 지 하루 만에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VR 피트니스 앱 개발사 ‘위드인(Within)’ 인수를 발표했다. 난가쿠 마사오미 일본의과학협회 원격의료위원장은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장려하기 위해 현재 이용률이 저조하더라도 제도화를 추진하고 원격의료가 장려돼야 한다”고 했다. 국내 규제 장벽 탓에 해외에서 원격의료에 도전한 업체들의 귀환 여부도 주목된다. 네이버 라인은 2020년부터 일본에서 ‘라인 닥터’를 통해 영상통화로 비대면진료를 받고 바로 결제할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KT는 베트남에서 연내 원격의료 시범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plus point

美 “국가 주도 게놈 데이터 구축…2026년까지 100만 명”

원격의료의 핵심 재료는 ‘데이터’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5년 1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정밀 의료 추진계획(PMI)을 발표하고, 2억2000만달러(약 26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대규모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0만 명 이상으로 구성된 코호트(사용자 집단)를 구축한 뒤, 여기서 얻은 개인 데이터와 생체자원을 데이터베이스화하겠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명칭은 ‘올 오브 어스 프로그램(All of Us Program)’으로, 모든 사람의 모든 데이터를 통합하겠다는 미국의 야심이 담겼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이를 위해 2018년부터 현재까지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NIH는 3월 17일 클라우드 플랫폼을 활용해 “10만 건의 게놈 데이터를 모두 모았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시도이자 최대 규모다. 백인(58%), 흑인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22%), 히스패닉 및 라틴계(17%), 아시아인을 포함한 소수 인종(3%) 또는 민족 그룹도 포함돼 다양한 인종 집단의 데이터를 얻어 의미가 더욱 크다고 NIH는 밝혔다. 33만 명의 참가자가 등록을 마쳤으며 2026년까지 100만 명으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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