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한양대 전자공학 석사, 노스캐롤라이나대 재료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 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한양대 전자공학 석사, 노스캐롤라이나대 재료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 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2019년 7월 시작된 일본 정부의 소재·부품 대(對)한국 수출 규제는 오히려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경쟁력 강화의 계기가 됐다.”

8월 6일 한양대 첨단 반도체 소재·소자개발연구소에서 만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소부장 분야엔 중소 및 중견 기업이 많기 때문에 정부, 연구기관, 대기업이 핵심 역할을 하는 ‘소부장 산업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세대메모리 개발사업 단장 등을 지낸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소재·부품 전문가다. 현재는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박 교수는 일본 정부의 소재·부품 수출 규제 이후 한국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연구기관과 대학의 기술 이전, 대기업의 기술 평가 및 지도 등의 역할이 커지며 소부장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수출 규제가 소부장 국산화 등 공급처 다변화를 통한 안정적인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소부장 산업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달라
“일본에 의존했던 소부장의 국산화 등 공급처 다변화의 계기가 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 전 한국의 소부장 산업은 약 10년간 정체돼 있었다. 국산화율을 보면 반도체 소재는 38%, 반도체 장비는 18%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소부장 기업들의 매출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시장에 나온 후 반도체 소재, 장비 산업의 매출은 스마트폰 판매 증가와 함께 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새로운 소재, 부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국가 간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우리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

한국의 소부장 산업이 정체됐던 이유는
“한국 경제는 단기간 압축 성장을 하며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 특히 시장은 크지만 기술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범용 제품 위주로 성장했고, 장기간 고비용의 사업화 가능성이 불투명한 소부장의 경우 이미 검증된 일본 등 해외로부터 수입해 생산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는 대기업의 일본 소부장 수입 의존도를 높였고, 한국 소부장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소부장 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소부장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소부장 기업은 중소 및 중견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이 현 상황에서 혼자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연구기관, 수요 기업인 대기업이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소부장 기업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성능 등을 시험·평가하는 테스트 베드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를 포함한 소부장 핵심 품목을 선정해 국산화에 나서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대학 등도 기술 이전 등을 통해 국내 소부장 기업의 연구개발을 돕고 있다.” 

대기업이 사주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그렇다. 정부와 연구기관이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제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수요 기업인 대기업이 그 제품을 가져다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대기업도 일본 수출 규제라는 리스크로 공급처 다변화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국내 소부장 기업의 기술 평가 및 지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어떤 소재와 부품이 필요하고 품질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을 컨설팅하는 것이다. 

소부장 생태계를 구축하면 대기업도 효과를 본다.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필요한 소재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보다 유통비를 줄일 수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최고 품질의 소재, 부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조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기는 힘들다
“국산화의 개념은 지역 다변화로 바라봐야 한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소부장을 한국 기업이 만드는 국산화 외에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 및 지역에서 수입하는 것도 지역 다변화다. 해외 기업의 연구개발센터 또는 공장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연구개발센터를 짓기로 한 것이나 미국 화학 소재 기업 듀폰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생산공장을 국내에 짓기로 한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더 많은 능력 있는 해외 기업의 연구개발센터, 생산공장을 국내에 유치해야 한다.” 

소부장 국산화에도 우선순위가 있을 텐데
“소부장 국산화 품목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도 펼쳐야 한다. 반도체 장비는 기술력에 따라 하이엔드, 미들엔드, 로엔드 3가지로 나뉜다. 한국은 미들엔드와 로엔드 장비를 주로 만든다. 하이엔드는 시장을 장악하는 네덜란드 ASML 등과 경쟁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들엔드 포지션을 더 넓히는 게 효과적이다. 로엔드는 이미 국산화가 됐다. 소재는 하이엔드와 로엔드로 나뉘는데, 하이엔드 제품에 도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제조하는 소재 대부분이 로엔드 제품이다.”

소부장 육성에 규제가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술 개발을 해도 규제 때문에 생산공장을 짓는 데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사실이다. 해외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연구개발센터 또는 생산공장을 빠르게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부장 공장 설립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간소화해야 한다. 환경부, 노동부, 해양부 등의 장관이 참여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쟁력위원회를 만들어, 각 부처에 엉켜있는 규제를 한 번에 풀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인력 양성은 어려운 문제다. 반도체를 보면 반도체 전공자는 고급 인력인데 소부장 분야 중소 및 중견 기업 직원의 임금이 대기업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임금으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소부장 업체에 근무하는 연구개발 인력에게 소득세를 감면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또한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풀고 반도체 학과 정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소부장 기업을 지원해도 연구개발을 할 인력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대조정을 겪고 있는데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만을 바라보면 안 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서로 유리한 쪽으로 반도체 등 IT 핵심 부품의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IT 밸류체인은 시간이 갈수록 균열이 심해질 것이다. 세계 각국에 있는 기업들이 분업해 부품을 조달, 가공, 생산하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미래에도 기대하다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에 반도체 등 연구개발센터 및 생산시설을 두는 지역화에 더욱 초점을 맞출 것이고, 한국도 준비해야 한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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