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는 디자인, 설계 등 차량 개발 주요 과정에 VR·AR·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와 기아는 디자인, 설계 등 차량 개발 주요 과정에 VR·AR·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4월 23일 서울 코엑스 월드IT쇼 SK텔레콤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부스. 월드IT쇼 폐막을 앞둔 이날 오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체험관에는 각각 열댓 명이 줄을 서는 광경이 이어졌다. VR 기기를 쓰고 타는 놀이기구인 메타버스 시네마를 탑승하려는 대기자는 120명에 달했다.

메타버스를 업무에 활용하려는 이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직원 10명과 함께 메타버스 스타트업 ‘더블미’를 찾은 부산광역시 스마트시티추진과 김현숙(56) 융합신산업 팀장은 “메타버스를 활용해 서울에 있는 초등학생들을 부산과학관에 초대하고자 한다"며 "직원들의 회의에도 아바타를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비대면 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대용량 정보를 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는 5G(5세대 이동통신)통신망이 확충되면서, 메타버스 붐이 일고 있다. 미국의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지난 3월 메타버스 기업 중 처음으로 뉴욕증시에 직상장했고, 3D 아바타를 제작하는 스튜디오인 네이버 제페토는 가입자 2억 명을 넘겼다. 가상세계에서 입학식, 졸업식,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하거나 아이돌 뮤직비디오 공개,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일도 흔하다.

메타버스란 초월,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연동된 가상의 세계라는 뜻이다. 가상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구현된 개인이 서로 소통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고, 놀이·업무를 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양방향으로 연동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메타버스 어원을 찾자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작가 닐 스테픈슨은 1992년작 SF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주인공이 고글과 이어폰을 활용해 3D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등장한 ‘싸이월드’의 미니미, 3D 아바타로 활동하는 ‘세컨드라이프’, 현실세계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포켓몬이 등장하는 ‘포켓몬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등도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최근 메타버스 열풍 뒤에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와 코로나19가 있다. 디지털에 익숙한 MZ 세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메타버스를 교류의 장으로 택하기 시작했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1월 25일 한국정보통신협회 신년사에서 “코로나19로 촉발된 국가 간 이동과 여행 중단, 사교가 제한된 일상이 메타버스로 진화하는 속도를 10년은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AR·VR·확장현실(XR)·5G 등 신기술은 메타버스 시장 성장세를 뒷받침한다. 컨설팅 기업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따르면, AR·VR 시장은 2019년 464억달러(약 52조원)에서 2025년 4764억달러(약 540조원), 2030년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안소영 기자 아바타(왼쪽에서 두 번째)가 제페토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 네이버제트
안소영 기자 아바타(왼쪽에서 두 번째)가 제페토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 네이버제트

미래의 땅에서 기회 찾는 기업

메타버스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전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1위 업체인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메타버스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서버, 저장 장치,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업이다. 현실세계로 보면 도로·전기·수도·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을 만드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등은 메타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MS의 홀로렌즈와 페이스북의 오큘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9월 AR과 VR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선언하고, 오큘러스 퀘스트2를 공개했다. 친구와 게임하거나 TV를 함께 시청하는 것을 넘어 가상세계에 구축된 사무실 ‘인피니트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올 2월부터 오큘러스 퀘스트2를 국내 판매하고 있는 SK텔레콤은 VR 콘텐츠를 제공하는 ‘점프VR’ 플랫폼을 이 기기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MZ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메타버스는 게임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가상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성 요소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샌드박스 게임’이 대표적이다. 사용자는 마인크래프트에서 여러 블록을 활용해 건축물·공간·물건 등을 만들 수 있고, 로블록스에서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즐길 수 있다. 제페토에서는 나와 닮은 아바타를 만든 뒤 다양한 가상 장소에서 다른 사용자를 만나 소통할 수 있다.

가상세계에 있는 부동산을 차지하거나 사고 파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인그레스, 어스2, 디센트럴랜드, 더 샌드박스, 크립토복셀, 솜니옴 스페이스 등 다양하다. 가격이 오르고 화폐로 교환할 수도 있어 투자 자산으로도 기능한다. 가상세계에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 등장이 이를 보여준다.

메타버스는 새 비즈니스 모델도 창출하고 있다. 도면 하나만 있으면 3D 집을 만들고 가구를 배치할 수 있는 스타트업 ‘어반베이스’, VR로 아파트 내부를 볼 수 있는 ‘큐픽스’와 사용자의 치매를 진단해주는 ‘룩시드랩스’, 재활 훈련 프로그램 ‘테크빌리지’ 등이 등장했다.

국가 핵심 산업에서도 메타버스와 XR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세계에서 북미, 인도, 유럽 직원들과 만나 신차 품평회를 한다. 에어버스와 보잉은 AR을 활용해 항공기 정보, 매뉴얼을 빠르게 확인하며 작업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전문 기업 엔디비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4월 13일 GPU기술콘퍼런스에서 AI가 통합된 메타버스 솔루션 ‘옴니버스’를 소개하며 “가상세계를 공유하도록 고안했다”며 “‘스노우 크래쉬’의 메타버스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BMW가 옴니버스를 통해 팀을 연결하고 가상으로 미래 공장을 설계·계획 운영하고 있다”며 “제조업의 미래”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가상융합경제 발전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화학·자동차·조선해양 등 국내 3개 제조업 현장과 똑같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사람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을 만들고, 전 공정에 XR을 연동하여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상융합 플랫폼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가상공간이 놀이터에서 산업 현장까지 끌어안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책 ‘메타버스’의 저자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메타버스가 낙원은 아니다”며 “현실세계처럼 손괴, 절도, 횡령, 폭력 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처벌은 계정 사용 정지 등에 그쳐 막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우운택 KAIST 증강현실연구센터 센터장은 “VR·AR을 디지털 트윈과 연동하여 현실 공간과 연결할 경우 폭발력이 상당히 크지만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긍정·부정적인 면 모두 존재할 것으로 본다”며 “개인 정보, 보안 문제가 발생하거나 법·제도가 확립되지 않아 새로운 시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류의 신대륙 메타버스, 이곳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이코노미조선’과 함께 메타버스 세계로 떠나보자.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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