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인이 집에서 ‘야핏 사이클’을 타며 경주를 하고 있다. 사진 야나두
한 직장인이 집에서 ‘야핏 사이클’을 타며 경주를 하고 있다. 사진 야나두

직장인 이도경(36)씨는 비대면의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실내 운동기구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검색 끝에 이씨가 산 건 카카오의 에듀테크 계열사 ‘야나두’에서 출시한 ‘야핏 사이클’. 그는 “일반 실내 자전거를 사면 며칠 타다가 방치할 거 같아 재밌는 요소가 가미된 제품으로 골랐다”며 “꾸준히 하면 돈까지 주니 매일 운동하게 된다”라고 했다.

야핏 사이클은 게임적 요소와 동영상 강의,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 적립 시스템이 결합된 운동 서비스다. 이용자는 사이클 전면부에 부착된 전용 태블릿 화면을 보면서 페달을 밟는다. 가상 캐릭터를 움직여 친구들과 사이클 경주를 하거나 주요 도시 랜드마크를 달리면서 ‘금괴 수집’ ‘미션맨 따라잡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야나두는 사이클 앱(응용프로그램) 출석 횟수, 라이딩 거리, 미션 성공률 등을 파악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를 월 최대 2만 점까지 적립해준다. 이 마일리지는 앱 내 스토어에서 스타벅스·백화점 상품권이나 영화 관람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 김민철 야나두 공동대표는 “영어 학습으로 검증된 야나두의 동기부여 시스템을 적용한 ‘확실한 보상’이 야핏 사이클의 핵심”이라며 “회원 10명 중 7명이 지속적인 운동에 성공 중”이라고 했다.

야핏 사이클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 기술을 헬스케어 서비스에 녹인 대표적 사례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전공 교수는 4월 출간한 책 ‘게임 인류’에서 “미션-피드백-리워드의 삼각 구조는 거의 모든 게임의 기초”라고 설명했다. 게임 유저는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모으고, 달콤한 보상을 받는다. 캐릭터 레벨과 순위 상승을 맛본 이용자는 더 많은 피드백과 보상을 찾아 새로운 미션에 뛰어든다.

헬스케어 관련 제품·서비스를 내놓는 기업이 게임의 설계 방정식을 참고한 경우는 이뿐이 아니다. 도전-경쟁-성취-보상으로 이어지는 게이미피케이션의 메커니즘은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건강 관리의 특성과 궁합이 잘 맞는다.

‘나이키 런 클럽’은 달린 시간과 거리, 코스, 심박수 등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앱이다. 이용자는 러너들이 모인 나이키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각종 챌린지에 참여하거나 자신만의 챌린지를 만들어 친구와 함께 달릴 수 있다. 최단 시간 주파, 최장 거리 돌파 등의 개인 기록을 경신하면 배지와 트로피를 받을 수도 있다. 나이키는 리더보드를 보여주면서 경쟁을 유도한다.

카카오게임즈는 게이미피케이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내부 조직을 물적 분할해 2019년 3월 자회사 ‘라이프엠엠오’로 독립시키기도 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2018년 11월 자전거 라이딩에 추격·보상 등의 게임적 요소가 포함된 위치 기반 게임(프로젝트 R)을 기획하라고 지시한 것이 라이프엠엠오의 시작이었다. ‘자전거 마니아’로 유명한 남궁 대표가 이 프로젝트에 강한 열의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12월 3일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디지털 치매 치료제 ‘슈퍼브레인’을 활용한 치매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2019년 12월 3일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디지털 치매 치료제 ‘슈퍼브레인’을 활용한 치매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디지털 치료제 성장 뒤엔 게임화 기술

헬스케어 시장에서 게임화의 역할은 자전거·달리기 같은 운동에 국한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치매, 강박 장애(OCD) 등 질병 치료에도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이 투입된다. 각종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소프트웨어인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다.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시험 결과를 근거로 하고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에서 흔히 쓰는 건강 기록 앱과는 다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작년 6월 승인한 ‘엔데버RX’는 10세 전후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다. 아동 환자는 모바일 게임 방식의 이 앱에서 캐릭터를 움직여 장애물을 피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주의력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설립된 헬스케어 스타트업 로완이 국내 치매 전문가들과 함께 개발한 디지털 치매 치료제 ‘슈퍼브레인’이 병원과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널리 쓰인다. 환자들은 태블릿 PC 화면을 터치해 바구니에 과일을 담거나 산수 문제를 푼다. 조금 전 자신이 보고 지나친 카드가 무엇이었는지 맞추기도 한다. 심심풀이 게임을 즐기는 듯한 이 장면이 디지털 치료제를 복용하는 과정이다. 최성혜 인하대 신경과 교수는 “슈퍼브레인으로 치매 위험 인자를 관리하고 뇌 신경을 보호·강화하면 치매 발병을 35%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 빅씽크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디지털 OCD 치료제 ‘오씨프리’가 FDA 임상 절차에 착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호흡질환자 재활, 암 예후 관리 등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해 국내에서 허가임상을 진행 중인 라이프시맨틱스의 송승재 회장은 “다른 질환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면서 게임 등 사용 지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최종호 키튼플래닛 대표
“AR 캐릭터 따라 양치하면 충치 없어요”

최종호 키튼플래닛 대표 카이스트(KAIST) 응용수학과 학·석사, 서울대 전기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책임연구원 / 사진 키튼플래닛
최종호
키튼플래닛 대표 카이스트(KAIST) 응용수학과 학·석사, 서울대 전기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책임연구원 / 사진 키튼플래닛

키튼플래닛은 2017년 말 어린이용 스마트 전동 칫솔과 양치 교육 앱을 연동한 ‘브러쉬 몬스터’를 선보여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최종호 키튼플래닛 대표는 삼성전자 C랩에서 증강현실(AR)과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이 적용된 이 제품을 만들어 독립했다.


제품 작동 방식을 소개해달라.
“어린이는 스마트폰 화면 속 자신을 보면서 양치질을 준비한다. 그러면 AR 기반의 가상 칫솔이 나타나 치약을 짜는 행위부터 양치 후 컵을 씻는 동작까지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양치질이 끝난 후에는 교육 이수증과 스티커가 발부된다.”

양치질을 놀이로 만들었다.
“많은 어린이가 양치질을 싫어하는 건 그 행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안 됐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의 세계관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캐릭터가 동영상에 등장해 양치 교육을 하게 했는데,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반면 자신의 얼굴 위에 캐릭터가 나타나고 움직이자 적극적으로 변했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사용자를 100만 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그리고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을 위한 서비스도 추가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 치실을 비롯한 각종 구강용품 사용법을 AR과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을 통해 안내하는 식으로 말이다.”

증강현실(AR)과 게임화 기술을 어린이 양치 교육에 적용한 ‘브러쉬 몬스터’. 사진 키튼플래닛
증강현실(AR)과 게임화 기술을 어린이 양치 교육에 적용한 ‘브러쉬 몬스터’. 사진 키튼플래닛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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