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는 2019년 아마존에 자사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직접 D2C 앱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나이키
나이키는 2019년 아마존에 자사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직접 D2C 앱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나이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아마존에서 2019년 ‘나이키’가 사라졌다. 탈(脫)아마존을 선언한 나이키는 독자적인 D2C(Direct To Consumer·소비자 직거래)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올린 매출이 2020년 전년 대비 30% 증가하며 신유통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강타한 지난해 나이키 전체 매출도 전년 대비 10% 늘어나며 선전했다.

아마존이 올 1월 D2C 온라인 쇼핑몰 구축 솔루션 기업 ‘셀즈(Selz)’를 인수한 건 나이키 같은 탈아마존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다. 셀즈는 아마존의 맞수라 평가받는 쇼피파이와 유사한 서비스 모델을 갖고 있다. 기업과 소상공인이 아마존 등 오픈마켓에 입점하지 않아도 직접 소비자에게 물건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자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해준다.

최근 나이키, 루이뷔통, 파타고니아 등 충성 고객층을 확보한 주요 기업의 아마존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포브스’ 등 외신은 매년 매출이 두 배 이상 늘고 있는 쇼피파이 등 D2C 솔루션 업체의 성장과 더불어 이러한 주요 기업의 ‘엑소더스’ 현상을 ‘아마존 멜트다운(meltdown)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의 영역을 치고 들어온 거대 플랫폼에 반기를 드는 현상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플랫폼 업계에서 나타나는 흐름이다. 플랫폼에 의존했던 전통 제조 업체, 스타트업 등은 물론 플랫폼 탓에 위축됐던 기존 대형 유통 업체들이 그 흐름에 뛰어들고 있다. 2019년에는 국내에서도 생활용품 부문의 지배적인 사업자인 LG생활건강이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쿠팡이 최저가 납품을 강요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후 LG생활건강은 쿠팡에 자사 제품을 직매입으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 쿠팡의 판매 실질수수료는 2019년 18.3%로 전년(8.2%) 대비 약 10%포인트 상승했다. D2C 매장을 만들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배경에 플랫폼 기업들의 ‘공격 경영’이 있는 것이다.

대형 유통 업체들의 반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쿠팡 등 외부 플랫폼이 아닌 자사 플랫폼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전국에 걸친 오프라인 유통망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국내 간판 유통 대기업인 롯데그룹은 2년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지난해 롯데백화점, 롯데하이마트 등 자사 유통 계열사 7개를 통합한 자체 플랫폼 ‘롯데온’을 출범시켰다. 유통 공룡인 신세계그룹 역시 2018년 이마트몰과 신세계몰을 합쳐 출범한 온라인 플랫폼 SSG닷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쿠팡 등 기존 플랫폼의 약점인 신선식품을 위주로 직매입하며 자체 플랫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있다.

D2C 쇼핑몰 솔루션을 제공하는 카페24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이 기업을 통해 신규 개설된 D2C 쇼핑몰은 총 13만여 개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D2C 매장 운영을 시작하는 기업은 스타트업뿐 아니라 전통 제조 업체와 백화점, CJ올리브영 같은 기존 대형 유통 업체까지 다양하다. 카페24 관계자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 플랫폼과 별도로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고급 브랜드의 수요도 많고, 또한 플랫폼 내 여러 정책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여러 기업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해온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거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은 자사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이유는 외부 유통 채널에선 받아볼 수 없는 충성 고객을 포함한 여러 소비자의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활기를 띠면서 데이터 확보가 중시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0년 11월 자사몰 CJ더마켓의 유료 회원제 더프라임을 개편하며 D2C 전략을 강화했다. 고객의 연령, 성별 등에 따른 제품 선호도 관련 데이터 취합에 집중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대형 플랫폼에 식품을 납품하다 보니 판매 실적을 제외하곤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전혀 얻을 수가 없었기에 D2C 매장을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대규모 유통 플랫폼 대비 높은 가격을 보완하기 위해 자체 할인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사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D2C 플랫폼을 강화하기도 한다.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이 유리한 오픈마켓 플랫폼에서 벗어나 사용법 등을 더 자유롭게 소개할 수 있는 자사몰에서 소비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책임지며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쇼피파이를 활용해 D2C 해외 쇼핑몰을 운영 중인 육아용품 업체 코니바이에린의 조아라 이사는 “초기 스타트업 단계인 만큼 고객과의 접점을 극대화하고 유통 및 고객 관리 등 모든 단계를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자사가 직접 관리하기 위해 D2C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35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기업은 아마존 등 외부 플랫폼과 자사 D2C몰의 판매 비중이 3 대 7이다.


캐스퍼는 가장 인기 있는 매트리스를 D2C 방식으로 판매해 주목받았다. 사진 캐스퍼
캐스퍼는 가장 인기 있는 매트리스를 D2C 방식으로 판매해 주목받았다. 사진 캐스퍼

D2C 플랫폼, 간편함과 개성에 초점 맞춰야

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에 따른 낮은 가격과 다양성으로 승부하는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차별화된 독자 플랫폼을 운영하려면 소비자 경험을 최대한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대형 플랫폼만큼이나 많은 양의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의 D2C 마켓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대형 플랫폼처럼 다양한 제품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단 한 가지의 개성 있는 특별한 제품 혹은 브랜드를 원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츠는 현재 세계 유통 시장에서 D2C 마켓이 ‘롱테일 법칙’의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와이어드’ 잡지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2006년 제시한 이 개념은 상위 20%의 한정된 수의 제품만을 매장에 진열할 수 있었던 오프라인 유통 업체와 달리 아마존 등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는 나머지 80%의 꼬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을 온라인에서 제공하면서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즉 아마존은 오프라인에서 구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반면 D2C 시장은 마치 오프라인 시장처럼 소수 20%의 제품만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대형 플랫폼에서 검색에 에너지를 쏟고, 끝없는 제품 비교를 하는 수고를 덜고, 바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간편성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게 D2C 시장 성공의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업체는 물류 유통 및 재고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창업 5년 만에 약 3억5800만달러(약 3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매트리스 업체 캐스퍼의 경우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매트리스 종류인 폼과 라텍스를 조합한 한 가지 종류의 매트리스만을 D2C로 판매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월마트가 2017년 3억1000만달러(약 3400억원)에 인수한 D2C 남성의류 전문 업체 보노보스 역시 미국 남성용 펑퍼짐한 디자인과 유럽 남성용 타이트한 디자인의 중간 형태인 바지 한 가지만 판매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바지 스타일에만 집중해 쇼핑에 부담을 느끼는 남성 소비자를 파고들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D2C 플랫폼은 낮은 가격과 무한하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기존 거대 플랫폼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자신만의 제품과 강력한 개성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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