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70년대 국내 산아 제한 캠페인 포스터 문구다. 당시 이런 문구가 등장한 배경은 지나친 다산(多産)에 따른 빈곤 문제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후(戰後) 처음으로 1969년 한 해 출생자가 100만 명을 돌파한 100만5000명을 기록했다. 이어 3년 연속 연간 출생자는 10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8~76년생)’의 일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2019년 연간 출생자는 30만2676명으로 뚝 떨어졌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만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고 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은 한국의 거대한 고민거리가 됐다.

인구절벽이 유독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과 스위스·스웨덴 등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앞서 인구절벽을 겪었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사회 제도가 다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코노미조선’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의 관련 연구 자료를 중심으로 앞서 인구절벽 위기를 넘겼거나 현재 극복하고 있는 4개국의 사례를 살펴봤다.

이들 국가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노동력을 늘림과 동시에 저출산·고령화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 기회를 모색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패전국(敗戰國) 독일은 196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일궜다. 그 과정에서 일손이 모자라자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데려왔다. 영화 ‘국제시장(2014)’에서 보듯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이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가 일했다. 이처럼 독일은 해외 인력과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으로 인구절벽을 극복했다. 일례로 2015년 시리아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밀려갔을 때 독일은 100만 명 이상을 받아들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난민은 그를 ‘무터(mutter·독일어로 어머니란 뜻)’라고 부른다. 독일은 이민 정책 외에도 전문 직업 인력 확보, 건강한 노화, 삶의 질 향상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했다. 독일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정책 과제명을 ‘고령자의 새로운 미래’로 정했다.

독일 정부는 특히 소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령층을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기회 시장으로 인식해 고령화 맞춤 제품 및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에 주력했다. 일례로 2014년 10월 뒤셀도르프에서 처음 개최된 ‘실버 마케팅’은 실버 시장 확대를 위해 매년 열리는 국제 박람회다. 하노버에서 매년 열리는 실버용품 및 의료 서비스 박람회인 ‘뉴렌버그’도 유명하다.

독일 의료기기협회에 따르면 자가 진단기기(혈압측정기·혈당계 등)와 원거리 커뮤니케이션 의료 솔루션을 의미하는 텔레메디신(Telemedicine) 시장이 특히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e-헬스케어(인터넷 건강 관리) 시스템 시장의 경우, 아그파 게바트(Agfa Gevaert) 그룹 소속인 아그파 헬스케어와 넥서스 시스템이 7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 역시 e-헬스케어 사업에 본격 진출, 태블릿PC를 통한 디지털 환자 기록 관리, 모바일 심박수 모니터링 등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스웨덴은 무려 80여 년 전부터 인구절벽을 대비한 국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 이후 인구 감소가 심각해지자 1930년대 스웨덴에는 ‘스웨덴의 미래는 노인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경고가 떠돌았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1937년 가난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수당을 도입했고, 1948년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16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은 모두 매달 1050크로나(약 13만8000원)의 아동수당을 받는다.

아울러 스웨덴은 1999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15~49세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5명으로 낮아지자 남녀 모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남성의 육아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육아휴직 아빠 할당제’가 대표적이다. 총 480일의 부부 육아휴직을 주고 이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는데, 반드시 남성만 쓸 수 있는 기간을 30일에서 90일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이 90일은 아빠가 안 쓰면 엄마도 못 쓰도록 해 아빠의 육아휴직 참여율을 25%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육아휴직 중에도 급여의 77.6%를 지급했다. 이를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 1.9명 안팎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은 12세 이하 자녀가 아프면, 연간 60일 한도로 간병휴가(평균 소득의 77% 간병급여 수령)도 지원한다.


스위스는 지난해 말 총인구수가 약 871만 명인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유럽 국가다. 2000년대 초반 정체됐던 인구가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최근 늘고 있다. 스위스의 생산가능인구 중 약 27%는 외국 출신(2015년 기준)이다. 가장 주목되는 건 연구 및 혁신 정책이다. 스위스는 인구학적 변화와 그 영향에 관한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 연구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만성질환 환자 치료 및 상태 개선을 위한 연구도 포함한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라 나이 든 노동자의 잠재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연구의 방점을 두고 있다.

성별 간 기회균등 원칙을 지키고 사회보장제도와 노동 시장의 문제점을 고찰하는 프로그램도 시행한다.

스마트 헬스케어도 키우고 있다. 스위스 정부의 ‘AAL(The Active and Assisted Living)’ 프로그램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급격히 증가하는 노인 삶의 질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솔루션 대상은 건강한 노인에서부터 다중 질환을 앓는 노인까지 전 범위를 포함한다. 특히 관리가 필요한 노인들이 자가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 혹은 간병인의 부담을 덜어줘 수혜자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자에게까지 폭넓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노인들을 위한 태블릿PC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물건을 찾거나 약 복용 시간 알림 등의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제공해 보호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실내 모니터링, 보조 내비게이터, 인공지능(AI) 휠체어 제어 등을 통해 노인들의 이동과 방향 감각에 도움을 주고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손 기능이 저하되는 노인들이 스마트 글러브를 통해 일과를 완성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대표적인 인구절벽 국가다. 2020년 말 일본의 인구는 1억2605만 명. 2008년 1억2800만 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은퇴 이후 수입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노인의 직업 활동을 확대했다. 정부는 연금 개시 연령, 연금보험과 간병보험, 노동 시간을 조정했다.

특히 노년층 확대에 따른 간병 서비스 시장 발전 전망에 따라, 간병 로봇과 치매 교육 등 의료 시스템 변화를 제안했다. 대표적인 건 로봇 지원 정책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부터 고령자의 자립을 돕는 간호 로봇 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지능 시스템(知能システム)은 오감 센서를 통해 사람과 육체적·정신적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AI 간호 로봇을 상용화했다. 일본은 AI 등 4차 산업혁명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일본 실버산업의 전망도 밝다. 일본 미즈호은행은 의료·간병·장례·노인용품 등 일본의 실버산업 시장 규모가 2025년 101조3000억엔(약 1076조원)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실버산업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분야는 식품이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노인 대상 가공식품(개호식품·Care Food) 시장 규모는 2013년 1258억엔(약 1조3362억원)에서 2017년 1480억엔(약 1조5720억원)으로 커졌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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