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 사회혁신융합전공 주임교수,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사경위) 전문위원, 한국일본학회 상임이사
전영수
한양대 사회혁신융합전공 주임교수,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사경위) 전문위원, 한국일본학회 상임이사

인구절벽이 본격화됐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인구변화발 먹구름이 자욱하다. 전혀 상관없는 풍경인 듯해도 뜯어보면 인구변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외는 없다. 인구변화야말로 한국 사회를 이해·전망하는 바로미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구변화를 읽어내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민간주체에 여유는 없다.

제조·유통·서비스·금융 모두 인구변화발 고빗사위(매우 중요한 단계에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에 놓였다. 역풍을 순풍으로 뒤바꿀 관심·노력만이 절실하다. 시장재편의 회오리는 시작됐다. 예보는 나갔고 대응만 남았다. 인구변화는 달라진 고객 출현을 뜻한다. 움직이는 고객을 팔짱 끼고 응대할 순 없다. 뒤따라도 늦다. 한발 빨리 길목을 기다릴 때 승기는 있다. 인구변화는 기업생존을 위한 우선적인 정복과제다. 저성장 속 돌파구가 절실한 기업에 상식적인 공감 이슈다. 풀어내면 ‘인구변화→소비변화→시장변화→사업변화’로의 환승 숙제다. 고민할 여유도, 따져볼 여지도 별로 없다. 업종 불문, 사업 불문 마찬가지다.

인구정복을 위한 모범답안은 없다. 있어도 만병통치는 아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조언은 가능하다. 기업·시장 대응을 살펴보면 검증된 몇몇 접근방식이 있다. 인구변화로 새롭게 정의·발굴한 신고객과 신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는 점은 공통분모다. 기업·시장의 혁신실험은 머잖아 좋은 사업모델로 연결된다. 유념할 건 열심히 좇아도 당장은 성과가 없다는 점이다. 묵직한 변화답게 끈질긴 대응이 좋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기다릴 때 열매는 맺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한가롭게 미루거나 피하면 곤란하다. 미래 먹거리의 밑바닥을 다지는 기초공사임을 강조한다.

먼저 선행사례를 배우는 걸 권유한다. 완전하진 않아도 도움은 된다. 앞서 개척한 루트는 나침반과 같다. 위험한 실험보단 안전한 훈수가 낫다. 불확실한 인구변화도 마찬가지다. 선행사례만 체크해도 상당량의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정확히 읽어내고 끄집어내는 노력·능력이면 충분하다. 수많은 선행사례는 대개 한 방향을 가리킨다. 실패 이유는 많아도 성공 비결은 하나다. 인구변화발 신고객·신시장의 기업대응은 시사점이 많다.

인구변화의 충격을 온몸으로 맞은 일본은 유일무이한 선행모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파나소닉의 ‘J콘셉트’가 있다. 내구소비재인 6대 가전을 고령자 시선에 맞춰 업그레이드한 경우다. 베이비부머 등 인구변화발 유력소비자인 고령인구와 가전 욕구의 교체수요를 연결했다. 신체 한계가 뚜렷해진 시니어의 불편·불안·불만을 제거한 일종의 신브랜드다. 가령 LED 조명은 더 밝게, 세탁기는 넓고 얕게, 청소기·전기자전거는 가볍게 만들었다. 또 냉장고는 야채선반을 중심에 둬 편리성을 더했고, 전자레인지는 다양한 레시피가 요리되도록 배려했다. 악력·근력·시력·자각 등의 열화현상을 극복하는 미세조정은 미쓰비시의 ‘어른가전’도 마찬가지다. 추억·희망·부활이란 키워드를 제품화하는 시도도 새롭다.

단 조심할 게 있다. 일본에선 먹혔어도 한국에선 안 먹힐 수 있다. 둘은 그만큼 다르다. 국제 비교의 함정이다. 이를 보완하는 건 한국만의 상황독법이다. 선행사례는 표준답안보다 풀이안내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때문에 결과보다 과정을 면밀히 챙기는 게 효과적이다. 이는 인구변화의 겉모습은 닮았어도 속사정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변화는 차별적이고 격동적이며 충격적이다. 5년 주기를 깨고 특별추계까지 했지만, 그것조차 금방 깰 정도로 통계는 급전직하를 반복한다. 선행사례를 읽되 무게중심은 한국 상황을 정밀분석하는 데 싣는 게 옳다. 한국은 남다르다. 인구정복의 정밀도를 높이자면 한국적 특수·특화지점의 이해가 필수다. 무턱댄 벤치마킹은 곤란하다. 문제 발굴의 대전제는 한국적 인구변화의 특수성을 둘러싼 정밀한 이해다.


파나소닉이 5060세대를 타깃으로 출시한 가전. 세탁기는 입구를 넓게 하고 높이를 조정했다. 사진 파나소닉
파나소닉이 5060세대를 타깃으로 출시한 가전. 세탁기는 입구를 넓게 하고 높이를 조정했다. 사진 파나소닉
파나소닉 J콘셉트 청소기. 2㎏으로 가볍다. 사진 파나소닉
파나소닉 J콘셉트 청소기. 2㎏으로 가볍다. 사진 파나소닉

상시대응 및 다른 업종과 연계 방법 찾아라

결국 상시대응이 자연스럽다. 상수(常數)를 변수(變數)로 착각하면 당장은 편해도 나중에 괴롭다. 인구변화는 단편·산발·임시적인 대응체계로 맞설 수 없다. 시장수요이자 사업토대인 까닭이다. 한국의 급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가능하면 집중·전담의 상시조직을 갖춰 신고객·신시장의 변화양상은 물론 수면 아래 감춰진 추동원리까지 파악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유가 없다면 기회도 없을 터다. 독특한 건 직위가 높을수록, 오너일수록 인구변화의 이모저모를 놓치지 않는다. 앞으로의 먹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일수록 인구변화의 영향·파워를 절감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상장 기업의 상당수가 인구변화 전담조직을 상설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성과가 ‘시니어시프트’다. 리빙랩처럼 일상 관찰을 통해 소소한 욕구를 제품·서비스에 내재화한 신개념이다.

건강식품 통판 업체인 ‘야즈야’가 시니어시장의 성공모델로 회자되는 이유도 시니어시프트를 반영한 덕분이다. 주력사업이 건강식품이라 시니어의 선호를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더 유의미한 건 공들여 축적한 고객맞춤형 공략 노하우다. 연구소까지 설립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한다. 처음엔 판매증진이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축적경험을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했다. 컨설팅부터 업무제휴까지 활발하다. 전담조직은 판매 제품과 무관한 일상정보까지 친절히 알려주며 추가 니즈를 알아낸다. 제품 구매를 넘어 잠재고객의 환경과 속내까지 데이터로 쌓는다. 장기 자료를 토대로 2013년엔 시니어 잡지 등 출판사업까지 나섰다. 장난감 메이커 ‘반다이’가 ‘고령자+장난감’을 연결시킨 것도, 여행대리점 ‘HIS’가 전단지 레이아웃을 재구성한 것도 일상에서 관찰하며 얻은 데이터가 힌트로 작용한 결과다.

신고객·신시장은 새로운 욕구분출을 내포한다. 제품을 만들면 사주던 매스고객은 이제 없다. 획일·균일·보편적인 재화는 무시한다. 욕구 규정은 커녕 고객 구분조차 뒤섞인 까닭이다. 신고객은 제조 메이커에 맞춤 서비스를 요구하고, 물건보다 경험을 중시하며, 소유보다 사용을 선호한다. 과거에는 없던 소비욕구다. 그나마 아직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04년생) 등의 차별시장이다.

향후엔 더 까다롭고 다양해진 소비경향이 불가피하다. 맞춤대응은 그만큼 힘들다. 혼자서는 다 못 한다. 합종연횡의 협업전략이 유력하다. 일관체계로 장악하기란 어렵다. 달라진 게임원칙은 ‘본업경쟁력+외부서비스’의 연계모델이다. 자사 경쟁력을 극대화하되 새로운 소비지점·고객만족은 이(異)업종과 연대하는 게 낫다. 탈(脫)제조·향(向)서비스가 그렇다. 온·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금융·제조(유통)까지 포괄된다.

경쟁 격화에 몰린 편의점 업계의 변신 스토리는 전형적인 합종연횡이다. 일본 편의점은 매장을, 판매공간을 생활기반으로 확장했다. 가령 패밀리마트는 24시간 피트니스센터 병설점포(Fit&Go)를 개점했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겸해 MZ세대 고객확보를 노렸다. 세븐일레븐은 자전거 공유모델(HELLO CYCLING)로 신사업에 나섰다. 소프트뱅크와 협업해 자전거 대여·반납 주차장을 설치했다. 직접적인 매출증진뿐 아니라 환경보호, 지역활성, 건강증진 등의 가치창출도 강조된다. 로손은 고령화에 맞춰 간병수요를 사업화로 연결했다. 전문 업체와 제휴해 간병상담이 가능한 케어거점병설점포(케어로손)를 띄웠다. 간병식과 간병용품 등에 특화한 진열전략도 관심사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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