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구찌는 작년 5월 서울 이태원에 한국 전통의 미를 살려 ‘구찌가옥’을 열었다. 이곳은 소셜미디어(SNS)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겨냥해 사진 촬영을 권한다. 작년 1월에는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플랫폼 ‘제페토’에서 60여 종의 의상, 신발, 가방과 ‘구찌 빌라’를 선보였다. MZ 세대 제페토 이용자는 1000~4000원에 구찌 옷을 사 아바타에게 입히면서 명품 놀이에 푹 빠졌다. 구찌에 대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내러티브(Narrative·敍事) 전략은 주요 명품 소비층으로 떠오른 MZ 세대에게 환영받았다. 젊은층은 ‘기분 좋다’는 말을 ‘I feel Gucci(나 오늘 구찌해)’라고 표현한다. 구찌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도 지난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8% 늘었다. MZ 세대로부터 외면받을까 봐 걱정하는 다른 명품 업체와 다른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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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

작년 말, 에스파·NCT·태연 등 SM엔터테인먼트(SM) 소속 아이돌과 EBS ‘자이언트 펭TV’의 펭수, 카카오프렌즈의 춘식이는 ‘광야(KWANGYA)’행 티켓을 뽐냈다. 이수만 SM 대표 프로듀서는 기관사로 나서 이들을 광야로 안내했다. 광야는 무엇이고, 광야행 티켓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광야는 SM이 만들어낸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SM 아이돌이 모이는 무한한 가상의 공간이다. 이들의 광야행 티켓은 광야역으로 가는 ‘SMCU(SM Culture Universe) 익스프레스 티켓’으로, 올해 1월 1일 열린 SM타운 온라인 콘서트 초대 티켓이었다. SM ‘덕후’는 모두 ‘광야에 가고 싶다’며 열광하고 있다. 지금도 덕후들은 광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SM 노래와 뮤직비디오의 ‘떡밥(힌트)’을 분석하며 SM 세계관이 담긴 내러티브를 즐기고 있다. 최근 광야의 위치가 서울 성수동에 있는 SM 신사옥으로 찍혀 떠들썩했다.

이제 우리는 물건을 사고 음악을 들을 때도 내러티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내러티브란 비전과 세계관 등 특정 관점이나 가치관을 담아낸 강력한 서사로,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내러티브는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결국 브랜딩이나 마케팅에서 내러티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열렬한 팬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매출 증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제품 스펙만 홍보하는 A기업에 비해 제품에 긍정적인 서사를 입히고 그 서사 안에서 소비자들을 놀게 하는 B기업이 우위를 점하는 시대다. ‘이코노미조선’이 ‘내러티브 경제’를 기획한 배경이다.

1│감성 전략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러티브는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힘에서 출발할 때 강력해진다”고 했다. 고객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내러티브인 ‘로맨스 내러티브’도 큰 범주에서 감성 전략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가 정립한 세 요소인 친밀감·열정·신뢰에 부합하는 비즈니스 전략으로, 열정적인 브랜드 팬덤을 만든다. 이른바 ‘컬트 브랜드(cult brand)’다.

성공적인 감성 내러티브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애플과 테슬라가 있다. 애플은 단순한 IT(정보기술) 제품이 아닌 혁신과 개성을 판다. 애플 광고는 제품 설명보다 애플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서사를 한껏 보여준다. 테슬라도 흔한 전기차 업체가 아닌 ‘완전자율주행’이라는 미래를 강조한다. 우주 산업인 ‘스페이스X’와 뇌와 컴퓨터를 결합하는 뇌 연구 산업인 ‘뉴럴링크’까지 연결해 미래와 연결된 감성 내러티브를 키운다.

글로벌 가구 업체 이케아도 ‘많은 사람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든다’라는 감성 비전을 고수하고 있다. 프레드리크 요한손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이케아는 가치 지향적이다. 정량적인 부분보다는 정성적인 부분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요즘 국내에서 줄 서서 먹는 도넛과 미국 빈티지 만화 같은 분위기로 유명한 카페 노티드도 감성 내러티브에 주력하고 있다. 카페 노티드를 창업한 이준범 GFFG 대표는 “우리는 음식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팬덤을 만들고자 마케팅을 한다”고 말했다.


2│세계관 전략

내러티브 경제의 또 하나의 전략은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 속에는 허구의 도시나 국가, 행성을 배경으로 마법과 초광속 등 판타지 SF의 개념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계관은 하나의 커다란 집단 서사로, 대중이 여러 콘텐츠 간의 관계성을 즐기고 떡밥을 찾으면서 열광하게 한다. 이는 곧 각 기업이나 브랜드 세계관에 대한 대중의 충성도로 연결된다.

‘마블’ 시리즈나 ‘해리포터’, 영화 ‘반지의 제왕’ 등이 유명한 세계관 사례다. 이들은 책이나 영화에 머물지 않고 게임, 놀이기구, 굿즈 등 파생 콘텐츠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이 세계관을 자사 아이돌에게 적극 대입하고 있다. SM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와 하이브의 방탄소년단(BTS) 세계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세계관 내러티브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고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어 MZ 세대는 세계관 떡밥을 찾고 해석하면서 세계관 놀이를 즐기고 있다. 현실 멤버 네 명과 아바타 멤버 네 명으로 구성된 에스파는 아바타와 메타버스를 연결한 콘셉트로, 광야에서 ‘블랙맘바’라는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를 노래와 뮤직비디오에서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에스파 팬들은 어느 멤버가 블랙맘바와 관련 있을지, 결투의 끝은 어떨지 파헤친다. 세계관은 이들 회사가 일정 틀만 제시할 뿐 실제 내용은 팬들이 채워나간다.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팬들은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가수의 전 앨범을 구입하거나 같은 소속사의 다른 그룹까지 챙겨보고 있다”라며 “세계관 팬덤이 확대하면서 굿즈 등 2차 창작물이 생겨난다. 엔터사 입장에서 세계관은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가 가능한 지식재산권(IP)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하이브는 BTS 세계관을 바탕으로 웹툰과 웹소설을 제작했다. 앞으로 세계관 전략을 쓰는 엔터사나 광고 회사 등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연구원은 “이미 세계관을 맛본 대중은 세계관이 없으면 시시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세계적 기업 가치 평가 대가’ 애스워드 다모다란 뉴욕대 교수
“틀에 박힌 내러티브 전략 신뢰 잃어…데이터 뒷받침 진정성 필수”

안상희 기자

애스워드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애스워드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뉴욕대 레너드 스턴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
인도 로욜라대 회계학 학사, UCLA 경영학 석사·박사, 전 UC 버클리 방문 교수, ‘내러티브 앤 넘버스’ ‘다모다란의 투자 전략 바이블’ ‘투자 철학’ 저술

“틀에 박힌 내러티브 전략은 고객, 투자자의 신뢰만 잃을 뿐입니다. 기업은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이야기)를 구축해야 합니다. 스토리는 기업이 스토리텔러(이야기 전달자)로 자사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믿을 때 신뢰성을 지닙니다. 스토리는 물론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데이터가 업데이트되면 현실 여건을 반영해 스토리도 수정·발전해 나가야죠.”

베스트셀러 ‘내러티브 앤 넘버스’를 쓴 기업 가치 평가의 세계적인 대가 애스워드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뉴욕대학 레너드 스턴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는 1월 8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잘된 브랜딩과 마케팅 스토리에 소비자가 지갑을 연다”며 소비자가 공감하는 내러티브 전략 비결을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스토리는 실현가능성·타당성·개연성을 동반한, 즉 현실 검증을 거친 것을 뜻한다.

그는 ‘내러티브 앤 넘버스’에서 “스토리의 힘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숫자에 의미를 더해 준다”며 “성공적인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스토리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다모다란 교수는 시장에서 평가되는 기업의 가격과 가치의 차이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개인 스스로에게 달렸지만, 자신은 가치를 신봉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모두 이야기를 팔고 있다"며 "소셜미디어(SNS)가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은 청중에게 홍보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 다모다란 교수는 “외부 사건은 기업의 내러티브 전략에 변화를 준다”며 “기업은 상황에 따라 자사의 이야기를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비·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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