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 조선비즈K | Tech Chosun | 조선일보
저개발국 원조할 때 국민 의식·행동 이해해야 성공 <br>사회문제 해결보다 가난한 개인 돕기에 기부금 더 내
  > 2017년12월 228호 >
[실행 전략 5] 기부·해외원조
저개발국 원조할 때 국민 의식·행동 이해해야 성공
사회문제 해결보다 가난한 개인 돕기에 기부금 더 내
기사입력 2017.12.04 10:02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누 속에 장난감을 넣어 아프리카 빈민가 아이들이 손을 자주 씻도록 유도했다. <사진 : 플리커>

남아프리카공화국 빈민가에서는 매년 수천명의 영유아가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 손 세정만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사망한다. 해외 원조 기구들이 매년 비누 등 위생용품을 제공하며, 손 씻기와 질병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씻는 경우는 드물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의 넛지(부드러운 개입)를 활용했다. 투명한 비누 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넣어뒀다. 아이들이 손을 열심히 씻으면, 비누 속 장난감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질병에 대한 경고 문구 하나 없이도 아이들은 자주 손을 씻게 됐고, 위생상태는 70% 향상, 호흡기 감염은 75%나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국제 기구가 해외 원조를 할 때 넛지를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우다이푸르의 농촌 지역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유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다.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악마의 눈에 띄어 일찍 죽는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아 접종에 참여하는 부모들에게 말린 콩 2파운드를, 종합예방접종을 완료한 부모에게 스테인리스 쟁반을 준다고 하자, 이 마을의 예방접종률이 7배 상승했다.

세계적인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해외 원조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행동경제학의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생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빈곤도 해결할 수 없다”며 “빈민들을 무조건 원조해서도,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행동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빈민 행동 이해해야 빈곤퇴치 가능

실제로 세계은행은 2014년 이후 빈곤 퇴치 운동에 행동경제학을 접목해 왔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고 가정한다.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가난은 사람들을 좌절시키며,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못 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더 많이 노출된다. 아이가 아프면 그 자체가 삶에 위협이 될 수 있고, 농사를 망치면 빈곤에 빠질 수도 있다.

전통 경제학적으로 접근할 때 빈국과 빈자에 대한 개발 프로그램은 자원과 시장에 초점을 둔다.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가 돈과 도로, 병원, 학교 같은 자원이 부족해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 개발의 몫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의 개발은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내려지고, 어떻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콜롬비아 정부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매월 엄마들에게 지원금을 줬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재등록률은 점점 낮아졌다. 그래서 정부는 지원금을 매월 주는 대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해 초반에 주기로 했다. 이후 재등록률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사소해보이는 차이가 결과를 바꾼 것이다.

기부자들의 태도에도 넛지가 적용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은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첫번째 집단에는 극심한 기아 상태인 여자 아이 ‘로키아’의 일상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두번째 집단에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가뭄으로 3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고, 에티오피아에서는 400만명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는 내용의 사진을 보여줬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첫번째 사진에 평균 1인당 2.83달러를 기부했고, 두번째 사진에는 1.16달러를 지불했다. 개인의 빈곤 문제에 초점을 둔 접근방법이 실현가능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크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접했을 때 사람들은 본인과 상관없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 기부를 유도하는 방식을 조금만 바꿔도 기부액을 늘릴 수 있다.

뉴욕주립대학은 대학 기부금 관련한 실험을 진행했다. A그룹의 경우 대학 전체에 기부하거나, 특정 과나 단과대학에 기부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줬지만, B그룹에는 대학 전체에만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실험 결과,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한 A그룹의 사람들이 B그룹보다 5배 이상 많이 기부했다. 기부자들에게 자신들과 관련이 있거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학과나 단과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부 금액을 크게 늘린 것이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초기 단계 넛지가 기부를 늘리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의 귀찮음 때문에 지금 주어진 환경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본능을 역이용해서 처음부터 기본환경을 적절하게 설정한다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장기기증률 독일의 8배

이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장기기증률 차이로 증명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지만, 국민들의 장기기증률은 오스트리아가 99%, 독일은 12%로 큰 차이를 보인다. 기본설정의 차이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사망자가 생전에 별도의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을 경우 자동으로 장기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증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 신청을 받고 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부상으로 경제학은 이제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는 전통적인 이론에 기대고 있지 않다”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학계에 남아 있듯이, 타인을 돕는 행위인 ‘기부’ 자체가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한국도 해외 원조에 ‘넛지’ 활용


코이카는 행동경제학을 이용해 원조 사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분석한다. <사진 : 코이카>

해외 기구뿐 아니라 한국의 무상원조사업 전담기구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도 해외 원조 시 행동경제학을 활용한다. 최승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남아시아 농촌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프로젝트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의 행동과 삶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평가할 때 행동경제학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코이카는 지원국 농촌 마을 간 경쟁을 유도하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다년간 마을에 지원을 해주되 매년 성과를 평가하고, 다른 마을과 상대 평가를 통해 이듬해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최 교수는 전통적인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업무에 참여하는 태도였다.

그는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다른 사람이 일할 때 게으름을 피워 ‘무임승차’를 했을 텐데, 마을에 포장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일하고, 가축을 키우는 정보를 공유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을 봤다”며 “다 같이 잘살기 위해 협력하는 자세는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서도 수백억원을 들여 지원하는 원조 사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개발 사업의 효과를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배정원 기자
 
다음글 ㆍ다음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전글 ㆍ이전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04
[247호]
정기구독 및 구매 신청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조선> 공식 사이트입니다.
뉴스레터 신청하기
자주묻는질문 1:1온라인문의
독자편지 정기구독문의
배송문의 광고문의
고객불만사항

광고문의: 02-724-6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