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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패션기업 휴고보스·버버리, 전쟁 통해 도약 <br>독일군 상징하는 군복 제작, 방수 외투 개발해 성공
  > 2018년01월 232호 >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War & Tech 23] 전쟁과 패션
세계적 패션기업 휴고보스·버버리, 전쟁 통해 도약
독일군 상징하는 군복 제작, 방수 외투 개발해 성공
기사입력 2018.01.02 12:09


나치 친위대가 휴고보스가 만든 제복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2011년 9월 21일 독일의 세계적인 패션 회사 휴고보스(Hugo Boss AG)는 사사(社史)인 ‘바이마르 공화국과 제3제국 시절(1924∼45)의 의류 기업사’를 발간하면서 “당시 우리의 행위로 인해 고통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 당시 휴고보스는 침략 전쟁에 앞장섰던 독일군의 군복을 필두로 해서 나치 친위대처럼 각종 전범 행위를 벌인 여러 조직의 유니폼을 만들어 공급했다. 이 때문에 종전 후 이 회사의 창업자인 휴고 페르디난트 보스(Hugo Ferdinand Boss·이하 휴고)는 부역 혐의로 기소돼 10만마르크의 벌금형과 선거권을 박탈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휴고보스, 전후 ‘전범 기업’ 비난 받아

그런데 납품을 통해 많은 이득을 취했으나 제품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생산 업자의 죄를 묻기는 곤란하다. 그것이 설령 무기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군복은 필수 군수 물자지만 무기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군복을 입지 않고 교전 행위를 벌이면 전범 행위로 취급받는다. 그럼에도 그를 동정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휴고는 자발적으로 나치당에 가담한 골수 당원이었다. 재판에서 그는 회사가 어려워 납품을 노리고 당원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도 전인 1931년에 가담해 활동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또 생산에 많은 전쟁 포로나 점령지 주민을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노역시켰던 점도 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괘씸죄가 컸다. 이는 휴고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회사가 생산한 제복에 대한 일종의 미움이자 질투였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나 나치 조직원이 착용한 각종 제복은 성공적인 이미지 통합 사례로 거론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디자인만큼은 한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종전 후 새롭게 창설된 서독군이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미군 것을 그대로 차용한 군복을 사용했을 정도로 나치 독일 당시에 휴고보스가 생산한 각종 제복은 역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반대로 그것은 나치로부터 곤욕을 당한 이들에게는 어떻게든 죄를 묻고 싶은 침략자의 상징이었으니 사람들의 뇌리에 부정적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특유의 날렵한 디자인은 친위대 장교였던 카를 디비치와 발터 헤크가 했고, 휴고보스는 양산만 담당했다. 하지만 오늘날 휴고보스가 남성 패션에 특히 강한 회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때 만들어진 이미지가 어느 정도인지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휴고보스에 과거사가 두고두고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휴고보스처럼 거대한 전쟁을 도약의 지렛대로 삼은 회사가 있다. 바로 영국의 세계적인 패션 기업 버버리다. 19세기 말 햄프셔 지방에서 작은 포목상을 하던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이하 토머스)는 방습 기능이 떨어지는 기존 외투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 판단했다.

영국은 비가 오는 일이 다반사여서 부유한 이들은 고무로 된 방수 외투를 착용했지만 너무 무거워 불편했고, 서민들은 망토를 걸치거나 습기가 그대로 흡수되는 외투를 입어야 했다. 1879년 토머스는 직조 전에 코팅 처리를 해서 방수 기능이 뛰어나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개버딘(gaberdine)이라는 직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으로 만든 레인 코트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레저 활동을 많이 하던 상류층을 중심으로 퍼져가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좋은 품질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군에서 격오지나 한랭지에서 근무하는 일부 장교들에게 공급을 했는데, 당시에는 타이록켄(tielocke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한정된 특정 부류만 착용하던 타이록켄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계기는 제1차세계대전이었다. 1914년 9월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진격이 멈춘 후 장장 4년 동안 지옥의 참호전이 벌어졌다. 땅을 파고 구축한 참호는 배수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수시로 비가 내려 병사들이 습기에 노출됐고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배수가 안 되는 참호 속의 영국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위해 지급된 외투가 이후 트렌치 코트로 대중화됐다. <자료 : 영국 육군 박물관>

트렌치 코트, 종전 후 대중화

이때부터 버버리의 타이록켄을 비롯한 다양한 코트가 모든 장병에게 보급됐고 이런 종류의 외투를 트렌치 코트(trench coat)라고 부르게 됐다. 종전 후 정장에 잘 어울리는 외투로 자리 잡으면서 트렌치 코트는 급속히 대중화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버버리 코트라고 통칭될 만큼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가 유명하다.

이때를 기점으로 버버리는 오늘날까지 명성이 이어지는 세계적인 패션 회사로의 입지를 든든히 했다. 휴고보스나 버버리 모두 거대한 전쟁이 도약의 발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버버리와 달리 전범 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휴고보스는 언론 등에서 수시로 과거사가 언급되고 그때마다 몸을 숙여 용서를 비는 처지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과 달리 제1차세계대전은 참전국 모두가 원죄를 가진 전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버버리는 승리한 영국의 브랜드였기에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만일 영국이 패했다면 휴고보스처럼 버버리도 수시로 사과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흥미로운 가정이 아닐 수 없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등 저술

기사: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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