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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 통신사 ‘사생결단’ 방아쇠 당겼다
  > 2016년04월 143호 > 연중기획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 통신사 ‘사생결단’ 방아쇠 당겼다
기사입력 2016.04.04 01:19

“사방이 적으로 포위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SK그룹의 대관 담당 직원 A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통신사 SK텔레콤이 케이블TV회사(MSO,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CJ헬로비전 인수를 승인할지를 놓고 미래창조과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장고(長考)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경쟁 업체인 KT, LG유플러스가 대대적인 합병 반대 여론 몰이에 나섰고, 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도 SK에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015년 11월 인수 발표 당시만 해도 KT, LG유플러스와 약간 실랑이만 벌이는 정도에서 끝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A씨는 귀띔했다.

작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발표가 나왔을 때는 경쟁 회사들의 반발이 이렇게 거세지 않았다. 합병 발표 직후인 2015년 11월 5일 이상철 당시 LG유플러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가 회사 간 경쟁 문제를 떠나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우회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2016년 1월 14일 권영수 신임 LG유플러스 부회장은 “1위 사업자(SK텔레콤)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경우는 한국밖에 없다”며 “정부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심사를 (최소한) 현재 국회 계류 중인 통합방송법이 통과된 뒤로 미뤄야 한다”고 수위를 높였다. 이날 LG유플러스는 별도 배포한 자료에서 ‘약탈적 M&A’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SK텔레콤을 공격했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최대 쟁점은 이동통신 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사진 : 조선일보DB>

지상파 방송사, 이례적 집단행동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자회사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TV(IPTV) 가입자 348만명에 CJ헬로비전 가입자 415만명을 더해 가입자가 763만명으로 늘어난다. 기존 유료방송 1위인 KT(871만명, 2015년 말 기준)를 바짝 따라붙게 되는 것이다. KT는 1위를 빼앗길 수 있고, LG유플러스는 ‘만년 3위’의 위상이 더욱 굳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합병 발표 당시만 해도 두 회사 관계자들은 정부가 곧바로 승인을 내줄 것으로 예상했다. 케이블TV 업계가 오랜 침체 상태인데다, 또 다른 MSO인 씨앤앰 매각 작업이 오랫동안 공전(空轉)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신사에 인터넷TV(IPTV) 사업 허가를 내주는 등 방송, 통신 융합을 장려하는 게 정부의 정책 기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두 회사 내부에는 “(합병 저지를) 해볼 만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3월 14~15일 KT와 LG유플러스는 주요 신문 1면에 공동으로 합병 반대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에는 ‘과거 반경쟁적 인수합병으로 얻은 누적 영업이익 30조원 어디에 쓰셨습니까?’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넣기도 했다. 자사 직원 명의로 법원에 합병 무효 소송도 제기했다. 한 KT 관계자는 “2015년 말 SK에 대한 반발 여론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해볼 만하다. 막아보자’는 판단을 고위층이 내렸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요즘 두 회사의 임원 회의는 CJ(헬로비전) 건으로 시작해서 CJ 건으로 끝난다”며 “전사적인 역량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반(反)SK’ 여론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곳은 지상파다. 특히 SBS는 SK텔레콤뿐 아니라 SK그룹 전체를 겨냥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3월 중순 1주일간(13~19일)에만 ‘최태원, SK 사내이사 복귀… 우려 섞인 시선들’(19일), ‘결합상품 점유율 49.6%… SK, 방송 넘보나?’(18일), ‘통화, 데이터 무제한이라더니… 요금제 ‘꼼수’’(18일), ‘감옥 드나들고 등기이사라니… “자격없다” 반대’(16일), ‘SKT, 요금 인하 대신 돈 잔치… 130억 챙긴 최태원’(14일), ‘“SKT, CJ헬로비전 인수는 재벌 독점 강화” 비판’(14일) 등의 기사를 보도했다. KBS도 ‘CJ-SK 합병안 통과… 정부는 업계 눈치?’(2월 26일), ‘SK, 조세 회피처에 32개 법인… 상당수 손실’(9일), ‘물의 총수 일가 복귀 강행… 기관투자자 반대’(18일) 기사를 보도하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이익단체인 한국방송협회는 2월 말 미래창조과학부에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반대한다는 공식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SK텔레콤의 이동통신 독주 체제가 고스란히 결합판매에까지 이어져 방송통신 시장을 황폐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정부의 합병 승인 심사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 이번 합병은 통신사(SK텔레콤)가 방송 사업자(CJ헬로비전)를 인수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모두 얻어야 한다. 1차 관문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다. 공정위가 이 심사를 하려면 4월 초 심사보고서를 이해관계자들에게 발송한 뒤 2~3주 정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빨라야 4월 말쯤에야 결론이 난다. 미래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수합병 심사 기한인 60일을 이미 넘겼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미래부의 경우 핵심적인 판단을 내릴 심사위원회와 자문단도 아직 구성하지 못한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전 인수합병 심사와 달리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만큼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수익 악화에 덩치 키우기 대응

숫자만 놓고 보면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TV와 IPTV를 모두 고려한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은 CJ헬로비전이 15.0%(2015년 말 기준), SK텔레콤이 12.6%으로 합쳐도 27.6% 정도다. 물론 전국 78개 케이블TV 방송권역 중 CJ헬로비전이 운영권을 갖고 있는 23개 권역에서 SK텔레콤은 70%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갖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KT, LG유플러스의 IPTV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지거나 SK텔레콤이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때문에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합병을 놓고 격렬한 대립이 벌어진 이유로 이동통신과 콘텐츠 시장의 환경 변화를 지목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서 미래 성장 가능성이 어두운 상황이어서 M&A를 통한 덩치 키우기와 마케팅 비용 절감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며 “CJ헬로비전 인수는 유선통신(초고속인터넷, 집전화), 유료방송 서비스와 이동통신이 결합한 상품의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 결합상품 형태의 판매를 늘려 고객 이동을 막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보겠다는 포석이란 얘기다. SK텔레콤의 이동통신 가입자는 2015년 6월 말 2620만명으로 2014년 말 2650만명과 비교해 소폭 감소했다. 2015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2% 줄어든 17조1400억원, 영업이익은 6.4% 줄어든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명예퇴직에 따른 일회성 비용 1200억원을 감안하면 수익기반에 별 타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용 쥐어짜기’의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케팅 비용은 14.5%, 투자는 11.8% 줄였기 때문이다. CJ 입장에서 CJ헬로비전 매각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MSO뿐 아니라 알뜰폰(MVNO) 사업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CJ는 2012년 ‘헬로모바일’이라는 브랜드로 알뜰폰 사업을 시작했으나, 가입자 숫자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몇 년째 정체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CJ는 SK텔레콤에 관련 사업을 매각하고, 대신 암묵적인 제휴 관계를 통해 케이블채널(MPP,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 CJ E&M, 홈쇼핑업체 CJ오쇼핑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KT와 LG유플러스 입장에서 SK텔레콤의 유무선 결합상품 경쟁력이 높아지면 마케팅 비용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수익성이 악화되는 마당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게 이번에 ‘결사항전’에 나선 이유다.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 CJ E&M이 SK텔레콤의 IPTV망과 콘텐츠 서비스의 지원을 받고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게 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지상파 재전송 송신료 등 콘텐츠 전송 가격을 놓고 유료방송 업계와 매년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방송협회는 1~2월 3개 지상파 방송사 광고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해 월 매출액이 총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반면 CJ E&M과 종합편성채널의 2015년 광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7% 늘었다.



CJ는 케이블TV 1위 업체 CJ헬로비전을 통해 알뜰폰, 스마트TV 등 다양한 방송, 통신사업을 시도했었으나 결국 매각에 나섰다. <사진 : CJ헬로비전>

통신, 방송 경쟁력 부족이 근본 원인

문제는 통신사들이 변화하고 있는 사업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통신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크게 네 가지다. △이동통신 가입자는 정체 상태이고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고가 단말기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졌으며 △5세대(5G) 이동통신 환경에 대비한 통신사들의 경쟁력 확보가 지지부진한데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넷플릭스, 네이버 등 OTT(Over The Top, 플랫폼 기반 회사) 사업자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콘텐츠와 플랫폼 서비스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OTT업체의 급부상과 함께 생겨난 CJ E&M 등 케이블채널의 시장 잠식, 시청률 하락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5년 각 통신사 이동통신부문의 가입자당 매출(ARPU)은 가파른 성장세가 끝났음을 보여준다. 전년 대비 ARPU 증가율은 SK텔레콤이 2014년 4.2%에서 2015년 1.3%로, KT가 5.1%에서 0.7%로, LG유플러스가 9.3%에서 1.7%로 크게 떨어졌다. 이동통신 분야 매출 성장률은 KT가 0.7%, LG유플러스가 1.7%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고가 스마트폰을 무기로 비싼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방식의 마케팅이 예전처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돼 제품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고, 고가의 고성능 제품 수요도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레콘애널리시스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22개월이던 휴대전화 교체 주기는 올해 30개월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통신사와 제조업체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2015년 9월 TG삼보에 위탁생산(EMS)한 자체 브랜드 스마트폰 ‘루나(LUNA)’를 최우선적으로 판매할 ‘전략제품’으로 정했다. SK텔레콤이 계열사 스마트폰을 전략제품으로 지정한 것은 루나가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독주하고 있는 스마트워치 시장에서도 18일 10만원대 ‘루나워치’를 내놓으면서 사실상 일대일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3월 10일 휴대전화 렌털 서비스인 ‘갤럭시 클럽’을 내놓으면서 독자 고객 확보에 나섰다.

5G 시대를 앞두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점도 통신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5G는 짧은 시간에 많은 숫자의 기기들이 한 번에 대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여러 형태의 서비스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부가가치의 중심이 네트워크가 아니라 서비스 플랫폼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구글이 ‘알파고(AlphaGo)’에 쓰인 인공지능과 현재 계열사를 통해 개발하고 있는 무인차 기술을 접목, 대규모 교통 관제 서비스를 내놓을 경우 국내 통신사는 구글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력과 기업 문화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SK종합기술원의 경우 최근 SW 분야 연구개발(R&D) 인력 채용에 나서면서 학사 졸업생으로까지 문턱을 낮췄다. 이에 대해 한 IT업계 관계자는 “그만큼 고급 개발자들이 입사를 기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5G 통신 기술에서도 에릭슨, 화웨이 등 글로벌 통신 장비업체뿐만 아니라 보다폰, 도이체텔레콤 등 해외 통신사와의 기술 격차도 여전히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전자는 3월 직접 휴대폰 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 : 조선일보DB>
기사: 조귀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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