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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분쟁 땐 한 방에 훅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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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제약사 70대 오너만 9명
“경영권 분쟁 땐 한 방에 훅 간다”
기사입력 2016.03.19 23:14

국내 제약회사들은 창업자인 오너를 중심으로 지난 50~60년 사이 고속 성장을 했다. 오너들은 특허가 만료된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을 그대로 따라 ‘복제약’을 만드는 방법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해왔다. 실적 향상을 위해서라면 의사, 약사에게 금품을 건네는 불법 리베이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오너들이 하나둘 달라지고 있다. 리베이트를 중단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지난해 8조원 규모의 신약 후보물질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려 달라진 제약업계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국내 제약회사 오너 중 상당수가 70세 이상의 고령이라는 점은 제약업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다. 고령의 오너가 후계구도를 미리 정리하지 못하면 한 순간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거나 회사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국내 제약회사가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오너 한 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성기 회장, 80대 넘어서까지 경영권 유지 예정

2015년 국내 제약업계 매출액 1위인 한미약품은 창업자인 임성기 회장이 모든 경영을 진두지휘한다.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임 회장이 76세의 고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임 회장은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3시간 가량 임원 회의를 진행한다. 임원들로부터 상세한 보고를 받고 즉각 필요한 결정을 내린다. 임 회장은 유수의 제약회사들의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경영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매일 오후 10~11시 이후에 퇴근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와의 논의가 필요하면 직접 미국, 유럽 등으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지난 10년 동안 때로는 적자를 내면서까지 매년 매출액의 10~20%를 R&D비용으로 투자한 것도 임 회장이 내린 결단이었다.

임 회장은 향후 5년 이상 경영권을 놓지 않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신약 개발 성공’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실제로 임 회장은 올해 1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기술수출에 성공한 신약 후보물질이나 직접 개발한 신약이 매출 1조원이 넘는 글로벌 신약이 될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라며 “1973년 회사를 창업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신약 개발’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임 회장이 물러난 이후 2세 경영이 시작되면 한미약품의 경영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세한 의사결정 하나까지 관여하는 창업자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3명의 자녀 중 누가 경영권을 물려받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임 회장의 2세들은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보유한 지분은 적다. 임 회장은 한미약품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34.99%를 보유한 반면 임 회장의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의 지분은 3.59%에 불과하다.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전무는 3.19%,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전무는 3.54%를 가지고 있다.


상위 30대 제약회사 중 70세 이상 고령 오너 ‘9명’

제약업계에는 유독 고령의 오너가 많다. 창업자인 1세 오너가 회사를 키우면서 생전에 경영권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오너 한 명의 ‘평생 경영체제’가 유지되는 셈이다.

2015년 매출액 상위 30대 제약회사 오너 중 70세 이상은 임 회장을 포함해 9명이다. 이들은 회사 경영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후계자에게 지분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원영(78) 일동제약 회장은 직간접적으로 14.76%의 지분을 가진 회사의 최대주주다. 윤 회장의 장남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의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김동연(78) 부광약품 회장도 지분 17.5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남인 김상훈 부광약품 사장은 2013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지분율은 4.11%다.

이윤우(72) 대한약품 회장(지분율 20.73%)과 장남 이승영 대한약품 사장(4.99%), 남영우(75) 국제약품 회장(8.48%)과 장남 남태훈 국제약품 사장(0.47%) 등도 마찬가지다. 국내 한 제약회사 임원은 “오너가 2세를 후계자로 지목해도 지분까지 넘겨야 실질적인 경영권이 이양된다”며 “제약업계 오너 대부분은 본인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지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계 구도 바뀔 때마다 회사는 혼란

오너 한 명에게 경영권이 집중되다 보니 오너가 원하는 후계자에게 지분을 넘겨도 경영권 분쟁이 흔히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회사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리스크(위험)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아제약과 대웅제약이다.

강신호(89) 동아제약 회장은 1997년 차남 강문석 전 사장을 대표이사로 앉히면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2004년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강문석 전 사장을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하고 2013년 4남 강정석 부회장에게 동아에스티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지분(13.65%)을 모두 물려줬다. 그러나 강문석 전 사장은 주주총회 등에서 “일방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강신호 회장과 강정석 부회장은 물러나야 한다”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형제 간, 부자 간 갈등이 세간에 노출됐다. 회사 직원들은 상위권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 대신 ‘오너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대웅제약도 동아제약과 비슷한 사례다. 윤영환(82) 대웅제약 명예회장은 2009년 차남 윤재훈 현 알피코프 회장을 대웅제약 대표이사로 임명하면서 후계 작업을 마무리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웅제약의 실적이 부진하자 2012년 윤재훈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3남 윤재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하지만 윤재훈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고 지주회사인 ㈜대웅의 지분을 늘려나갔다. 2015년 윤재승 회장이 지분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최대주주(11.91%)로 입지를 굳힌 다음에야 윤재훈 회장(8.78%)이 경영권을 포기했다. 회사 직원들은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오너에 의존하는 제약회사는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경영 마비 상태가 된다”며 “이런 상황에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거나 실행할 수 없고 오너 일가의 눈치만 보게 된다”고 말했다.


오너 한 명에 대한 지나친 의존… 지배구조 선진화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업계가 한 단계 올라서려면 오너 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버리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약 개발에 성공한 제약회사라도 ‘오너 리스크’로 한 순간에 이미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업체 한 임원은 “국내 제약회사는 복제약 중심의 영업으로 단기간에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경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며 “선진 기업으로 나아가려면 예측 가능한 후계구도를 갖추고 전문 경영인이나 독립적인 감시기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5년 발표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정책의 효과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주주들의 감시를 활성화하는 주주협의회 등이 제시됐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단장은 “제약산업이 내수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며 “오너들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준비하고 제약산업의 미래를 생각해야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임솔 조선비즈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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