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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차 소비·유통시장 <br>독자 브랜드 못키워 ‘英 립톤’이 독차지
  > 2015년12월 134호 > 라이프
[서영수가 알려주는 茶와 동아시아⑦] 중국차산업 선도기지 광저우
중국 최대 차 소비·유통시장
독자 브랜드 못키워 ‘英 립톤’이 독차지
기사입력 2015.12.14 18:47


중국 광동성 광저우(廣州)는 중국 최초의 무역항으로 1757년부터 서양에 개방됐다. 1842년 8월 영국과 맺은 난징조약 이전까지 유일한 대외교역창구였던 광저우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죽의 장막을 걷어내며 개혁개방을 표방했을 때 선전(深)과 더불어 가장 먼저 개방된 곳이다. 중국근대사의 아픔과 현대사의 도약을 최일선에서 마주한 광저우는 차(茶)와 인연이 깊다. 아침에 눈을 뜨며 마시는 자오차(早茶)부터 한밤중까지 차를 마시는 광저우 차문화는 중국의 최대 차 소비지인 동시에 유통시장으로 광저우를 키웠다.

윈난의 찻잎으로 푸얼차 생산해 수출
2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광저우의 아침은 차로 시작된다. 지난 7월 12일, 이른 새벽이었지만 드넓은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을 맞아 출근 압박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음식과 차를 즐기고 있었다. 식당의 차를 주문해 마시거나 자신이 가져온 차를 다구만 빌려 마시는 차 애호가도 많았다. 쌀이 풍부한 광저우에서 발달한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창펀(腸粉·쌀가루를 전처럼 부쳐 다양한 재료를 속에 넣어 먹는 전통음식)을 비롯해 200여 가지의 광동특식 딤섬(點心)이 테이블마다 넘쳤다.

청나라 때부터 발달한 자오차는 광저우의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는 전통문화이면서 일상생활이다. 종업원에게 “휴일이어서 손님이 많냐”고 물었더니 “평일에는 사람이 더 많다”며 “중국 각지와 해외에서 온 손님을 고급차로 접대하며 아침부터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휴일에도 정장 차림을 갖춘 사람들의 모임이 여럿 눈에 띄었다. ‘여유’로만 보였던 자오차는 ‘생업’의 일부였다.

광저우에는 여러 약재를 함께 끓인 후 식혀서 마시는 량차(凉茶)문화가 있다. 량차는 습하고 더운 아열대기후인 광동지역에서 몸의 열을 식혀주는 약효가 뛰어난 대용차(代用茶)다. 량차 브랜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왕라오지(王老吉)다. 아편 밀무역을 해결하러 광저우에 내려온 흠차대신 린저쉬(林徐)가 번거로움을 피해 평복차림으로 량차 전문점에 들러 왕라오지를 마신 후 풍토병에서 회복돼 상으로 황금 항아리를 전했다는 설화도 있다.

1837년 왕저방(王澤邦)이 만든 량차 전문점 왕라오지는 식품분야 세계 1위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2008년 여름부터 중국 내 매출이 코카콜라보다 많았다. 광저우를 벗어나면 생소했던 왕라오지는 2003년 사스가 중국에 창궐했을 때 면역력을 높여주는 차로 알려지며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왕라오지와 함께 사스로 행운을 누린 차가 푸얼차(普茶)다. 윈난(雲南)의 소수민족 차 정도로 여겨졌던 푸얼차가 사스를 예방해준다는 소문에 불티가 났다. 광저우에 푸얼차를 취급하는 상점이 엄청나게 늘었다. 심지어 푸얼차가 아닌 다른 차에 푸얼차 포장지만 씌워도 잘 팔렸다고 한다. 전국적인 푸얼차 열풍과 가파른 가격상승 이전에 윈난 푸얼차의 가치를 광저우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3만평 규모의 중국 최대 차시장인 팡춘 차 도매시장.

1950년대부터 윈난의 우수한 찻잎을 가져와 광저우에서 푸얼차를 제조해 해외로 수출했다. 윈난의 찻잎을 원료로 광동에서 만들어진 귀한 차라는 뜻으로 ‘광운공병(廣雲貢餠)’이라 불리며 홍콩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광동성은 초기에는 생차만 생산하다가 1958년부터 자체 개발한 발효기술로 숙차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오래 묵힌 생차(生茶)의 맛을 좋아하는 홍콩과 대만 사람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윈난성에서는 광저우의 선진숙차제조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광동성 정부는 알려주지 않았다. 외화벌이의 첨병인 푸얼차 수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윈난성과 광동성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윈난성 정부는 차 전문가를 선발해 광동성 차창에 위장취업을 시켜 숙차제조기술을 알아오도록 했다. 윈난의 푸얼차는 1950년대 초부터 광저우의 무역공사를 통해서만 해외 수출을 할 수 있었다. 광동성은 수출을 대행해 주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 윈난의 찻잎을 염가로 제공받았다.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에서 푸얼차를 해외로 직접 수출하게 된 것은 1973년부터다. 윈난성은 광동성으로 보내던 찻잎 송출을 전면중단해버렸다. 광동성은 쓰촨성(四川省)과 베트남 등지에서 윈난과 비슷한 대엽종 찻잎을 구해 광동병(廣東餠)이란 이름으로 광동산 푸얼차를 계속 만들었다. 제조기술은 똑같았지만 원료가 달라진 차의 품질과 맛은 같을 수 없었다. 2008년부터 윈난성 정부가 푸얼차를 ‘지리표준산품’으로 지정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면서 그나마 사용하던 푸얼차라는 이름마저 못 쓰게 됐다.

푸얼차 투자 2년째 손실
비록 푸얼차를 생산할 수는 없지만 푸얼차의 유통과 판매는 여전히 광저우가 중국 1위다. 광저우시 리완()구에 있는 팡춘(芳村) 차 도매시장의 규모는 10만3000㎡(3만1200평)에 달한다. 1500여개의 도매상이 전국에서 모인 유명한 차와 각종 차 도구를 팔고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차시장이다. 대형쇼핑몰 형태의 신형 상가와 대로를 따라 나열해있는 전형적인 상가가 혼재하는 팡춘 차 도매시장은 교역량과 연간 거래액도 최고이지만 팡춘의 도매상을 중심으로 드러나지 않게 차에 투자하는 30만명 정도의 큰 손들이 광저우에 있다. 그들이 차 산업의 실제 방향타다. 대부분 푸얼차에 투자를 하고 있는 이들이 2년째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정부의 삼공비용(三公費用·공무 접대비, 공무 외국출장비, 공용차량 구입·운영비) 제한으로 고가의 푸얼차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반 푸얼차 시장도 최근 2년 동안 위축됐다. 2007년과 같은 대폭락은 아니지만 당분간 회복될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의 정책과 매매환경변화도 영향이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차 산업이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 있다. 규모의 경제는 갖췄지만 8만개에 육박하는 차 생산업체 가운데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는 1000여개에 불과하다. 중국차 브랜드는 몰라도 립톤(Lipton)은 모두 안다. 립톤이 중국차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차 산업의 미래는 ‘안다’와 ‘모른다’ 사이의 간극(間隙)을 좁히는 데 있다.

기사: 서영수 차칼럼니스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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