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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경쟁력·다품종 소량생산으로 130여개국에 수출 혼이 깃든 독자제품 만들고 싶어 대기업 OEM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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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기업인 연쇄인터뷰 1] 변봉덕 코맥스 회장
“가격경쟁력·다품종 소량생산으로 130여개국에 수출 혼이 깃든 독자제품 만들고 싶어 대기업 OEM 거절”
기사입력 2017.08.14 11:06


변봉덕 코맥스 회장은 코맥스의 49년 장수 비결에 대해 “기업의 중심은 사람”이라며 “나는 좋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김종연>

정보통신기기 제조업체인 코맥스는 지난 2월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명문장수기업은 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전 중소기업청)와 중소기업중앙회가 100년 가는 명문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로 올해부터 시행됐다.

창업자인 변봉덕 코맥스 대표(회장·77)가 1968년 설립한 코맥스는 당시로는 첨단 정보기술 제품이었던 인터폰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후 비디오폰·디지털도어록(잠금장치)·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을,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홈IoT시스템까지 제품군을 진화시켜 왔다.

코맥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308억원에 달한다. 30년 전인 1986년(연간 매출액 44억원)과 비교하면 30배 성장했다.


‘성악가’ 아들 설득, 가업 잇게 해

코맥스가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된 데는 이 같은 외적인 성장 외에 그동안 49년의 업력을 기반으로 앞으로도 50년 이상 지속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정부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가 있다.

2006년 변봉덕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주 갈 때는 한 달에 두 번 이상도 가는 해외출장이지만, 당시 출장은 평소와 목적이 달랐다. 밀라노의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인 라스칼라의 정단원인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라스칼라 극장이 어떤 극장인가? 1778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극장이다.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의 유명 오페라가 이곳에서 초연됐고 토스카니니가 이 극장에서 10년 이상 지휘와 음악감독을 맡았다. 라스칼라는 예술학교를 운영하며 전속 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를 두고 있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거쳐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하는 ‘장한 아들’을 만나러 가는 변 회장 심정은 그러나,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앞섰다.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등 해외 대기업 몇군데가 거액에 코맥스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기업 매각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6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변 회장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회사를 계속 성장시킬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아들에게 가업을 이어달라고 다시 한 번 설득할 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10년 이상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은 이미 수차례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밀라노에서 아들을 만난 변 회장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네가 (아버지 회사) 경영에 정말 생각이 없다면 나는 경영에서 물러나겠다.” 변 회장의 얘기는 계속됐다. “아들이 말하더군요.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명문장수기업으로 만드는 것도 해볼 만한 도전이다’고요. 아마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100년 이상 된 유럽의 장수 기업들을 많이 본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라스칼라의 예정된 공연을 모두 소화하고 그해 7월 코맥스에 입사한 아들이 변우석 부사장이다. 물론 코맥스의 해외매각은 없었던 일이 됐다. 변 회장은 “코맥스가 유럽의 존경받는 강소 제조기업처럼 성장한다면 창업자로서 큰 보람일 것”이라며 “이제 조만간 아들이 그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맥스는 지난 2월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사진 : 코맥스>

49년 전 세운상가에서 지금의 코맥스를 설립했다.
“1968년 당시는 가발, 합판, 봉제 등 기초 산업분야가 주력산업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전자산업 육성책을 만들면서 가전사업을 적극 밀던 때였다. 삼성이 가전사업에 뛰어든 시기도 그때쯤이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는 학교로 가지 않고 정보통신 회사를 창업했다. 정보통신은 우리 인체로 치면, 신경망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산업이 발전할수록 통신이 발달하지 않으면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정보통신이라고 해봤자 전화밖에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작업장이 커지면서 서로 통신이 안 되다 보니까 일꾼들이 막 뛰어다녀야 했다. 그래서 인터폰이라는 게 필요해졌고, 이 기술이 주택으로 옮겨간 것이다. 1970년대 초부터 도어폰이 나왔고, 이것이 모태가 돼 홈IoT까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코맥스의 장수 비결이 있다면.
“사람(인재)이다. 기업은 사람이 중심이다. 그 사람을 통해 기술도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장도 넓히고 제품도 만들기 때문에 기업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셈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고 할 수 있다.”

인사관리 원칙은.
“신뢰가 우선이다. 인간 관계는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오랫동안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중요하게 봐왔다. 우리는 구조조정을 해본 적이 없다. 본인 스스로 떠나는 것 외에 회사가 인위적으로 해고시킨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란 게 부족한 사람도 있고, 능력이 넘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 사람들이 계속 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한 코맥스는 설립 5년 만인 1973년 국내 최초로 인터폰을 수출했다. 이에 앞서 1970년 정부 도움으로 첫 미국 출장길에 나선 변 회장은 호텔 방에서 전화번호부를 붙잡고 미국 기업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제품 수출을 타진하기도 했다. 변 회장은 “당시 미국 인터폰시장은 현지 기업 제품으로 장악이 돼 있었고, 우리 인터폰이 가격경쟁력은 있었지만 제품 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전화번호부 영업도 불사한 것이다” 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반신반의하던 바이어 몇몇이 오더(제품 주문)를 줘서 한국으로 돌아온 변 회장은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품질 테스트도 확실히 한 덕분에 불량률이 1% 미만이었다. 바이어 사이에서 ‘보통 외국 제품을 수입하면 불량률이 5% 미만이면 선방했다고 하는데, 코맥스 제품은 놀랍다’는 말이 나왔다.



코맥스 직원이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하우징브랜드페어’에서 관람객들에게 코맥스 도어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코맥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북미수출제품 전량 리콜 사태를 겪었다.
“인터폰 수출 초기 때 일이다. 인터폰에 장착되는 스위치 하나를 잘못 써서 불량이 났다. 그래서 수출물량 전체를 리콜했다. 멀쩡한 제품도 다 떼어내고 교체했다. 당시 회사로서는 엄청난 모험을 한 것이다. 왜냐면 수출 물량 전부를 다 교체해주면 회사가 문 닫아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고객이 우리를 믿고 우리 제품을 사줬는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우리가 물건을 판다는 것은 고객과의 약속이고 신뢰다. 그렇게 바꿔주고 나니까 ‘코맥스는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때가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전 세계 130여개국에 수출하는 코맥스 제품의 경쟁력은.
“가격경쟁력과 함께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제품군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 꼭 맞는 제품을 고객 수요에 맞게 공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는 인터폰·도어폰을 공급하고 유럽, 미국 등 프리미엄 시장에는 고급 비디오폰·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을 수출한다.”

다양한 제품 수출이 가능한 배경은.
“제조 기술의 표준화 덕분이다. 인터폰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어왔기 때문에 우리 제품 시스템이 전 세계에서 통한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큰 변화 없이도 우리 제품이 기본적으로 통용된다. 다소 변화가 있는 것은 우리 엔지니어들이 고쳐주면 된다. 해외시장 진출만 40년이 넘다 보니, 우리 제품이 전 세계에서 표준화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시장의 변화가 두렵지 않다. 일단 기본 시스템이 우리 기술이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홈IoT 제품은 새로운 시스템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기술 축적이 오래된 우리가 유리하다.”

수출 현황은.
“근래 들어 수출이 다소 줄었다. 중국 시장 상황이 예전만 못하다. 우리의 주력 제품이 오디오폰, 비디오폰이다 보니까 중국 제품과 부딪치고 있다. 가격 면에서는 중국 현지 제품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우리 제품이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니까 중국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있다. 조달 부품 가격 경쟁력은 중국이 훨씬 싼데다 기술 면에서도 별 차이가 없으니 우리가 밀리는 것이다.”

올해 해외시장 전략은.
“투 트랙을 동시에 구사할 수밖에 없다. 우선, 코스트(생산비용)를 줄일 수 있는 방향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있다. 현재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또 하나는 홈IoT 같은 프리미엄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 수준이 높은 제품은 아직은 중국이 못 따라온다. 그래서 저가제품은 앞으로 소싱(부품 구매)을 중국 쪽에서 많이 할 생각이다. PCB(회로기판)라든지 전자부품들은 이미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해서 가져와 국내에서 완제품 조립을 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우리 제품이 브랜드 파워가 있으니 중국 제품보다는 10~15% 프리미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프리미엄 시장에선 홈IoT, 홈네트워크 제품을 공급하는 투 트랙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코맥스의 위상은.
“시큐리티(보안) 업체까지 포함하면 세계 21위 수준이고, 홈도어 분야에 국한하면 ‘세계 톱 3’에 들어간다. 이 순위는 매출액 기준으로 평가한 것인데, 관련 저널에 나온 걸 보면 일본시장이 가장 크다. 일본은 주택구조, 문화가 인터폰 시장을 크게 키운 것 같다. 그 다음이 독일, 이탈리아순인데, 이탈리아 회사들보다는 우리가 앞서 있는 것 같다. 시큐리티까지 합치면 시장이 엄청 커진다. 그 분야에선 우리도 갈 길이 멀다. 우리가 홈인터폰 시장에선 앞서 있지만 시큐리티는 우리도 이제 시작 단계다.”

가업승계 계획은.
“아직 큰 준비는 안 했는데, 무난하게 이뤄질 것 같다. 지금 변우석 부사장이 10~15% 주식(코맥스는 코스닥 상장기업)을 갖고 있고 내가 갖고 있는 게 20%, 주변 사람이 갖고 있는 주식을 합치면 42~43% 정도다. 경영권 리스크 같은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R&D 투자 원칙은.
“필요한 기술을 회사 내부에서만 개발하려고 하지 않고 외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개발하려고 한다. 최근 홈IoT 환경이 빨리 변하고 있지 않나? 이 모든 기술을 중소기업이 다 수용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속도를 맞출 수도 없고, 인재를 구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많이 맺으려 한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기업과도 손잡고 있다.”

삼성전자와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나.
“홈IoT는 한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 통신회사도 있어야 하고, 집 안에서 여러가지를 음성으로 제어하려면 냉장고 같은 생활가전 업체들과도 협력해야 한다. 삼성, LG 같은 가전회사 제품과 우리 제품이 호환되도록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통신회사들과도 마찬가지다. 통신 서비스 회사들과의 네트워크는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과 큰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유명 외국업체 OEM(주문생산)에 기대지 않고 독자 브랜드를 키웠다.
“사실 OEM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실제 제안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이름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인간도 이름이 다 있지 않나. 남의 이름으로 제품을 만들면 혼이 깃든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코맥스는 온 힘을 다해 기술개발을 해왔고 독자적 이름이 있는, 혼이 깃든 제품을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 변봉덕
1939년생, 한양대 수학과 졸업(1962년), 한양대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졸업(1987년), 중앙전자공업사(현 코맥스) 창립(1968년)


plus point

코맥스 이끌 차세대 CEO 성악가 출신 변우석 부사장


2013년 코맥스 45주년 음악회에서 지휘 중인 변우석 부사장. <사진 : 코맥스>

변봉덕 코맥스 회장의 맏아들 변우석 부사장은 2006년 7월 코맥스 이사로 입사한 후 2008년부터 부사장(COO·최고운영책임자)을 맡고 있다. 1996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3년 뒤 밀라노 베르디음악원을 졸업했다. 베르디음악원을 졸업한 1999년 10월부터 밀라노 라스칼라 오페라극장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변 부사장은 2004년 스페인 빌바오 국제성악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할 정도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촉망받는 성악가였다.

성악을 전공한 변 부사장이 홈오토메이션이 주력사업인 코맥스를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이 클 것 같지만 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조직으로 움직이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종합예술인 오페라 역시 조직, 시스템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혼자 노래 잘한다고 오페라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들은 오랜 기간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조직’을 배웠고, 그때 배운 경험을 코맥스에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변 부사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경영수업도 받았다. 코맥스 45주년이었던 2013년에 연 우수고객 초청, 클래식 공연 역시 변 부사장의 작품이었다.

기사: 박순욱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백예리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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