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육류 요리와 레드 와인. 사진 김상미
다양한 육류 요리와 레드 와인. 사진 김상미

 

얼마 전 ‘타닌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 있다. 대만의 중국의약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인데, 이 소식을 접한 와인 애호가들은 레드 와인을 마음껏 마셔도 되는 ‘합당한’ 이유가 생겼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레드 와인에서 느껴지는 떫은맛이 바로 타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레드 와인 속 타닌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 걸까?

연구팀이 밝힌 바에 의하면 연구의 재료가 된 것은 타닌이 아니라 타닌산이다. 타닌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타닌산은 타닌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드 와인을 어느 정도나 마셔야 충분한 타닌산을 섭취하게 되는 것일까? 연구팀의 계산에 따르면 하루 평균 1L라고 한다. 와인 한 병하고도 3분의 1병을 더 마셔야 하는 양이다. 코로나19 이기려다 간이 망가질 판이다. 좋다 말았다.

사실 타닌은 와인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 동물이나 자외선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성분이 타닌이라서 커피와 녹차는 물론 우리가 평소 섭취하는 채소에도 타닌이 있다. 과일 중에는 특히 포도 껍질에 타닌이 많다. 화이트 와인은 포도를 수확해 착즙한 뒤 껍질은 버리고 즙만 발효하기 때문에 타닌이 없지만, 레드 와인은 포도를 으깬 뒤 색을 추출하기 위해 껍질을 담근 채 발효하므로 와인 속에 다량의 타닌이 녹아 있다.

타닌의 떫은맛은 정확히 말하자면 맛이라기보다 질감이다. 그런데 이 타닌이라는 녀석이 입안에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어떤 와인은 질감이 실크처럼 매끄럽고 어떤 와인은 벨벳처럼 포근하다. 고운 밀가루처럼 잇몸을 뻑뻑하게 감싸기도 하고 뼈대처럼 와인에 강건한 구조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포도 품종이나 와인의 숙성 정도에 따라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드 와인을 자주 마시다 보면 다채로운 타닌의 질감을 어느 날 갑자기 깨우치게 된다. 이때가 바로 레드 와인의 매력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와인 애호가로서는 꼭 느껴보고 싶은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레드 와인이라고 해서 모두 타닌을 많이 함유한 것은 아니다. 타닌의 양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포도 품종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품종 중에 타닌이 많은 것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시라(Syrah), 말벡(Malbec) 등이 있다. 어쨌든 타닌이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이 품종들로 만든 와인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어떨까?


산지별로 다양한 맛,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은 검은 체리, 블루베리, 블랙커런트 등 검은 베리 향이 가득하고 풋고추, 피망, 삼나무 등 채소 향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산지를 꼽으라면 프랑스 보르도의 오메독(Haut-Medoc)을 들 수 있다. 이곳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Merlot)를 7 대 3 정도로 블렌드해 만드는데, 풍미가 우아하고 질감이 탄탄해 품격 있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숙성될수록 맛과 향이 풍성해지므로 빈티지(와인을 만든 포도를 수확한 해)로부터 적어도 5년 이상 지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미국, 이탈리아, 칠레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은 프랑스산에 비해 긴 숙성 없이 일찍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나파밸리(Napa Valley)산 카베르네 소비뇽은 과일 향이 진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다. 이탈리아는 토스카나(Toscana)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생산이 활발한데 과일 향이 달콤하고 보디감이 묵직해 마시기 편한 스타일이다. 칠레산은 붉은 고추나 피망처럼 매콤한 향신료 향을 품고 있어 와인이 화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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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시라 vs 농밀한 시라즈

시라는 프랑스 남부가 고향이다. 아비뇽(Avignon) 북쪽에 자리한 론(Rhone) 강 유역이 대표적인 시라 산지인데, 이곳 와인은 보디감이 탄탄하고 블루베리와 검은 자두 등 베리 향이 우아하며 꽃 향, 후추 향, 훈연 향 등이 세련미를 더한다. 4~5년 정도 숙성된 것이 맛있지만, 어린 와인이라면 디캔팅(용기에 병에 든 와인을 따라서 옮기는 작업)을 해서 마시면 좋다.

1832년 프랑스에서 호주로 전해진 시라는 이제 호주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에서는 시라를 시라즈(Shiraz)라고 부르며,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와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이 주산지로 꼽힌다. 숙성 없이 빨리 마실 수도 있고, 진한 과일 향과 함께 감초와 다크초콜릿 향이 느껴져 힘차고 농밀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말벡, 클래식한 스타일 vs 부드러운 풍미

말벡은 원래 프랑스 남서부에서 활발하게 재배되던 품종이지만 지금은 카오르(Cahors)라는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카오르 말벡은 ‘검은 와인(Black wine)’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색이 진하고 타닌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어릴 때는 맛이 거칠지만 7~8년 이상 숙성시키면 우아한 베리류의 풍미와 함께 향신료, 가죽, 담배 등 복합미가 발달해 클래식한 레드 와인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르헨티나는 말벡의 제2의 고향이다. 1868년에 전해진 이후 재배가 확산하여 지금은 전 세계 말벡의 70% 이상을 아르헨티나가 생산하고 있다. 안데스 기슭 고지대에서 따가운 햇볕을 받고 자란 말벡은 농익은 풍미가 압권이다. 블랙베리, 자두, 체리 등 잘 익은 과일 향이 감미롭고 벨벳 같은 타닌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신대륙 레드 와인 특유의 풍부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레드 와인은 육류와 즐길 때 맛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타닌의 떫은맛이 고기 속 지방의 느끼함을 개운하게 씻어주고, 육류의 지방이 타닌의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른하고 입맛 없는 봄날 보양도 할 겸 고기 몇 점 구워 레드 와인 한잔 곁들여 보면 어떨까? 타닌이 풍부한 쌈 채소와 봄나물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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