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숙(왼쪽) 박사가 코스 설계가인 남편 유창현(오른쪽) R&H 대표와 퍼팅 그린의 토양을 조사하고 있다. 잔디의 건강 상태를 살피려면 뿌리 상태와 토양 속에 불필요한 유기물이 축적된 것은 아닌지 관찰해야 한다. 사진 민학수 기자
태현숙(왼쪽) 박사가 코스 설계가인 남편 유창현(오른쪽) R&H 대표와 퍼팅 그린의 토양을 조사하고 있다. 잔디의 건강 상태를 살피려면 뿌리 상태와 토양 속에 불필요한 유기물이 축적된 것은 아닌지 관찰해야 한다. 사진 민학수 기자

여름엔 동남아시아 아열대 기후 같더니 겨울이 되니 시베리아처럼 꽁꽁 얼어붙는다. 한국 날씨는 정말 극단적이다. 이런 조건에서도 양질의 코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잔디 전문가들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국내의 대표적 잔디 연구가인 태현숙 박사(유골프엔지니어링 잔디연구소 소장)에게 한국 골프장 잔디의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들어봤다.

태 박사는 경북대 농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95년 삼성물산 잔디환경연구소(구 중앙개발)에 입사해 당시 이건희 회장 지시로 만들어진 잔디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잔디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 한국 골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래종 잡초인 ‘새포아풀’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여성 잔디 박사 1호’가 됐고 삼성 잔디환경연구소 소장을 거쳐 2년 전부터 ㈜유골프엔지니어링 잔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잔디학회 부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올해 유튜브 채널 ‘들잔디 소녀’를 만들어 정원 관리부터 골프장까지 잔디에 관한 일반인의 궁금증에도 답을 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잔디 선택도 변화 필요

올해 중부 지방에는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54일간 장마가 이어져 역대 가장 긴 장마로 기록됐다. 여름철 불볕더위도 계속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상이변은 더는 이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됐다. 매년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기습 폭우가 일상이 된 지금 한지(寒地)형 잔디를 고집하는 것은 경제성과 환경 측면에서 손실이 커지는 선택이다.

지난 100년간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약 0.7℃ 상승했는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배가 높은 1.5℃가 올랐다. 불과 50년 전 우리나라 사과의 주산지는 대구였는데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사과가 재배되고 있다. 잔디 선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난지(暖地)형인 한국잔디(Zoysiagrass)의 생육 적온은 30℃이며 고온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잔디의 생장에 유리하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린에도 난지형 잔디인 버뮤다그래스를 심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모든 그린이 크리핑 벤트그래스로 되어 있지만, 곧 버뮤다그래스를 심는 곳이 나올 것이다. 최근 남해 아난티, 클럽디 금강과 같은 골프장은 페어웨이 잔디의 종류를 켄터키 블루그래스에서 한국잔디로 바꾸었다. 많은 골프장에서 티잉 구역 잔디를 켄터키 블루그래스에서 한국잔디로 교체하고 있다.


태현숙 박사가 골프장 잔디 컨설팅을 하는 경기도 가평의 크리스탈 밸리CC. 그린은 벤트그래스, 티잉 구역과 그린칼라는 켄터키 블루그래스, 페어웨이와 러프는 한국잔디 중지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유골프엔지니어링 잔디연구소
태현숙 박사가 골프장 잔디 컨설팅을 하는 경기도 가평의 크리스탈 밸리CC. 그린은 벤트그래스, 티잉 구역과 그린칼라는 켄터키 블루그래스, 페어웨이와 러프는 한국잔디 중지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유골프엔지니어링 잔디연구소

난지형과 한지형 잔디의 차이는

잔디는 크게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한지형 잔디(cool season grass)와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난지형 잔디(warm season grass)로 나눌 수 있다.

한지형 잔디는 16~24℃의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잔디로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종자를 수입한다. 크리핑 벤트그래스, 켄터키 블루그래스, 훼스큐류(類), 라이그래스류 등이 한지형 잔디에 속한다. 봄가을에 회복이 빠르고 색상이 진하며 질감이 부드럽다. 한지형 잔디는 서늘한 기후에는 잘 적응하지만, 여름철 고온과 과습에 약하다. 물 빠짐이 잘되도록 배수 시설을 해야 하고 토양도 배수가 잘되는 모래를 깔아야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병원균에 쉽게 감염되므로 농약을 계속 뿌려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도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곳이 많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고온 다습한 환경이 동시에 오지는 않는다. 한지형 잔디의 여름철 관리가 어려운 것은 ‘고온+과습+답압+빠른 그린스피드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관리 작업’ 때문이다.

난지형 잔디의 대표 주자는 한국잔디인 중지로 조이시아그래스의 한 종류다. 동남아시아나 열대 지역 골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버뮤다그래스, 파스팔륨 등이 난지형 잔디에 속한다. 난지형은 25~35℃의 고온과 다습에 강하고 저온에 약한 특징이 있다. 한국잔디는 배수 시설이 거의 없는 일반 흙에서도 잘 자라고 병과 해충에도 강해서 농약이나 비료가 적게 든다. 묘지나 일반 공원에 한국잔디가 잘 자라는 것은 이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한국잔디 품종 개념이 처음 도입된 계기는 ‘안양중지’라고 볼 수 있다. 안양 CC가 고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우수한 잔디를 선발해 육종한 품종이다. 이후 삼성 잔디환경연구소에서 특허를 출원해 정식 품종이 된 후 많은 골프장에 보급됐다.


그린엔 벤트, 페어웨이엔 중지, 왜?

퍼팅 그린은 공의 구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잔디를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3㎜ 이하로도 짧게 깎을 수 있는 크리핑 벤트그래스가 가장 적합하다. 티잉 구역과 그린칼라는 대부분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사용하는데, 선명한 색상과 봄, 가을 디봇의 빠른 회복력 그리고 중지보다 티의 평탄성이 좋은 장점 때문이다. 켄터키 블루그래스는 12~15㎜ 길이로 잔디를 깎았을 때 가장 좋은 품질을 나타낸다. 티를 꽂을 때 공이 보이는 높이로 관리할 수 있다. 다만, 켄터키 블루그래스와 친척 격인 잡초 새포아풀 때문에 관리 비용이 많이 증가하는 단점이 있다.

국내 골프장 페어웨이에 가장 많이 깔린 잔디는 한국잔디 중지다. 가뭄에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 물이 부족한 곳의 페어웨이와 러프 등에 적합하다. 농약이나 비료, 모래 등 관리 비용도 켄터키 블루그래스보다 30% 이상 적게 든다. 중지는 18~22㎜ 길이로 깎았을 때 가장 좋은 품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잔디가 공을 떠받치는 볼 받침이 좋다. 하지만 땅속줄기가 발달해 샷을 할 때 클럽의 저항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러프는 말 그대로 러프하게 잔디를 관리하는 곳이므로 잔디를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페어웨이와 러프의 잔디가 같은 것이 좋다.


잔디를 알면 타수가 준다

잔디를 깎는 방향(순결)은 색이 연하고 반대 방향은 색상이 진한데 이런 차이로 잔디색이 연한 지점(순결)에 공이 떨어질 경우 공략하기 쉽지만 역결이라면 클럽이 걸리지 않도록 아이언으로 볼을 정확히 찍어서 쳐야 한다. 그린에서도 자세히 보면 잔디가 누워 있는 방향을 찾아낼 수 있다. 순결이 역결에 비해 공 구름이 빨라진다. 그린스피드는 보통 아침에 한 번 측정하기 때문에 잔디 생육이 왕성한 봄가을에는 오후의 그린스피드가 5~10% 떨어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여름에는 그린스피드가 느려지는데 이는 한지형 잔디인 벤트그래스는 여름에 거의 성장하지 않으므로 조금이라도 광합성량을 늘리기 위해 잔디를 조금 길게 깎아주어야 하고 그린에 스트레스를 주는 롤링 작업도 많이 할 수 없어 물러지기 때문이다. 그린에 배토 작업을 하면 그린스피드가 더 빨라지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래를 뿌리면 지면의 높이가 상승하면서 잔디를 짧게 깎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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