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슨 디섐보가 올해 8월 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TPC하딩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출전한 모습. 사진 EPA연합
브라이슨 디섐보가 올해 8월 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TPC하딩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출전한 모습. 사진 EPA연합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1)은 시속 300㎞ 안팎의 속도로 서킷을 도는 특별 제작 경주용 차량을 사용한다. ‘머신(MACHINE)’이라고 불리는 이 차량의 엔진은 일반 엔진의 5배가 넘는 2만~3만rpm(분당 엔진 회전수)으로 고회전을 한다. 머신은 고막을 찢을 듯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오직 스피드만을 위한 궁극의 탈것이다.

올해 골프계 최대 화제는 헐크처럼 몸집을 불려 400야드 초장타를 치겠다는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의 ‘신체 개조 실험’이었다. 그의 목표도 F1 머신과 같다. 클럽 헤드스피드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몸집을 20㎏ 불린 그는 7월 6일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장타 대회가 아닌 PGA 투어 대회에서 약간의 내리막 경사이긴 했지만 4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 샷을 날리기도 했다.

“디섐보의 ‘벌크업(bulk-up·몸집과 체력 불리기)’ 전략이 옳았다”는 목소리가 골프계에서 커졌다. 국내에선 김효주가 4㎏ 불려 드라이버 비거리를 15m 늘이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디섐보가 극단적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호주의 전설적 골퍼인 그레그 노먼은 “관절에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했다. “골프가 정말 재미없는 게임이 될까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다른 사람이 되겠다” 선언

디섐보가 ‘벌크업 프로젝트’를 선언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는 “내년엔 다른 사람이 돼서 나타나겠다. 훨씬 더 멀리 칠 수 있는 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필드의 괴짜 물리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또 괴짜 짓을 벌이나 하는 반응도 있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프로 데뷔 이전부터 3번 아이언부터 60도 웨지까지 모든 아이언 클럽의 길이와 헤드·그립 무게까지 통일해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2016년 PGA투어에 데뷔한 뒤로도 홀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며 골프 야디지북에 제도용 컴퍼스로 선을 긋거나, 반원 모양 헤드에 샤프트가 몸통 한가운데 꽂혀 있는, ‘앞뒤가 똑같은’ 퍼터를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 둘 다 미국골프협회(USGA)로부터 ‘불법 장비’로 낙인찍혀 사용이 중단됐다.

하지만 이번엔 자신의 몸이 실험 대상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서 열렸던 US오픈이 끝나고 그를 만난 일이 있는데 ‘고급 신경근육 훈련 생리학(Advanced Neuromuscular Exercise Physiology)’이란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근육과 신경조직의 움직임, 피의 흐름, 물질대사 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피로가 쌓이면 몸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하는 책이다. 그는 “몸과 골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몸집을 불리면서‘근육 활성화 기술(MAT)’ 프로그램 창시자인 그레그 로스코프와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한다. 사진 골프닷컴
브라이슨 디섐보는 몸집을 불리면서‘근육 활성화 기술(MAT)’ 프로그램 창시자인 그레그 로스코프와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한다. 사진 골프닷컴

6개월 만에 몸무게 20㎏ 불려 비거리 50야드 늘어

키 185㎝인 디섐보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195파운드(88㎏)였던 몸무게를 239파운드(108㎏)로 늘렸다. 1년 전 미디엄 사이즈 셔츠를 입었는데 지금은 XL 사이즈도 작아 보인다. 그는 아침 식사로 달걀 4개와 베이컨 5장, 토스트를 먹고 하루 6개의 단백질 음료를 마시는 등 식사량을 점점 늘려 하루 최대 6000㎉의 음식을 섭취했다.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량(2700㎉) 두 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는 체육관에 살다시피 하면서 근육량을 늘렸다. 디섐보는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수술까지도 고려했지만, 몸에 칼을 대는 대신 강하게 만들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트램펄린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이후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골프 스윙으로 인해 고질적인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근육 활성화 기술(MAT)’ 프로그램 창시자인 그레그 로스코프와 함께 강도 높은 운동을 해왔다. 코어 근육은 물론 손과 손가락 끝의 힘을 기르려고 양손에 각각 30㎏ 넘는 기구를 들고 90초 동안 빠르게 걷는 운동, 다리를 앞으로 쭉 펴고 앉은 자세에서 양손을 바닥에 짚고 몸 전체를 들어 올린 뒤 손을 앞으로 번갈아 움직여 이동하는 운동 등을 했다. 극단적으로 몸을 회전하거나 구부리는 자세를 취해 근육이 큰 힘을 견딜 수 있도록 단련했다.


“몸을 바꿨고 골프 경기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디섐보는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시뮬레이션 골프 장비로 드라이버 샷 볼 스피드가 시속 203마일을 찍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보다 평균 20마일가량 볼 스피드가 빨라졌다고 한다. 볼 스피드가 1마일 빨라지면 비거리는 2~3야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난해 장타왕 캐머런 스미스(미국)의 평균 볼 스피드 시속 190.7마일을 능가하는 수치다. 디섐보는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할 때 360야드 안팎의 티샷을 날렸다. 당시 그는 “나는 몸을 바꿨고 골프 경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파 5홀을 파 4홀처럼, 파 4홀을 파 3홀처럼 공략하는 ‘게임 체인저’가 된 것이다. 보통 티샷이 떨어질 만한 위치에 벙커나 해저드를 배치하는데 이런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디섐보는 “몸무게는 270파운드(약 122㎏)까지 가능하다”며 벌크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디섐보의 실험은 좀 더 시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는 2017년 1승, 2018년 4승을 거뒀다. 벌크업 이후 이제 1승을 기록했을 뿐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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